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이 May 24. 2024

괄호 안 영감

작가의 뮤즈

난 감, 덩그러니 탁자 위에 앉아 있지. 가끔 저기 책상 앞 녀석은 글을 마구 써 내려가는데, 뭣 때문에 그러는지 알 수가 없네 (아니, 내가 뭘 잘못했나? 설마 내가 감이어서?).


어느 날, 나는 혼자 생각해 봤어 (뭐야, 내가 뭘 하려고 했더라? 아, 맞다, 그 녀석이 왜 저렇게 글을 쓰는지 궁금했지). 책상 위엔 항상 책들이 쌓여 있고 (책상? 저건 전쟁터야! 저기 저 스탠드가 이제는 뭔가 상징적으로 느껴지네), 가끔은 그 녀석이 나를 보고 미소를 짓기도 해 (웃음이 나한테도 전염되는 걸까? 아니면 나 때문에 웃는 걸까?).


그 녀석은 종종 밤새도록 글을 쓰곤 해 (글이 뭐라고 그렇게 중요하기에 밤을 새우냐고? 나 같으면 이미 잤어). 작은 스탠드 불빛 아래, 눈을 반짝이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모습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 같아 (오, 좀비인가? 아니면 영감이 충만한 천재?).


나도 알고 있지, 나는 그저 평범한 감일뿐이라는 걸 (그래도 나름 괜찮지 않나? 내가 보기엔 나는 꽤나 멋진 감인걸). 그런데도 이렇게나마 그의 글쓰기에 동행할 수 있다는 게 조금은 뿌듯하기도 해 (내가 그 녀석의 영감의 원천이라면? 오, 멋지다!).


책상 위의 물건들은 각각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어 (여기서 가장 조용한 건 나겠지? 근데 저 펜은 시끄럽게 떠드는 것 같아). 하지만 나는 감이니까, 그저 이렇게 앉아있을 뿐이지 (앉아있는 것도 나쁘지 않아, 감이니까 말이야). 그 녀석이 나를 보며 어떤 이야기를 떠올리는지 정말 궁금해 (아, 나를 보고 뭘 생각할까? 혹시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를?).


어느 날은 그 녀석이 나를 손에 들고 뭔가를 중얼거리더라 (드디어 나에게 말을 거네). "넌 참 신기해, 이렇게 단순한데도 뭔가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 같아."라고 말하더라 (이봐, 나도 너랑 같은 생각이야!). 그리고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어 (아니, 나한테 이렇게 말해놓고 다시 글 쓰러 가는 거야?).


나는 오늘도 덩그러니 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보려 해 (언젠가 그 녀석의 글 속에 등장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냥 이렇게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까?). 하지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어 (그게 뭐, 나도 나름대로 역할이 있는 거지).


때때로 문득 생각해 (나는 감, 여기에 앉아있지. 근데 내가 뭘 더 할 수 있을까?). 그 녀석의 이야기는 끝이 없을 것 같아 (그래, 나도 그 이야기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어). 가끔은 그 녀석이 나를 통해 뭔가를 보길 바라 (아니, 이미 보고 있을지도 몰라).


(어떻게든 나는 여기, 이 자리에 앉아있어. 그게 나의 운명이라면, 난 그걸 받아들이겠어. 왜냐면 난 저 녀석의 영원한 감이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