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서
요즘은 거울 앞에 서면, 예전보다 웃음이 깊어진 얼굴이 보인다. 눈가의 미세한 주름과 입가의 잔금들은 나답게 만든 세월의 선물처럼 느껴진다. 젊을 땐 얼굴에 잡티 하나라도 숨기려고 화장에 정성을 들였다. 이제는 '내가 살아온 시간의 문장'처럼 소중하다.
오래전 읽은 <프랑스인의 방에는 쓰레기통이 없다> 속 프랑스 여성들은 나이와 함께 찾아오는 변화를 은폐하지 않았다. 그들은 피부에 남은 흔적을 지우려 애쓰기보다, 생활과 태도를 바꿨다. 화장대 위엔 스킨케어 제품보다 좋은 향수와 립스틱이 놓여 있었다. 그들의 자기 관리는 젊음을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가장 아름답게 드러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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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들의 방식을 닮고 싶어 따라보기로 했다. 피부를 억지로 팽팽하게 만들기보다, 매일 아침 햇빛을 맞으며 천천히 스트레칭하고, 계절 과일과 제철 채소로 식탁을 채운다. 화장은 선크림정도만, 대신 표정은 더 부드럽게, 주름이 깊어져도 눈빛이 따뜻하면, 얼굴은 언제나 빛난다.
이제 나는 거울 속 내 얼굴을 '고치기'보다 '이해'하려 한다. 작은 주름 하나하나에 깃든 이야기와 감정을 품으며, 내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이 얼굴을 사랑한다. 프랑스 여성들이 말하듯, 나이 드는 일은 추락이 아니라 숙성이다. 그리고 숙성된 얼굴은, 세상 그 무엇보다 우아하다.
문득, 오래전 한 여름날이 떠오른다. 장독대 앞에서 된장을 퍼 올리던 어머니의 손등. 햇볕에 그을리고 주름진 손은, 부드럽게 된장을 눌러 담으면서도 놀라울 만큼 힘이 있었다. 그 손이 나를 길렀고, 그 손의 주름은 세월과 사랑을 함께 새겼다는 걸 그땐 몰랐다.
내 주름 속에도 웃음이 많았던 날의 흔적이 있고, 사랑의 떨림, 아이를 품었던 시간, 그리고 떠나보내야 했던 순간들이 고스란히 주름 접혀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간들은 내 젊음 시절 노동의 증거고, 책상 앞에서 수업자료를 만들고 준비했던 시간들이 만든 자국은 나의 열정이었다.
이제는 이 주름들을 감추지 않는다. 대신 다정하게 쓰다듬는다.
"잘 버텼어. 잘 살아왔어."
나이 들어간다는 건 잃는 일이 아니라, 쌓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려했던 청춘의 빛깔이 바래도, 주름진 얼굴 속에는 더 깊고 단단한 색이 있다. 그건 오직 나만이 만든 색, 나만의 이야기다. 그래서 오늘,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웃는다. 작은 주름들이 참 예쁘다고. 그 속에 내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런 내 모습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