기대는 왜 사랑의 이름으로 남을까

좋아함과 상처 사이에서, 우리가 자주 놓치는 것

by 김남정

우리는 때때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대를 한다.
기대는 늘 조용히 시작된다. 처음에는 희망이고, 설렘이고, 미래에 대한 작은 상상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것은 실망이 되고 추락이 된다. 같은 출발점에서 정반대의 결말로 향하는 감정. 기대는 참 묘하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거나 사랑하게 되면 기대가 생기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해서, 그 마음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미리 그려보게 된다. 나는 그 마음을 쉽게 나무라고 싶지 않다.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인간답다는 증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희망을 품고, 더 많은 것을 바라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너무 건조한 존재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기대가 언제나 우리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어떤 기대는 우리를 더 깊은 아픔과 절망으로 밀어 넣는다.
‘기대만 하지 않았어도 이러지 않았을 텐데.’
‘사랑만 하고 멈췄다면 덜 아팠을 텐데.’
이런 생각이 뒤늦게 마음을 후벼 판다.


상대는 나의 기대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대개 너무 늦게 안다. 그러고 나서야 깨닫는다. 결국 이 모든 감정은 나 혼자서 키운 것이었다. 나 혼자 기대했고, 나 혼자 실망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일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다. 그래서 나는 이 마음을 어리석음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좋아해서 기대했고, 사랑해서 기대했을 뿐이다. 그것은 분명 허물은 아니다.


다만, 조심스럽게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 그 태도가 옳았느냐는 질문 앞에서는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는 점이다.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도 않은 채, 상대의 의향을 묻지도 않은 채, 나만의 판단과 나만의 결론으로 감정을 몰아가는 일은, 아무리 좋은 마음이라 해도, 그것은 결국 내 입장이고 내 시선일 뿐이다.


영화 〈500일의 썸머〉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현실이 기대와 다를 때, 문제는 현실이 아니라 기대다.”
이 문장을 처음 들었을 때는 조금 냉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우리는 종종 상대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서 기대한 모습을 사랑했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기대 없이 사랑할 수 있을까.
그래야만 한다는 말은 이론처럼 들린다. 마음을 비우자고 다짐해도, 여전히 무언가를 바라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 바람은 과연 사랑 때문일까. 아니면 외로움 때문일까. 인정받고 싶은 마음,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은 아닐까.


책 <사랑의 기술> 에서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태도이자 선택이라고 말한다.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기대는 감정이지만, 태도는 선택이다. 어쩌면 우리는 기대를 줄이기보다, 사랑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다.


사랑은 상대를 향해 무작정 달려가는 일이 아니라, 상대가 서 있는 자리와 나의 자리를 함께 바라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기대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기대가 누구의 것인지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것이 내 마음인지, 서로의 합의인지.


기대 때문에 아팠던 경험은 우리를 조금 더 신중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신중함은 다음 사랑을 더 성숙하게 만든다. 그러니 아파했던 나의 마음을 부정하지는 말자. 다만, 그 마음이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디까지 가야 했는지는 차분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대는 여전히 우리들 곁을 맴돌 것이다.
하지만 다음번에는, 기대보다 한 발짝 뒤에서 사랑을 바라보고 싶다.
그래야 사랑도, 나 자신도 다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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