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et Perry There | 5.
“에리카….”
어딘지 기묘한 충격을 받았다.
“함부르크! 에리카의 모퉁이! 로키 이 자식!”
당장 방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었다. 로키는 이미 모든 것을 계획했던 것이다. 반드시 부츠가게를 찾아야 했다. 분명 거기에 다음 단서가 있을 것이다. 최대한 신사적으로 차려입고 구두를 꺼내 신었다.
나는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작은 골목을 통해 구시가지로 향했다. 뮌스터의 작은 길들이 표시된 종이 지도와 수첩 그리고 알리바이가 되어 줄 사진기를 챙겼다. 철없는 설렘을 품고 시내에 접어들었다.
사실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
C.D.F의 그림 속 남자.
그리고 그림자를 잃어버린 사내가 오랜 여행 끝에 도착한 도시 함부르크.
'그는 정말 이곳 뮌스터로 온 걸까?'
찾아보니 뮌스터 란 도시는 유럽 군데군데 존재했다. 게다가 많은 도시에 ‘뮌스터 길’이나 ‘뮌스터 광장’이란 지명이 있음을 알게 됐다. 뮌스터 란 단지 교회로 가는 길 이란 뜻을 가졌던 것이다.
'이 도시가 과연 하리가 있던 그곳이 맞을까?'
여러 가지 해결되지 않는 질문이 떠올랐다. 방금까지 충만했던 설렘과 기대가 의심에 부딪쳤다.
구시청사와 맞닿아 있는 길로 건너기 위해 돌 길 위에 잠시 멈춰 섰다. 건너편으로 어제 실내화와 실내복을 산 아케이드가 보였다.
무심코 길을 건너려다 달려오는 마차를 세웠다. 마부가 독일어로 무어라 소리쳤다. 씩씩대는 말의 입김이 겨울 아침 햇살처럼 피어올랐다. 그 입김이 사라지고, 눈앞에 숨길 수 없이 커다란 단서가 들어왔다.
“Café Pablo. [1]”
그곳에는 색소폰을 불고 있는 남자의 나무 조각상이 서 있었다. 하리 할러, 그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파블로!”
당장 유리문으로 돌진했다. 통유리로 탁 트인 카페는 오픈 준비에 한창이었다. 몇몇 직원이 분주하게 오가며 카페를 정리하고 있었다. 두꺼운 암막 커튼 사이사이로 직원들이 카페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여기저기 옮기는 것이 보였다. 커다란 이삿짐 상자에 담긴 것들은 철 조각, 커다란 나뭇가지, 그림, 쇠 공, 벽돌 같은 것이었다.
‘뭘 하는 거지? 카페가 맞나?’
유리문 앞에 서서 카페가 오픈하기를 기다렸다. 기다렸다는 듯 축축한 공기가 침범했다.
“도대체 이 날씨는 언제쯤 개는 거야.”
차갑고 축축한 아침 공기 때문에 기침이 나왔다. 겨울 내내 감기에 걸리기 좋은 날씨다. 참다못해 아케이드 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실내 이탈리안 젤라또 가게에서 레몬 아이스크림을 샀지만 포르토의 레몬 맛과 달랐다. 역시 마노엘이 말이 맞았다.
“갓 딴 레몬에선 이런 맛이 안 난다고.”
책방에 들어가 읽을 수 없는 책들을 보면서 억울한 기분으로 쓸모없이 시간을 보냈다.
“이 참에 독일어를 좀 배울까.”
당당하게 초급용 교재를 집어 들었다. 초심자는 언제나 죄책감 없이 가슴을 펼 수 있다. 못 하는 건 단지 그가 처음 이기 때문이니까. 슬슬 카페 파블로로 돌아가 보았다. 그나마 열려 있던 유리문에도 검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빈틈을 발견하기 위해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어?”
입구 유리문 안으로 작은 메모가 붙어 있었다.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읽을 수 없을 만큼 자잘한 글씨였다. 그것은 영어로 쓰여 있었다.
안녕하세요. 궁금한 게 있으신가요?
아무래도 관광객이 더 많이 찾는 카페 인 모양이었다. 현지인이 많이 찾는 가게라면 독일어로 된 메모를 붙였을 것이다. 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데 검은 커튼 사이로 손 하나가 불쑥 나타나 다음 메모를 붙였다.
마술극장,
미친 사람만 입장할 수 있음.
알자스 나 노르테 와인.
날고기에서 나는 김처럼 뜨겁고 거친 음악.
그 손의 주인을 찾기 위해 재빨리 문 손잡이를 밀었다. 문은 굳게 잠겨 있다. 노크를 했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이봐요. 그래서 이 마술극장이 언제 란 말입니까?”
그것은 분명 초대장이었다. 오래된 돌담에 붙어 있던 이상한 메모처럼 누군가 하리에게 보냈던 바로 그 초대장!
아케이드 모퉁이에 통유리를 이어 붙인 카페 파블로를 다시 한 바퀴 돌았다. 빛 하나 새 나오지 않도록 검은 커튼으로 꼼꼼하게 막혀 있었다. 사진기를 꺼내 암막으로 가려진 카페를 찍었다. 혹시 무엇이라도 나올지 모른다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대체 뭘 하자는 거야?”
점점 로키가 수상했다.
‘그 녀석은 날 어떻게 찾았지? 내가 그 시간에 다이히토어에 있을 거란 걸 어떻게 알았냐고.’
빨리 페리를 만나고 싶어 졌다.
“그 녀석은 왜 나를 따라다니지? 하지만…. 그 이상한 사진을 찍었다는 건 내가 먼저 말했어….”
길을 걷던 노 부인이 혼잣말을 하는 외국인을 수상쩍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뮌스터 재즈 페스티벌에서 녹음한 쳇의 Strollin’을 들으며 눈에 닿는 길을 따라 정처 없이 걸었다. 어느새 돌길이 끝나고 아스팔트로 닦인 길에 다다랐다. 시 외곽으로 가는 길이었다. 다시 한번 북쪽으로 걸었지만 이번에도 오래된 부츠가게는 찾지 못했다.
결국 류노스케 씨의 작업실 쪽으로 걸었다. 하지만 만약 무슨 사건이 있었다면 가지 않는 것이 현명했다. 신문을 하나 사려 작은 키오스크에 들어갔다. 되도록 뮌스터 지역의 소식만을 담은 작은 신문사의 것이 좋다. 모두 독일어라 무엇을 사야 할지 헷갈렸다.
“이 도시 신문은 뭡니까?”
험상궂게 생긴 주인이 나와 친절하게 하나를 골라 주었다. 첫인상은 틀렸다.
“더 필요한 것이 있으신가요?”
“가스 물 하나 주세요.”
페리처럼 가스물을 주문했다. 긴장 됐던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페리는 역시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물을 부르는 명칭 때문에 어떤 사람을 믿을 수도 있다. 누렇게 쇤 풀이 기울어진 길 앞에서 망설였다.
‘사슴이 또 있을 거야.’
커다란 매 한 마리가 머리 위를 뱅그르르 돌아 날았다. 먹이를 찾는 모양이었다.
“쥐라도 한 마리 있겠지.”
사진기를 손에 들고 흙 길로 들어섰다. 멈춰 서서 몇 장 사진을 찍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잘 찍으면서 다니고 있지? 이번 주 내로 뭐라도 보내 줘 봐. 결정은 내가 할게. 니 사진 보고 싶어.’
이 문자는 나의 알리바이를 완벽히 증명할 것이다.
‘안녕, 안 그래도 사진 찍으러 나왔어. 멋진 사슴 사진이 있어.’
‘정말? 기대되는데!’
‘전시 준비는 잘 돼 가?’
‘말도 마. 하나하나 다 결정을 해야 해. 이런 일을 어떻게 그렇게 매끄럽게 해냈어? 정말 잘 생각해 봐. 여행하면서 너의 재능이 뭔 지 실컷 생각해 보라고.’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기에 가능했다. 진의 작품을 어디에 어떻게 걸 것인 지. 어떻게 팔 것인 지. 결정하는 것은 쉬웠다. 뛰어난 재료가 있으면 결정을 하는 건 손쉽다. 적절한 순간에 작품을 빼내는 것. 그것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생각해 볼 게. 고마워.’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평범한 이들의 자잘한 재능에 감탄한다. 나로서는 슬픈 칭찬이었다.
‘일을 처리하고 잘 짜 맞춰 돌아가게 하는 일이란 누구나 훈련이 되면 할 수 있는 일이야. 그런 게 좀 비면 어때, 작품이 다 알아서 할 거야. 걱정 마.’
그 메시지를 끝으로 휴대폰은 가방에 넣어 버렸다. 멀리 누런 수풀이 움직였다. 재빨리 렌즈를 조준해 사진을 남겼다. 흔들리던 수풀은 늘어선 나무 들 쪽으로 물결처럼 사라졌다. 바람이 잦아들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류노스케 씨의 아뜰리에다. 호흡을 가다듬고 다가갔다. 지중해 식으로 지은 붉은 벽돌집이 보였다. 4인용 금빛 컨버터블이 주차되어 있었다.
‘누군가 와 있어.’
안심과 불안이 동시에 덮쳤다. 진주 빛 펄이 도는 범상치 않은 자동차. 류노스케의 취향은 아닐 것 같았지만 사람이란 여러 가지 물건을 산다. 정문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저…. 류노스케 씨?”
남자가 문 앞에 서서 당당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누구십니까?”
“아, 저는 류노스케 씨를 찾아왔습니다만.”
“저도 류노스케 입니다만, 아버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드님 이군요. 아버님을 기차에서 만났습니다. 함부르크에서 오던 길이었는데, 명함을 주셨어요.”
“지금은 안 계십니다. 아버지는 바쁘시거든요. 이거 죄송합니다.”
“아니요. 뮌스터에 머무는 동안 언제든 또 오면 되지요. 괜찮습니다.”
그가 물었다.
“혹시 이 전에도 오신 적이 있으십니까?”
“네?”
그 질문에 당황했지만 이내 아니라고 손을 저었다. 나는 유 탐정의 여유로운 미소를 떠올렸다.
“그럼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그는 내가 저 멀리 수풀 속으로 꺾어 들어갈 때까지 정문에 서서 바라보았다. 오솔길을 걸어 나가는데 수상한 기분이 들었다.
“깨진 창은 없어. 외관은 모두 말끔하고…. 소리는 안 쪽에서 났지. 무언가 찾는 것 같은 분주한 움직임…. 안에 분명 누군가 있었는데… 방금 본 사람이 진짜 아들이 아닐지도 모르지.”
태연히 속인 쪽은 내가 아니라 그일 지도 몰랐다.
“네오페디아….”
버스에 앉아 네오페디아를 열었다.
류노스케의 이름 옆에 있던 돋보기가 사라져 있었다.
"무슨 장난 인지..."
지금껏 현실로 느껴지지 않던 막연한 예감들이 이 도시에서 생생한 현실이 되어 갔다. 그림자를 빼앗고 빼앗기는 것. C.D.F. 의 그림과 퍼즐처럼 엮인 책들. 모든 것은 관광을 풍성하게 하는 감각적 테마였다. 여행이란 현실을 잊고 색다른 일상을 누리는 것이다. 나는 지금껏 해보지 않았던 것, 해보지 못했던 것, 미뤄 왔던 것들을 정당하게 누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카페 파블로. 이 이야기는 너무나 치밀하게 잘 짜여 있어. 로키가 정말 사기꾼이라면.”
녀석이 무엇을 바라는지 몰라도 나도 웬만큼 사회생활을 한 사람이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미스터리는 허술한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녀석은 반듯한 면이 있긴 하지만….”
구시가지에 내려 다시 한번 카페 파블로를 찾아갔다. 카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버젓이 검은 커튼을 열고 영업 중이었다. 머리가 눈처럼 하얀 노부부가 창가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유리문은 부드럽게 밀렸다. 입구에 서서 카페 홀을 둘러보았다. 카페와 연결된 계단을 따라 2층 미술관으로 올라가는 뒷문이 있다. 흐릿한 햇살이나마 드는 창가에 앉았다. 앳된 얼굴에 순진한 미소를 띤 점원이 메뉴를 들고 걸어왔다. 소녀인 지 소년인 지 알 수 없는 이미지였다. 나는 메뉴를 보지 않고 주문했다.
“알자스 와인으로 한 잔, 그리고.”
메뉴가 쓰여 있는 칠판을 보고 눈을 찌푸렸다. 독일어였다.
“영어로 된 메뉴가 있나요?”
“오늘은 소고기가 들어간 렌즈 콩 수프와 회색 빵, 샐러드가 맛있습니다.”
“그걸로 하죠.”
점원이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죄송합니다만, 알자스 와인은 없습니다. 대신, 식전 와인으로 모젤 게뷰르츠트라미너를 드릴까요?”
“저기 문 앞 메뉴에 쓰여 있었는데요.”
“네?”
이 점원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다.
“그럼 추천하는 걸로 하죠.”
점원은 생긋 미소를 짓고 바 테이블로 돌아가 무어라고 말했다. 키가 크고 다부진 체격의 남자가 바를 맡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관찰했다. 도무지 이상할 것 없는 카페였다.
“그 메모는 분명 알자스 와인과 노르테….”
휴대폰을 열어 노르테 지방을 검색했다. 그곳은 포르토를 포함한 포르투갈의 주였다. 의외로 놀랍지 않았다. 기묘하리 만큼 확실하게 다가오는 그림자에 대한 감각. 나는 그림자를 좇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내가 가는 곳마다 먼저 그림자가 와 있었다.
모든 이야기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은 모두의 인생이었다. 종종 패배하는 인생이 있음을 아는 나이에 아직도 그런 유치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우스웠다. 차가운 화이트 와인이 나왔다. 창가에 반짝 햇볕이 드리웠다. 류노스케 씨의 아들이란 사람이 몰고 온 금빛 컨버터블의 빛깔, 차갑게 빛나는 겨울 오후의 시든 풀숲에 맺힌 빗방울. 달콤하고 청량한 맛이 났다.
“와인이 괜찮은가요?”
점원이 테이블을 세팅하며 물었다.
“아주 맛있습니다. 그런데…. 알자스나 노르테 와인은 정말 없습니까?”
“그 와인을 좋아하시나 봐요. 저희 카드에는 없지만요….”
“아침에…. 그러니까 오픈 준비를 할 때 봤거든요. 작은 카드였는데.”
손으로 조그만 네모를 그리며 말했다.
“그런 카드요? 글쎄요. 수프가 곧 나올 거예요. 음료는 다른 걸 드릴까요?”
“가스 물로 한 병 부탁합니다.”
점원은 처음 보는 사람과도 금방 친밀해질 줄 아는 센스 있는 사람이었다. 주인의 입장에선 시급을 더 주며 데리고 싶은 사람이 있는 가 하면, 공짜로 일을 해 준 대도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다. 물론 두 번째였던 사람도 언젠가 반드시 발전을 할 것이다. 아무리 더디더라도 나아지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며칠뿐이었지만 페리를 만나고 확실히 여유로워졌음을 스스로도 느꼈다. 어느 곳에서도 스스로 편안하다면 서로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함께 흐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누구를 만나도 동요하지 않는 태도야 말로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누구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여유로운 여행의 비결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페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나의 여유로움에 취했다. 시간이 천천히 내가 원하는 알맞은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기묘한 여행 중이다. 그러나 나의 그림자는 안전하다. 지금껏 이보다 여유롭고 설레는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던 가.
‘새미, 죠드, 병호, 상억, 선배… 그리고 은몽과 경애.’
나는 그중 누구라도 될 수 있었다.
렌즈 콩 수프와 탄산이 퐁퐁 솟아 튀어 오르는 물이 나왔다. 점원은 다시 한번 생긋 웃으며 물을 따라 주었다.
“맛있게 드세요!”
감칠맛 나는 소고기와 붉은 렌즈 콩, 셀러리, 당근이 들어 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소한 수프, 얼마든지 먹어도 탈이 나지 않을 음식. 키오스크에서 산 신문을 꺼내 펼쳤다. 어느새 다가온 점원이 와인 병을 들고 서 있다.
“더 필요하신가요?”
“좋죠.”
그녀가 무어라 독일어로 물었다.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표정을 짓자 점원은 다시 생긋 웃었다. 가지런하고 하얀 이가 매력적인 미소였다.
“신문을 어떻게 읽으시려고요? 완전 독일 신문인데요.”
“아, 그냥 뭔가 확인할 게 있어서요.”
“경제란은 여기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주식 시가가 오르고 내린 란을 펼쳐 주었다. 아무것도 읽을 줄 모르는 성인 남자가 관심을 갖는 것이라면 결국 이것 아니겠냐는 표정이다.
“아, 고마워요.”
차마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불행한 사건을 뒤지기 위해 지역 신문을 샀다고 할 수는 없어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더 필요한 게 있으시면 부르세요.”
눈을 맞추고 생긋 웃으며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그제야 나는 그 점원이 여자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녀는 내가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멀리서 고개를 까딱 숙이며 눈인사를 보냈다.
신문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사진이 없는 기사는 도무지 무슨 내용인 지 알 수 없었다. 신문 해독을 포기했다. 이것 역시 나중에 페리를 만나면 해결될 일이었다. 천천히 식사를 끝냈다. 카페 안을 둘러보다 눈이 마주친 바에 서 있는 남자는 매서운 눈으로 홀을 주시하고 있었다. 손을 들어 최대한 점잖게 점원을 불렀다.
“커피 한 잔, 그리고 디저트는 어떤 게 있습니까?”
“아펠슈트르델과 바닐라 아이스, 그러니까 사과 파이가 있어요.”
“그걸로 하죠.”
“커피에 우유나 설탕?”
“아니요. 그런데 여긴 언제부터 있던 카페입니까?”
“여기요? 뮤지엄이 생기고부터 있었을 거예요.”
그녀가 2층 계단을 가리켰다.
“파블로. 여기는 카페 파블로잖아요.”
“피카소가 뮌스터에 머물렀던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제가 알기론 피카소와 뮌스터는 전혀 관련이 없어요.”
“그런데 왜 여기에 그의 미술관이 있나요?”
“글쎄요. 원하는 곳에 원하는 작품을 걸려는 부자들 생각을 어떻게 알겠어요. 세우고 싶으면 하나 세우는 거죠. 돈이란 국경이 없으니까요.”
돈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매우 당돌했다. 수줍게 웃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냉혹한 얼굴이었다.
“저 조각상은 뭡니까?”
그녀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글쎄요? 그건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이 카페를 지은 미스터 인테리어가 갔다 뒀나?”
“이 카페 주인은 남자인 모양이군요. 어떤 사람입니까?”
그녀의 눈이 빛났다. 바 쪽을 한 번 돌아보고는 고개를 기울여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 조각이 궁금해요?”
그녀는 허리에 두른 작은 앞치마 속에 손을 넣었다. 나는 당황해 뒤로 몸을 젖혔다. 그녀는 어떤 빳빳한 쪽지를 꺼내 무언가 적었다.
“계산하는 척해요.”
나는 영문을 몰라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어서요. 사람들이 볼 거예요.”
“얼마입니까?”
서둘러 지갑을 꺼내 카드를 건넸다.
“관광객들은 팁이 짜요.”
바에 있던 남자가 커피와 사과파이를 가지고 와 테이블에 놓고는 천천히 돌아갔다. 최대한 느리게 걷는 것 같은데도 보폭이 커서 몇 걸음만에 홀을 가로질렀다. 그녀가 영수증을 접어 건넸다. 영수증 사이에 무언가 질감이 다른 종이가 하나 더 있었다. 그녀가 눈썹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맛있게 드세요. 아이스크림이 녹기 전에 먹어야 맛있어요. 그럼 안녕히!”
나는 영수증을 통째로 지갑에 쑤셔 넣었다. 빨리 다시 꺼내 보고 싶었지만 최대한 여유로운 척 파이와 커피를 즐겼다.
일어나면서 팁으로 빨간 지폐를 그릇 옆에 두고 나왔다. 인정머리 없는 시시한 관광객이고 싶지 않았다. 바에 서 있는 그녀와 홀을 주시하는 남자에게 멀리서 인사를 보내고 뮤지엄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뒷문으로 나와 모퉁이를 돌자 고소한 커피 냄새가 났다. 빨간 열매들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열려 있는 나무 밑에서 카드와 영수증을 조심스레 꺼냈다.
[1] 파블로는 헤르만 헤세의 책 ‘황야의 이리’에 등장하는 인물.
작가의 말 :
이 소설은 참 재밌습니다. 어쨌든 전 재밌게 쓰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저 비밀스러운 쪽지에는 무엇이 쓰여 있을지.......
좋은 한 주 보내세요. 저는 카페 파블로에 가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