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몇 차례의 사형구형과 사형언도의 법적 근거는 반국가 단체를 구성하고 그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국가보안법 1조 2항이었습니다. 그 반국가 단체라는 것이 60년대의 학생 서클이었습니다. 학생 서클 여러 개를 합하면 반국가 단체가 된다는 논리였습니다. 당시 변호를 맡았던 두 분의 변호인이 대법원 상고포기를 권했습니다. 이런 판결을 대법 판례로 남기는 것이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1971년 5월 5일 어린이날이었습니다. 나는 헌병 2명의 호송을 받으면서 육군본부 고등군법의회로 출정하여 상고포기서에 서명했습니다. 그 서명으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습니다.
나는 같은 추억이라도 하더라도 당사자들의 마음에 남아 있는 크기가 서로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힘겨운 삶을 이어 왔을 그들에게 청구회에 대한 추억이 나의 것과 같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나는 사형이 집행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혹시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또 스스로 비극을 극대화하는 심리적 충동도 없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은 늘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심지어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사형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준비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유일한 위안이라면 총살형이었습니다. 어두운 형장의 교수형보다는 콩도르세(Marquis de Condorcet)가 그리도 간절히 원했던 총살형, 찬란한 햇빛 속에서 땅에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최후가 위로라면 위로였습니다.
5명 사격조 중 한 사람은 공탄입니다. 5명 모두 자기가 공탄이겠지 하는 기대를 갖겠지만 공탄일 확률이 5분의 1밖에 안 됩니다. 명중시키기를 꺼려서 빗나가게 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공탄 한 발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머지 네 명 중 누구 한 사람도 심장에 명중시키를 꺼렸던 것입니다. 빗나가고 어깨에 맞고……충혈된 눈으로 군목을 향해서 살려 달라고 외쳤습니다. “목사님 살려 주세요! 한 번 집행했으면 됐잖아요!” 놀란 헌병 중위가 권총으로 확인 사살을 했습니다. 그것도 여덟 발 한 그립을 다 발사했다고 합니다.
전도사는 눈을 원하고 그는 혹시나 감형이 되기를 원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신 중위님, 나 진짜 살고 싶어요!”그 때였습니다. ‘푸른 보리밭’은 지금도 내게는 그 때의 기억과 함께 ‘생명’의 벌판입니다.
기어이 살려내서 기어이 사형시켰습니다.
그러나 생각하면 그 끝 모를 피로감은 육체적인 것이기보다는 정신적 공황에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구속, 취조, 재판, 언도의 전 과정은 어느 것 하나 충격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사건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너희등이 통일하려고 그랬어? 혁명하려고 그랬다면서?” “그런 건 다 때가 되면 우리가 알아서 하는 거야. 걱정 하지마. 통일도 우리가 하고 혁명도 우리가 할거야”
‘남의 아들에 대한 전기고문과 자기 딸의 감기약’, 그 극적 대비는 차라리 슬픈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남한산성에서 남산 취조 현장의 경험을 서로 이야기하다가 놀랍게도 ‘감기약’이 연출된 수사 기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다른 사람 역시 비슷한 경험을 토로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더 큰 충격이었습니다. 스스로를 냉혹한 인간으로 연출함으로써 피의자를 몸서리치게 하는 수사 기법은 한 인간에 대한 절망을 넘어서 정치권력 그 자체에 대한 소름끼치는 공포였습니다.
약 30여 개 항으로 되어 있는 ‘재소자 준수 사항’ 중에 상당히 앞쪽 순위에 재소자는 자살을 해서는 안 된다는 항목이 있습니다.
돌담과 대문이 허물어져 있고, 마당에 잡초 가득하고, 기와가 흘러내리고, 마루와 문틀이 해체되는 그 소멸의 미학이 한 가닥 위로였습니다. 무기징역 그것은 사형보다는 더딘 소멸이었습니다. 한 가지 다행스러웠던 것은 우리 시대의 감추어진 칼을 미리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은 소멸의 세월과 대결하는 한 조각 철편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훨씬 후에 알게 되지만 세상의 모든 소멸은 결코 소멸되지 않는 것을 함께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작은 추억에 인색하지 말아야 하는 까닭은 추억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뜻밖의 밤길에서 만나 다정한 길동무가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요사이는 좋은 아이가 참 드물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