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삶 다시 시작
작은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나는 대입 논술 선생으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수많은 학생들과 함께 언어영역 비문학 독해와 각 대학별 기출문제들을 풀면서 긴 시간을 보냈다. 논술 수업 특성상 평일 늦은 시간과 주말을 반납하면서 글로 세상을 배우고 세상을 설득하는 법을 가르쳤다.
어떤 학생들은 똘망 똘망한 눈으로 제법 논리적으로 접근해 문제를 풀어 나갔지만, 논제에 입각한 논리를 세워 자신의 생각을 정해진 분량에 맞춰야 하는 논술을 너무도 힘들어했던 학생도 있었다. 대학에 보내기 위해 애쓰던나, 대학을 가기 위해 입시제도에 떠밀려 공부한 학생들.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수시 논술시즌이면 학생들도 나도 그야말로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 내 삶은 늘 분주했고, 시간은 촘촘히 채워져 있었다. 그 결과 논술 100% 전형에 합격하는 학생, 수시 3개를 모두 논술전형으로 합격하는 학생들의 합격소식에 가르치는 일은 무척 보람찼다. 하지만 코로나가 닥치면서 갑자기 모든 것이 멈췄다. 그제야 나는 생각했다.
"이제는 나와 가족을 위한 시간을 살아야겠다."
그때부터 우리 부부는 새로운 리듬을 만들기 시작했다. 교대근무였던 남편의 배려로 일주일에 한두 번 북한산 등산을 했다. 대남문 코스, 진달래 능선, 백운대, 원효봉 등 북한산 코스를 계절을 느끼며 올랐다. 사계절을 느끼며 우린 숲 속 공기를 들이키면서 걷고 이야기하며 오르다 보니 지쳐있던 몸과 마음은 다시 건강해졌다.
딸들은 어느새 사회인이 되어 각자의 일로 바빴음에도 엄마 아빠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맞춰 가족등산을 추진했다. 한라산의 숲길을 걸을 때는 안개가 내 숨결에 스미는 것 같았고, 지리산 노고단에서 비바람에 덜덜 떨기도 했고, 가을 월악산 바위길에선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흐르며 내 안의 무언가를 씻어주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산의 표정을 보며, 우리 가족은 오래된 친구처럼 자연을 닮아갔다.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길에서 에너지를 충전했고, 여름 산에선 계곡에 발 담그며 열기를 식혔고, 가을이면 낙엽을 밟는 사각거림에 귀 기울였고, 겨울엔 눈길 위에 찍힌 발자국을 보며 서로의 발자국을 맞췄다.
요즘은 남편의 아킬레스 재건 수술을 앞두고 산행을 잠시 쉬고 있다. 등산화를 신을 때의 설렘을 그리워하지만, 대신 필라테스 기구 위에서 숨을 고르고 삶의 균형을 고르고 있다. 등산이 멈춘 지금 우리는 가끔 드라이버로 바다를 찾고, 차창너머로 펼쳐지는 풍경을 보며 우리는 다시 리듬을 찾아가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불확실한 벽> 구절이 머리에 맴돈다.
"벽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은 살아있는 것처럼 모양을 바꾸며 단단함을 유지한다. 불확실하되, 존재하는 것이 바로 벽이다."
삶이 우리에게 던진 그 '벽'같은 순간들~불안, 허전, 예측불가의 변화~ 모두 살아 있는 성분이었다.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수술과 긴 재활기간을 잘 이겨내어 남편과 다시 예전처럼 건강한 걸음을 걷기를. 그리고 언젠가, 아니 머지않아, 다시 산길에 설 우리를 그려본다. 바람결에 웃음이 섞이고, 발밑으로 뻗은 능선이 길게 이어지는 그날을. 산 능선을 바라보며 김밥과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길.
우리의 미래는 활기차야 한다. 삶의 속도를 줄였지만,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오늘 아침,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완치되면 우리 어디부터 갈까?"
나는 대답 대신 구글맵을 열어 보였다. 우리 계획은 이미 시작되었다.
나는 안다. 나만의 리듬을 찾는다는 건 결국, 우리가 함께 맞추는 리듬을 다시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둘만의 박자에 맞춰서.
그래서 오늘도 나는 다짐한다.
"나는 내가 좋다, 그리고 우리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