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데리고 살아야 한다

등지는 이야기_5

by 느루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잇몸이 내려앉으면 그땐,


“밥을 먹으려면 이빨이 필요하다고, 제 아무리 멋진 턱도 이빨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프란츠 카프카 - 변신)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해내자는 마음으로 늘 하나씩 헤쳐온 10년.

이빨이 하나씩 빠지면, 잇몸도 소용없다는 걸, 인간은 왜 모르는가,

씹을 수 없다면, 몸이란 것은,

신진을 변화하는 것을 멈춘다는 걸,

삶의 끝에서 왜 깨닫는가,


내 병명은 쉽게 말하면 ‘못 먹는 병‘

내과를 3개월 전전하다, 대학병원에서 받은 진단명은 “위마비”


나는 벌레보다 못하게 되어서야.

‘성실‘을 목표로 하는 달리기 삶의 끝은

‘죽음‘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제야 주변이 보였다.

유년기부터 병환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

걸어갈 시간을 먼저 걷고 노년기를 보내는 이들,

다음 페이지는 스스로 밥벌이가 어려운 약자,

정확한 병명은 나오지 않는 아픔이 있어 일상이 어려운 삶,

마지막 페이지는 설명없이 일상이 멈춘 삶들.


‘교만한 움직임, 저것도 인간의 자유로구나’(프란츠 카프카 - 변신)

살고 싶어 서울에서 도망친 2024년의 움직임 속 애처로움도, 인간의 자유일까,

네 발의 짐승이기에 가능한 일들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것을

오늘도 짙게 반성한다.


하루가 24시간이 아니었던 시간들을 떠올린다.

대학병원에서 퇴원을 만류하던 선생님의 목소리와 함께

그 시간이 머리를 파랗게 물들인다.


오른쪽 팔에 언제든 수술이 가능한 바늘을 꼽고

단백질을 혈관으로 주입하며, 근근히 먹던 갈려져 있던 바나나의 향을 기억한다.


앞 침상에 누워계신 어머니를 찾아온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임자” “임자” “나 왔네 임자”

감히 그들의 삶을 예측할 수 없다.

그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는 울 자격도 없다.

천장만을 유일하게 바라보는 아내의 눈을 바라보며

그녀를 부르는 남편의 목소리를 듣는다.


도저히 걸음을 뗄 수 없는 다리지만, 상체는 건장한 남성의

휠체어를 잊지못한다. 젊은 아들이 휠체어를 민다.

그는 이미 병원의 일상에 스며들어,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내 시간이 48시간이었다면,

그들의 시간은 몇시간일까. 비교가 가능한가. 비교가 되는가. 비교해도 되는가

가늠이 되는가,


혼자 병실을 지키다 보낸 시간에,

그새 살이 더 빠진 순간에,

먹질 못하니 식사 신청도 의미가 없다 하시던 선생님의 말에,

나갈 힘도 잃어 복도라도 거닐면 시간이 갈까,

거닐다 보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1인실이 있다.

6평 남짓 병실이 세상인 사람이 그곳에 있다.

아직 있다.

있을거다.



흙에 잠시 닿았던 모든 숨결에게, 존경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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