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살'을 가지고 오세요.

by 성게를 이로부숴

부산에 도착하고 첫 등교 날이었다.


종례시간에 ‘살’을 가지고 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떨어졌다. 몇 분간 손을 들지 말지 고민했으나 다른 애들을 따라 일단 알림장에 쓰고 본다.


‘살…..’


맞는지 틀렸는지 종잡을 수 없어 찝찝하다. 그러나 모두 책가방을 싸는 분위기에 나도 서둘러 알림장을 덮는다. 종소리와 함께 성격 급한 아이들이 빠져나간다. 나는 흘린 것이 없는지 책걸상을 살펴본다. 아이들 몇이 몰려들었다.


“야, 니 서울에서 왔나?”

아이들은 무슨 신기한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말을 건다. 그때만 해도 서울과 부산은 참 멀고도 먼 다른 나라 같았다. 적어도 여덟 살 애들에게는. 나는 아이들의 질문세례가 부담스러워 얼른 책가방을 둘러메고 엄마에게 달려간다. 엄마는 선생님과 웃음꽃을 피우며 이야기에 한창이다.


나는 여전히 의문에 가득 차 있다. 선생님에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몰려드는 아이들 사이에서 굳이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입을 꾹 닫는다. 엄마의 손을 만지자 긴장이 풀리고 그제야 콧노래가 나온다. 동생은 아직은 꿈도 못 꿀 거대한 초등학교의 학생으로서 나는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걸어간다.


“언니이!!! 이거 봐! 저기에도 많아!”


희한한 핑크색 돌을 잔뜩 주운 동생이 보물처럼 내민다. 동생 주머니에는 운동장 모래가 반이다.
“이거, 바닷가에 있어. 아빠가 작은 소라 껍질 이랬어.”
나는 친절하게 동생에게 알려 준다. 물론 조금은 우쭐해서.

“아아~”
바닷가에나 있는 돌들이 운동장에 쓸려 오다니 부산이란 참으로 무시무시하다.

이 미지의 세계가 한층 신비롭다.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찬란한 오후의 햇볕을 받으며 광안리 바닷가에 도착했다. 따스한 색을 입은 봄 햇살을 단번에 파리한 빛으로 바꾸는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나는 동생에게 분홍빛 고동껍질을 주워 준다.


“봐봐. 여기 있지? 이거야.”
“아아~!”
“엄마 근데…. 살이 뭐야?”
“살?”
“선생님이 내일 살을 가져오라 셨어.”


나는 주섬주섬 알림장을 꺼낸다.

바람에 페이지가 팔랑팔랑.


“살이 뭘까? 살…..”
엄마가 갸우뚱한다.

그날 저녁,

“살! 살이 아니고 살!”

아빠의 말에 엄마와 나는 다시 한번 갸우뚱한다.

“그런데 선생님이 왜 살을 가져오라고 하셨을까? 00 엄마, 요만큼 퍼서 주면 돼.”


“뭘?”
“살을!”
아빠가 부엌을 가리킨다.


그제서야 엄마는 “아!” 한다.
“쌀! 쌀을 가져오라고 하셨네.”

그날 밤, 책상에 앉아 쌀 봉지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살, 쌀.”


여러 번 발음해 본다. 내 귀에 분명 두 단어는 다르게 들리지만 부산에서는 쌀을 ‘살’이라 말하는 모양이다. 마음속에 '단디' 저장해 두기로 한다.

다음날, 다행히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살’을 자랑스레 책상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반에서 함께 떡을 해 먹기 위한 것으로 한 엄마의 수고로 방앗간에 잘 넘겨졌다. 학교 첫날의 과제는 그렇게 지나갔다. 한숨 놓았으나 벌써 다음 퀘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쉬는 시간, 한 남자아이가 수줍게 건넨 다음 문장에서 시작됐다.

“야, 니도 오징어다리 배와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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