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담론> 4장 손때 묻은 그릇 -필사

by Rx


우리가 고전을 공부하는 까닭은 장기 지속의 구조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카를 융은 무의식의 세계애서는 인과율이 아니라 동시성의 원리가 작용한다고 합니다. 융은 <주역>의 점이 예시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폅니다. 죽간(竹簡)의 세계와 인사(人事)의 세계가 통할 수 있다고 합니다.


탈근대의 과제가 바로 존재론부터 관계론으로 전환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양효, 음효 라는 효 자체의 존재성보다는 효가 처해 있는 자리와의 관계를 중시합니다. 그래서 관계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존재보다는 관계를 중시합니다.


효가 실위(失位)한 경우라도 정응(正應)이면 허물이 없다(无咎)고 합니다. 이것은 관계의 범위를 키우면 그만큼 더 힘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응(應)을 '덕을 쌓는다', '인심을 얻는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아래위가 전도되는 것이 혁명입니다. 실제로 억압 구조가 붕괴되고 상하가 역전될 때 교통이 일어나는 것도 맞습니다. 모든 억압된 목소리들이 해방됩니다. 프랑스혁명으로 루브르 궁정인 박물관이 됩니다. 파리가 예술의 도시인 것도 수많은 억압된 목소리들이 해방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혁명의 현장 그 자체가 드라마틱한 예술이기도 할 것입니다.


<주역>은 세계에 대한 인식틀입니다. 윤리적인 교훈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다시 생각하면 세상에 완성이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실제로 완성 괘는 이 미완성 괘 앞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완성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다만 어떤 국면의 완성일 뿐 궁극적인 완성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고 세상의 변화도 그렇습니다. 작은 실수가 있는 어떤 국면이 끝나면 그 실수 때문에 다시 시작하는 그런 경로를 이어가는 것이 아니까 생각합니다. 이 역시 완성과 미완성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독법만으로 <주역>을 이야기하는 것은 부족합니다 <주역>에서 발견하는 최고의 '관계론'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마치겠습니다. 성찰, 겸손, 절제, 미완성, 변방입니다. '성찰'은 자기중심이 아닙니다. 시각을 자기 외부에 두고 자기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관계 속에 있는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고 뒤에 세우며, 자기의 존재를 상대화하여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배치하는 것입니다. '절제'는 자기를 작게 가지는 것입니다 주장을 자제하고, 욕망을 자제하고, 매사에 지나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부딪칠 일이 없습니다. '미완성'은 목표보다는 목표에 이르는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게 합니다. 완성이 없다면 남는 것은 과정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네가지의 덕목은 그것이 변방에 처할 때 최고가 됩니다. '변방'이 득위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이 네가지 덕목을 하나로 요약한다면 단연 '겸손'입니다. '겸손'은 관계론의 최고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역>의 지산겸(地山謙)괘는 땅속에 산(山)이 있는 형상입니다. 땅속에 산이 있다니 자연현상과 모순인 듯합니다. 해설에는 "땅속에 산이 있으니 겸손하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많은 데를 덜어 적은 데에 더하고 사물을 알맞게 하고 고르게 베푼다(地中有山 謙 君子以 裒多益寡 稱物平施)"고 합니다. 우뚝 솟은 산을 땅속에 숨기고 있어서 겸손하다고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산을 덜어서 낮은 곳을 메꿔 평지로 만드는 것을 뜻하는지도 모릅니다. "겸손은 높이 있을 때는 빛나고, 낮은 곳에 처할 때에도 사람들이 함부로 넘지 못한다(謙 尊而光 卑而不可踰)." 그러기에 겸손은 "군자의 완성(君子之終)"이다. 가히 최고의 헌사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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