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알아가는 시간
퇴직 4년 차 남편과 함께하는 하루는 예전의 '부부생활'이라는 단어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이제는 '동반자'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지금은 다소 느긋한 출근을 하고 있어 아침엔 남편이 커피를 내리고, 나는 샐러드와 삶은 계란 그리고 약간의 빵을 준비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집안일을 나누어한다. 빨래를 널거나 개고, 장을 보고, 함께 운동을 한다. 주말이면 가까운 카페나 바닷가로 나간다.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면서도, 한쪽이 피곤하면 미루고, 기분이 좋으면 즉흥적으로 길을 나선다.
지난 5월 작은딸의 결혼식이 있었다. 남편이 양가 부모님을 대표해 축사를 맡았다. 우리 부부에겐 개혼(開婚)이라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처음엔 유튜브도 찾아보고 지인 결혼식을 가면 심사숙고해 다른 사람들 축사를 듣고 온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어느 날 내게 내민 축사 원고는 결코 흔한 축사가 아니었다. 그건 '아파치족 인디언들의 결혼 축시'였다. A4용지에 손으로 눌러쓴 그 정성이 부성으로 느껴졌다.
<두 사 람>
이제 두 사람은 비를 맞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지붕이 되어 줄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춥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함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더 이상 외롭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동행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두 개의 몸이지만
두 사람의 앞에는 오직 하나의 인생만 있으리라.
이제 그대들의 집으로 들어가라.
함께 있는 날들 속으로 들어가라.
이 대지 위에서 그대들은
오랫동안 행복하리라.
그 목소리는 잔잔하지만 깊게 울렸고, 하객들은 숨죽여 귀를 기울였다. 결혼식이 끝난 후, 많은 분들이 다가와 '내 생애 최고의 축사였다' 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 남편의 감성이 나와 참 많이 닮았구나 하고 놀랐다. 그리고 그 닮음이 이렇게나 따뜻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퇴직 이후의 남편과 나는 새로운 형태의 시간을 살고 있다. 그의 곁에서 나는 나를 더 잘 알게 되고, 내 삶의 속도를 다시 맞추고 있다. 함께하는 오늘이, 나를 알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걸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