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보카도 나무와 흰꽃 이야기
창가에 놓인 작은 화분 하나가 요즘 내 마음을 자꾸 멈추게 한다. 한때는 물컵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던 작고 동그란 씨앗. 긴 기다림 끝에 초록의 여린 싹을 틔우더니, 이젠 어느새 나무처럼 키가 자라 창밖 햇살을 받아내고 있다. 그저 싹이 나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이 나무를 응원하게 되었고, 매일 다정한 눈길을 보내게 되었다.
나무를 돌보며 삶의 진실을 깨달아가는 수목원 이야기가 담긴 <나는 나무에 인생을 배웠다. 이종영 지음>에는 식물과 함께하는 삶이 담겨있다.
나무는 경쟁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제 몫의 햇살과 비를 받아 살아간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작은 화분을 보며 오래전 읽었던 이 책 구절이 떠오르는 걸 보니 마치, 나도 오랜 세월 나무와 함께 해오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이 화분엔, 또 하나의 특별한 생명이 자라고 있다. 이 흰 꽃은 사실, 딸아이가 학교 수업 시간에 사용하고 남은 것이다. 학교에 두고 돌보기 힘들 거 같다며, 식물을 좋아하는 엄마 생각이 나 가져온 아기 주먹만 한 비닐 화분이었다.
그 마음이 고마워 아보카도가 자라고 있는 화분 한편에 심어 두었었다. 별 기대도 없이 그저 남는 공간 흙 위에 놓았을 뿐인데..... 그 새싹은 한참을 견디더니, 마침내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내기 시작했다. 아보카도 나무와 흰 꽃이 서로 방해하지 않고 이렇게 어우러져 자라는 모습이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웠다> 저자의 말과 닮았다.
그 흰 꽃은 한철만 피지 않았다. 여름이 지나도, 겨울이 와도, 사계절 내내 환한 얼굴로 피고 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아보카도 줄기를 따라 올라가며 몸을 기대듯 자라나고, 큰 잎 사이로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민다. 남의 등에 기댄 것이 미안하다는 듯이 어정쩡하게 아보카도 줄기에 기댄 흰 꽃 가는 줄기가 안쓰러웠다. 그래서 그 가는 흰 꽃줄기를 아보카도 나무줄기에 끈으로 살짝 묶어주니 마음이 놓였다. 처음부터 '함께' 한 것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처럼 보인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자주 멈춰 서게 된다. 삶이란 저런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우연처럼 다가온 인연이 어느새 삶의 한자리를 채우고, 각자 뿌리로 서 있으면서도 서로를 감싸안는 모습. 그저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나무가 되어주는 것. 아보카도 나무는 더 성장하고 있고, 흰 꽃은 더 환히 웃고, 그 모습이 아름다워 나도 따라 웃는다.
식물은 아무 말 없이 곁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존재에서 무언의 언어를 배운다.
<식물의 말들>
어쩌면 나는 이 화분을 통해, 아주 오래된 삶의 진실 하나를 다시 배우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다름은 어울릴 수 없다는 생각, 각자의 길은 따로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그런 것들을 이 작은 식물들이 깨닫게 해 준다.
한 화분 속에서 자란 두 생명처럼, 우리 삶도 서로 기대며 피어나는 것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