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함 속의 여유

빠름과 쾌락 대신, 조용한 일상에서 찾는 나만의 에너지

by 김남정

사람들은 흔히 지루함을 참기 힘든 감정으로 여긴다. 지루함이 찾아오면 손이 스마트폰으로 향하고, 눈은 자극적인 영상에 붙잡힌다. 매 순간 무언가를 소비하고, 경험하고, 느껴야만 하는 것처럼 삶을 재촉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지루함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에너지를 얻는다. 그것은 빠르고 강렬한 쾌락 속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힘이다.


최근 본 영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한 가족의 일상을 따라가지만, 스토리의 중심적 사건이 극적으로 폭발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인물들의 일상 속 작은 움직임과 표정을 길게 잡고, 인물 사이의 미묘한 감정과 관계를 천천히 드러낸다.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가 서로에게 느끼는 애정과 갈등, 이해와 오해가 장면 사이사이 침묵 속에서 서서히 쌓인다. 이런 느린 전개와 반복적인 장면들은 많은 관객에게 지루함으로 느껴진다. 강렬한 사건이나 즉각적인 감정적 반응이 없기에 ‘진행이 느리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느림 속에서 인물들의 내면을 읽고, 관계의 깊이를 천천히 음미하며 마음이 차분해지는 경험을 했다. 지루함이란, 단순한 ‘시간의 낭비’가 아니라, 감각과 사유를 섬세하게 다듬는 과정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런 지루함의 즐거움은 영화뿐만 아니라 삶의 여러 순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한 페이지, 한 단락, 한 문장씩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처음에는 지루함이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지루함 속에서 사유가 깊어지고, 감정이 정리되며, 글은 자연스레 자신만의 색을 띠게 된다. 단숨에 읽고 쓰는 쾌감보다, 느리지만 단단하게 내면을 채우는 시간이 더 오래 지속되는 에너지를 준다.


나는 종종 사람들이 빠른 속도와 강렬한 자극에서만 즐거움을 찾으려 하는 모습을 본다. SNS의 스크롤, 유튜브의 추천 영상 등 모든 것이 즉각적인 만족을 약속한다. 하지만 그 즉각적인 만족은 금세 사라지고, 다시 새로운 자극을 찾게 만든다. 반면, 지루함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은 느림 속에서 깊이를 얻는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듯, 사소한 순간에 집중하고,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작은 변화와 발견을 즐길 줄 안다. 그것은 삶의 속도를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이며, 내면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는 이 지루함 속 즐거움을 ‘조용한 에너지’라고 부른다. 커피 한 잔과 함께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 아무 생각 없이 책장을 한 장씩 넘기며 단어의 리듬을 느끼는 순간, 글을 쓰며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는 과정 모두 빠름과 쾌락 대신 차분함에서 오는 기쁨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삶의 어떤 과제든 오래, 꾸준히 해낼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지루함을 견디며 얻은 내적 안정과 몰입의 힘이야말로 지속적인 창작과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


요즘은 지루함을 견디는 능력은 점점 더 사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믿는다. 지루함 속에 머물 줄 아는 사람만이 삶의 작은 순간에도 마음을 기울일 수 있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다. 영화 속 느린 장면, 책 속 한 문장, 글쓰기 속 반복과 수정이 모두 지루함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빠름과 자극이 주는 단기적 쾌락 대신, 느리지만 깊이 있는 경험 속에서 얻는 만족과 성취는 삶을 더 오래, 더 충만하게 만든다.


결국 지루함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를 발견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워주는 시간이다. 그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만이 삶의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리듬과 에너지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오늘도 느린 영화 속 침묵을 즐기고, 책장 사이에서 조용한 몰입을 느끼며, 지루함 속에서 나만의 에너지를 채운다. 이 차분한 일상이 내 삶의 힘이 되고, 나를 발견하는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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