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세상에 나쁜 일이 발생하는 까닭은
사악함이나 잔인함이 아닌 나약함 때문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p 246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하반신 불구의 장애를 가진 에디트가 나와 닮아 상대 남자 주인공 호프밀러의 적나라한 감정에 상처를 받고 울기까지 했다. 나의 사랑은 컴플렉스로 뒤범벅된 자기 연민과 자책, 무력, 혐오로 끝나버렸기에 자살한 그녀와 다를게 없었다.
그러나 나같이 죽지 못하고 좀비처럼 삶을 사는 이에게도 잡초의 씨앗처럼 움트는 의지가 있었다. 꺼진 불도 뒤적여 살펴보는 마음으로 이 비극도 나에게는 거름이었다.
내 사랑의 시작은 니의 결핍을 채워줄 숭배 대상에 대한 짝사랑이었다. 상대의 불완전함을 확인하면서 연민은 솟아오르고 더더욱 집착하였다. "내가 잘할께" 구애는 거의 찌질한 호소였고, 나의 종지 그릇만한 마음은 넘치고 금방 지저분해졌다.
여성으로서 나는 그에게 공주마마님이 되고 싶었고, 그가 백마탄 왕자님이 아니더라도, 흑기사 정도는 됐으면 했다. 내가 꿈 꾼 판타지는 현실에서 막장드라마로 펼쳐졌고, '내 인생에 있어 남자복은 없구나'라는 중간 결론을 내렸다. (중간 결론이라니! 이 여지가 얼마나 발칙 귀여운지 스스로 실소하게 된다.)
하지만 비장한 결심으로 인생을 걸고 사랑을 해본 나는 이제는 조금 알것만 같다.
상대에게 기대하고 바라는 사랑이 얼마나 위험한지.
가난한 직업군인 호프밀러가 벼락부자집 무남독녀 장애여성 에디트에 대한 심경 변화를 읽어가면서 드는 생각은 이 둘이 결혼으로 맺어졌다 하더라도, 에디트는 호프밀러에게 만족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불안, 초조로 신경질 버럭쟁이 맹인 아내에게 한결같이 조심스럽게 배려를 하는 콘도어는 최수종이나 다름 없었고, 호프밀러는 그저 평범한 인간, 자기 한계에 계속 부딪히는 것이 부담스러운 어린 사람이었다. 그의 시간대는 콘도어처럼 결실을 나누는 시간이 아니라, 성장 촉진제를 맞고 가지치기도 못한채 무리하게 성장을 강요당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닥친 상황에 누군가를 연민으로 책임지고 사랑하겠다 하는 결심까지 이르렀다 하더라도, 불쑥 튀어나오는 그의 불안과 초조한 마음은 해소되지 못한채 일상의 반복적인 수고스러움 속에 드러나 서로를 찔러댈 것이다.
사람은 쉽게 피곤해지고 짜증이 나기 쉽고, 자기 운명을 살아가느랴 내면은 늘 바쁘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의 대상이 내 짐을 덜어주고, 내 편의를 잘 돌봐 줄 것같은 기대를 하고 그 한 사람을 찾아 평생 동행하자 아름다운 약속을 한다고 생각한다. 대게는 순수한 사랑을 바라지만 결국은 이것저것 다 따지고 내가 얻을 것이 많은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사랑이 결핍에 의한 숭배였든, 연민이었든 시작점은 순수하지 못한 동기였으나, 사랑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고 실천해야하는 의미라고 생각이 된다.
사랑을 받지 못해 절망하는 에디트를 보면서 나는 내 안의 에디트에게 말했다.
"에디트 너는 너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 그래야 다른 이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 너는 사랑 받을 줄 몰라. "
" 에디트, 너는 너의 운명을 살아야돼. 꿋꿋하게. 그걸 배워야 돼."
'에디트에게 헨렌켈러의 앤설리반 같은 스승의 인연이 먼저 닿았더라면 그 다리 부리진 작은 새는 훨훨 나는 법을 배웠을 텐데.' 자살로 맺은 결말 떄문에 아픈 내 마음에 때 늦은 처방을 내려본다.
운명을 직면하는 일, 나를 바로 보는 일은 너무 힘들다. 아픈건 아픈거고, 외로운 건 외롭다. 고통스러운데 하기 싫은데 스스로 자존하는 일은 나에게 폭력처럼 다가온다.
사랑에 의존하고 싶었다. 호프밀러처럼 불완전한 사람에게서라도 도망간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세상 미친년 여기 있네 울어재꼈다. 나와 당신의 취약성을 어떻게든 기워서 살아내면 될것만 같았다. 가정을 지킨다는 말은 나에게 그런 의미였다.
아직도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나 또 혼자 비장하게(호프밀러는 비장하게 말하는 것을 혐오했다ㅠㅠ) 스스로 정의하고 일생을 통해 실천해야 할 과제처럼 남겨졌다.
그래서 그를 놓아주기로, 그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그가 그의 운명을 꿋꿋하게 잘 살아가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