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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준 Oct 01. 2021

레바논 하이.

4월 20일 화요일. 레바논에 도착.


아직도 끝나지 않은 긴 비행. 잠에서 깨어 눈을  떠보니 사막 한복판. 아부다비였다.

태어나서 처음보는 사막이기에 일단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끝 없이 펼쳐진 모래섬을 구경하였다. 


처음 보는 자연 환경을 비행기를 타고, 창 밖을 통해 보니 늘 다른 마을로 여정을 떠나는 만화 포켓몬스터의 주인공 지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화 포켓몬스터는 기본적인 여행자의 스토리 플롯에 충실하다. 처음에는 약한 주인공이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성장한다. 각 고장별로 존재하는 포켓몬 관장과 대결을 하고, 이기면 뱃지를 얻는다. 과정 속 성장하였다는 증거는 뱃지를 통해, 다시 그간 모아온 뱃지를 통해 증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뱃지란 무엇인가? 무엇인가의 증표이자 기념품이다. 어린 아이들부터 기본적인 본인의 경험을 기념하는 소유의 욕구. 물건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 어렸을 적 개울로 가면 다슬기를 그렇게 많이 잡고, 바닷가로 가면 조개를 많이 잡았다. 그 크기가 크면 클수록 자랑스러웠다. 놓아주라는 부모의 말이 어찌나 서럽던지. 나에게는 다슬기와 조개가 뱃지였다.


더 이상 다슬기와 조개를 모으지는 않지만, 아직도 주위를 돌아보면 스타벅스의 I was here cup 이나 또는 무언가를 수집하는 이들을 흔히 철 없다 라는 말로 치부하는 것을 볼 수 있고, 밥 한끼만 먹어도 사진을 찍는 것은 이제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내 어렸을 적 다슬기와 조개는 사진으로 남았다. 요즘은 사진도 인화하지 않고 데이터의 형식으로 소장한다. 소장하는 사진이 방대하기에 휴대폰의 용량은 시간을 거듭할 수록 커져만 가고, 이마저도 부족하여 클라우드나, 더 편하게 보기 위해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를 사용한다.


점점 순간과 그 성장을 기념하는 방식이 단순해졌다. 롤렉스에 관한 조승연 작가의 유튜브 영상을 시청한 적이 있다. 시계와 남성의 복장에 대한 변천사를 예시로 들며 이전 세대의 캐주얼이 이후 세대의 클래식이 된다는 내용. 전통복장을 클래식하게, 이를 캐주얼 하게 만든 것이 턱시도. 이후의 세대는 턱시도를 클래식하게 정장을 캐주얼로. 그 다음 새대는 정장을 클래식하게 받아들인다. 손목 시계도 지금은 클래식이지만 이전에는 스포티함의 대명사.


창 밖에 흘러가는 모래섬들을 재빨리 아이폰으로 담고 인스타그램에 올리리라 다짐하였다.


21시간의 비행이면, 대부분이 휴대폰의 배터리 방전을 걱정한다. 성경에 보면 잔치를 앞두고 등유를 챙긴 여인, 그렇지 못한 여인들 두 부류로 나뉘고, 비행기에는 보조 배터리를 챙긴 인원들과 그렇지 못한 인원들로 나뉜다. 


어찌보면 다들 살아생전 가장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서 생소한 분쟁지역에서 8개월 살이를 하는 것. 

자신들의 안부를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은 당연한 것이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에 보면, 오디세우스의 섬바디와 노바디의 내용이 있다.

노바디로 레바논에 왔어도 누군가는 나를 찾는 연락이 있을 것이다. 레바논의 베이루트 공항에 내리면 나에게 안부를 묻는 카톡들이, 기내여서 확인하지 못했던 카톡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기대하는 그 심리가 섬바디로서의 마음을 비우지 못한 것 아닐까. 


옆자리 영진이한테 아직 얼마나 남았냐를 여섯번 물어보았던, 기나긴 비행을 마치고, 다시 무거운 짐과 옷가지를 가지고 공항에 내리자마자 숨이 턱하고 막혔다. 아무래도 한국의 4월은 다소 쌀쌀하였고, 앞서 말했다시피 캐리어에 실을 수 있는 무게 제한으로 인해 체육복 위에 전투복 위에 바람막이까지 몇 곂이나 껴입었는데 눈 뜨고 일어나 중동 한복판에 내리니 그럴 법도 하였다.


수하물로 부친 캐리어를 찾고, 모두들 일렬로 서서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였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 하며, 우리를 안내해주는 현지 유엔 직원들을 귀찮게 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모두들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역시 군대는 군대였다.


공항을 나와서는 전세 버스를 타고 부대로 이동하였다. 45인용 버스를 타고 공간이 좁아서 다들 무릎 위에 짐을 올렸다. 정말이지 옷 때문에 땀은 나지, 날씨는 중동이지, 버스는 좁지, 무릎 위에 짐이 있지, 21시간의 비행으로 지쳤지, 이제 그만 샤워하고 에어컨 키고 침대에 누워서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드디어 버스가 출발하였다. 예상 소요 시간은 2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오케이. 21시간 비행기 탔는데 2시간이야 아무것도 아니지. 가는 길에 풍경이나 많이 눈에 담아두어야겠다.


우리를 호송하고 경계를 제공하기 위해 UN 탄자니아 대대의 헌병대와 레바논 군이 베이루트 공항에 왔다.

주둔지까지 2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를 함께 가줬다. 우리가 보호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위치에 있는 손님이라는 기분. 지금은 우리가 탄자니아 헌병대와 레바논 군에게 경계를 제공받지만, 우리도 진을 전개하면 임무를 함께 수행하고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 마지막으로 우리는 한 팀이라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도로 상태가 많이 좋지 않다고 들었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 다만 신호가 없는 것이 마치 베트남 같은 느낌이 들었다. 먼저 머리부터 들이 밀었따. 차들은 대부분 낡았다. 바로 그때 교차로에서 차량이 길게 막혀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레바논 군이 차량을 이용해 도로를 막아버린 것이다. 우리가 바로 통과할 수 있도록. 그 광경을 목격한 우리는 모두 박수를 쳤다. 누가 시작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대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와 이거 한국이었으면 난리났다. 뉴스에 바로 나왔다."

공보과장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맞다. 아마 공보과는 언론 대응 조치로 박수를 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계속해서 관찰해본 레바논의 도로 위의 모습은 우선 최신 차보다 멀쩡하지 않은 차를 찾는 것이 더 빠르다.

간혹가다가 새 차들도 보이기는 했지만, 다들 어딘가 부족하다. 기스와 페인트가 벗겨지고 녹이 슨 것은 애교의 수준이다. 헤드라이트가 꺠져있고, 유리창이 없는 차량. 심지어 본넷이 없는 차도 보았다.


신호등은 거의 보지 못하였고, 도로 곳곳에서 교통사고가 나 있고 싸우는 모습을 2시간의 운전 간 4건을 볼 수 있었다. 서로 흥분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필히 적어도 둘 중 한 차는 무보험일 것이다. 


거리에도 마스크를 쓴 사람들보다 쓰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았고, 벽들은 이름 모를 낙서들이 스프레이로 쓰여져 있었다.


도로를 30분 정도 더 달리자 우측에 지중해가 나타났다.

 아름다운 지중해. 관광 산업은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벅스와 맥도날드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호송차들이 길게 늘어섰다. 두어시간 뒤 도착. 높은 고지에 위치. 생각보다 괜찮은 여건. 언덕에 올라가니 새로운 환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중에 기념사진을 찍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도착하고 내리자 24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준비하였는지 플랜카드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각자 자신의 후임자들을 무서울 정도로 찾고 있었다. 

 처음 본 24진의 느낌은 무인도의 느낌이었다.


 모두들 지친 몸을 이끌고 방으로 돌아와서 짐을 두었다. 우선 2주 격리가 원칙이기에 컨테이너 한 동에 3명씩 살아야 했다. 공간도 마땅치 않고, 2주 뒤에 다시 이사를 해야하기에 짐을 풀지 않았다. 2주간의 격리 살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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