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해본 건 처음이었다
아이들이 떠나고 부부만 남은 집안에 고요가 찾아왔다. 남편도 나도 멍하니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다. 티브이를 보거나 책을 읽고 글을 끄적거리는 등....... 그러다 밥때가 되면 나는 남편에게 묻는다.
" 오늘 점심은 뭐 먹을까?"
"날도 더운데 간단히 먹자."
늘 때가 되면 같은 질문 같은 대답만 탁구공처럼 왔다 갔다 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은 점심으로 열무비빔국수를 할 요량으로 국수를 삶고 있었다. 국수를 휘젓다 뜨거운 물이 팔에 튀었다. 어찌나 뜨거운지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문득 처음으로 나에게 물었다.
"나는 나를 좋아했던 적이 있었나?"
이 글은 그날 내가 적어 놓았던 글이다. 서른 즈음, 나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좋은 딸, 좋은 며느리 주변의 기대에 맞춰, 웃고, 참고, 맞추며 어느새 나라는 사람은 꼭꼭 접어 서랍 깊숙이 넣어 두었다.
그땐 그게 성숙한 어른의 삶인 줄 알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언제나 나보다 타인을 우선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살았고, 그만큼 힘들어 쉽게 지쳤다.
아이들이 사회인으로 자립하고, 우리 부부만 남은 저녁 식탁이 익숙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조용히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 남편과 산책하는 길에 마주한 노을을 보다 내게 한 질문이 있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는, 나를 좋아했던 적이 있었나?"
며칠 전, 남편과 카페에 갔었다. 카페 창가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는데 남편이 물었다.
"당신 요즘 뭔가 허전해 보여."
속을 들킨 기분이었다. 잠깐 머뭇거리다가,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부터 나에 대해 좀 알아보려 해."
"응?"
남편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뭔가 울컥했다. 수십 년 동안 입 밖으로 꺼내본 적 없는 문장이 그날 처음 나를 통과해 나왔다. 생각보다 따뜻하고, 생각보다 가볍고, 무엇보다 진심이었다.
지금 나는 예전보다 느리고, 눈가 주름도 늘어났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런 내가 싫지 않다. 오히려 이런 내가 더 좋다. 부드러워지고, 덜 애쓰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웃을 수 있어서.
이제는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온도로 살아가고 싶다. 비로소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가 좋다."
누구의 허락도 필요하지 않은 이 고백이 요즘 내 삶에 가장 단단한 빛이 되어준다.
"나는 내가 좋아"
"좋아하니까 잘해줘야지"
사실 이런 느낌은 언젠가부터 마음에 갖고 있었을지 몰라도 이렇게 표현해 보는 것은 처음이다. 입 밖으로 말하고, 손으로 써보니 왠지 내가 더 좋아지는 기분이다.
'진짜' 내가 뭘 좋아하고, '진짜'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들여다보고 기다려주는 시간. 나 자신을 속이지 말고 '진짜'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하루를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