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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단순한 대답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다

by 김남정

"보스, 당신은 산다는 게 뭘 뜻하는지 아시오?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산다는 거요."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열린 책들) 속 대사는 첫 문장부터 독자의 가슴을 흔든다. 규율과 질서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암묵적 강박 속에 사는 우리에게, 조르바는 정반대 삶의 태도를 내놓는다. 그는 삶을 '허리띠를 풀고 부딪히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정의한다.


KakaoTalk_20250908_150425407.jpg ▲책표지 <그리스인 조르바> ⓒ 열린 책들


소설은 우연처럼 시작된다. '나'와 마케도니아인 조르바의 만남. 두 사람은 한쪽 끝과 다른 한쪽 끝에 서 있는 인간형이다. '나'는 책과 사유 속에 갇힌 지식인이다. 삶을 관념으로만 해석하려 한다. 반대로 조르바는 전쟁과 노동, 사랑과 상실을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온 인물이다. 바닷가에서 온갖 궂은일을 하며 몸으로 삶을 살아낸 사람이다.


삶을 이론이 아니라 경험으로 이해하는 조르바와 삶을 글과 사상으로만 붙잡으려는 '나'. 두 사람은 생김새부터 언행, 삶의 방식까지 극과 극이다. 그러나 이 상반된 두 사람이 대화 속에서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긴장과 울림, 서로를 비추는 장면은 단순한 대비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두 얼굴을 드러내는 장치다.


조르바는 자유롭다. 그의 삶은 거칠지만 솔직하다. 그는 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을 피하지 않으며, 순간의 욕망과 기쁨을 숨기지 않는다. 자유를 위해 망설이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산다"라는 그의 목소리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동시에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반면 '나'는 두려움과 계산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억누른다. 그가 조르바와 나누는 대화는 단순한 언쟁이 아니라, 우리가 늘 부딪히는 내적 갈등을 상징한다. 이 두 인물의 대화는 곧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싸우는 두 자아, 본능과 이성, 욕망과 절제, 안전과 자유, 두려움과 용기. 소설 속 두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 속에서 맞부딪히는 두 개의 그림자다.


니코스 카잔자키스(1883~1957)는 크레타섬 출신의 소설가이자 사상가다. 그는 인간의 자유와 구원이라는 보편적 문제를 문학 속에 집요하게 탐구했다. <그리스인 조르바> , <그리스도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다>, <최후의 유혹> 등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문제, 자유와 구원에 대한 갈망을 집요하게 탐구했다. 특히 <그리스인 조르바>는 그가 추구한 실존적 문학의 정수라 불린다. 단순한 인생담이 아니라, 철학적 물음이 스며 있는 작품이다.


책 속 대화들은 짧지만 강렬하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죽음을 어떻게 맞아야 하는가?",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조르바의 언어와 행동 속에 녹아 있다. 그렇기에 <그리스인 조르바>는 단순히 자유분방한 사내의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는다.


책장을 덮고 나면, 우리는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내 삶은 관념 속에 머물러 있는가, 아니면 허리띠를 풀고 한 번뿐인 삶에 몸을 던지고 있는가? 하고 우리 자신의 삶을 비춰보게 하는 거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 역시 불안과 갈등으로 흔들리고 있다. 경제적 불안, 정치적 혼란, 개인의 고립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같은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진정한 자유인가?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자유를 꿈꾸지만, 동시에 두려움에 발목이 잡힌다.


조르바의 대답은 단순하다. 지금 이 순간, 몸으로 살아내라는 것. 삶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며, 두려움 대신 춤추듯 부딪히는 순간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의 몸짓으로 삶을 껴안으라는 것이다. 니코스 카잔자키스는 말한다.

"말이 어떤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그 말이 품고 있는 핏방울로 가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문장들이 오늘날에도 생생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조르바의 대화와 행동은 단순한 이야기의 장치가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를 흔드는 핏방울 어린 언어다. 결국 이 책은 우리 안의 두 자아를 마주하게 만든다. 안전을 택하려는 이성과, 두려움 없이 자유를 향해 몸을 던지고 싶은 욕망.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리에게, 조르바는 단호히 말한다.


"한 번뿐인 삶, 겁내지 말고 춤을 추라."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다시 권한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단순한 고전이 아니다. 여전히 피가 통하는 책,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거는 책이다. 글을 쓰는 이들에게 핏방울 스민 언어의 가치를 일깨우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자유의 몸짓을 기억하게 한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63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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