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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진 Aug 13. 2018

도시, 살다 11화 - 대구예술발전소

담배 팩토리에서 예술 팩토리로

맥신 굿맨 레빈


어댑티브 리유즈에 관한 책은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어 집필이 시작된 지 1년 정도 만에 첫 드래프트가 나왔다. 지금 와서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매주에 한 번씩 프로젝트 팀이 모여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체크 했는데 매주 성과를 내놓아야 하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미팅 전날은 아침해를 보고 잠시 눈을 붙인 적도 적지 않은 듯하다.


내가 쓴 부분, 조사한 부분, 통계 처리 한 부분 등을 매주 팀원들 앞에서 더듬더듬 발표했다. 그래도 이런 압박이 있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열일 했던 것 같다.


책의 주요 내용은 학교와 교회가 문을 닫게 된 원인, 학교나 교회를 구매하여 지역사회를 위해 재활용하고 싶은 공무원이나 활동가에게 필요한 실용적 지침과 매뉴얼 그리고 사례 분석(case study) 등이었다. 재활용 사례를 모으기 위해 구글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사례는 미국 어디에나 있었다. 하지만 주로 동부에 사례가 훨씬 많았는데 그 이유는 미국에서 쇠퇴하는 도시 - 사실 모든 도시의 다운타운은 쇠퇴 중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 의 대부분은 동부, 특히 러스트 벨트에 집중되어 있고, 서부 도시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도시가 많기 때문이다. 당연히 쇠퇴하는 도시의 학교와 교회가 문을 닫을 확률이 훨씬 높다.


쇠퇴하는 도시 중 으뜸인 - 자랑인지 모르겠지만, 클리블랜드에서 만난 몇몇 사람은 마치 자랑인 듯 설명했었다. 우리 홈타운 인구가 전국에서 가장 많이 줄어들고 있다고. - 클리블랜드에서 문을 닫은 학교와 교회의 재활용 사례가 안 나온다면 정말 이상한 일일 것이다. 적지 않게 나왔다. 그중 연구 가치가 높은 사례를 찾다 보니 자주 등장하는 단체가 있었다.


'클리블랜드 레스토레이션 소사이어티(Cleveland Restoration Society)'


클리블랜드 복원 협회? 당연히 이 단체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난 참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인데 공부하다가 조금 변한 것 중 하나가 궁금한 것은 반드시 질문하고 넘어가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사이먼스 교수님은 종종 친절한 답변 대신 여전히 google it!이라고 하셨지만. 무안을 당하는 것이 모르고 넘어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교수님을 찾아가 여쭤보았다. "클리블랜드 레스토레이션 소사이어티는 뭐하는 단체인가요?"라고 물었다. 교수님은 열심히 부시던 휘파람을 갑자기 멈추시고 날 빤히 쳐다보셨다. 한 5초 정도. 사실 그때는 훨씬 그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난 못할 질문을 한 것인가.


5초 정도 날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시더니, 교수님이 갑자기 당신의 명함을 꺼내시며 우리 학교의 로고를 검지로 가리키셨다.


맥신 굿맨 레빈 칼리지 어브 얼반 어패얼스? 그게 왜?


순간 교수님의 행동을 이해할 길이 없었다.


역사가 만드는 가치


우리 대학원의 이름은 맥신 굿맨 레빈 칼리지 어브 얼반 어패얼스(Maxine Goodman Levin College of Urban Affairs)였다. 이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도시학 중심으로 교육 과정이 개설되는 그런 스쿨이다. 미국은 단과대학 이름에 설립자나 설립에 크게 기여한, 혹은 동기 부여가 된 인물의 이름이 붙은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 단과대(대학원)도 그랬는데 Maxine Goodman Levin이라는 이름의 인물이 우리 대학원 설립자일 것이라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 레빈 여사가 - 사실 이름에 굿맨이 들어가 있어 당연히 남자인 줄 알았다. 무식과 무심이 만들어 낸 참사이다. - 세운 단체가 바로 클리블랜드 레스토레이션 소사이어티이다.


이 단체는 한 가지 일만 한다. 클리블랜드 지역의 오래된 건물 - 집, 교회, 학교, 공공건물, 상가 등 거의 모든 유형의 건물 - 중 보존할 경우 지역 사회가 좋아할 만한 건물을 구매하여 새롭게 재탄생시키는 일이 주업이다. 도시학자였던 레빈 여사가 오랜 시간 클리블랜드 인근에 거주하며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사라지는 수많은 역사적인 건물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하셨단다. 그래서 이 단체를 세우고, 보존 가치가 있는 건물을 최대한 보존하여 새로운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클리블랜드 레스토레이션 소사이어티는 오하이오 주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으로 확대해도 민간단체로서는 가장 성공한 도시재생 추진 단체 중 하나가 됐다. 이제 좀 사이먼스 교수님의 '5초간 응시'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도시재생 전공한다면서 내 수준이 이랬다. 그것도 레빈 여사가 창립한 대학원 박사과정 학생이.


클리블랜드의 새로운 부흥을 꿈꾸는 이 단체는 역사가 만드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보이는 가치와 보이지 않는 가치가 포함되는데 보이는 가치의 대표적인 예는 아마 '돈'일 듯하다. 역사적인 도시는 사람을 끌어모으는 힘이 있다. 높은 수준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으며 과거 우리의 삶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준다. 관광객의 증가와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은 결국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진다.


보이지 않는 가치의 대표적인 예는 자부심이다. 나라를 구한 선조의 직계 후손이라면 그 보다 자랑스러운 것 또한 없을 것이다. 현실의 삶이 비록 조금 힘들어도 다시금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도 한다.


도시의 역사 보존을 위해서 꼭 문화재 급의 유물을 찾아 헤맬 필요는 없다. 오래된 집, 이야기가 있는 언덕, 사연 깊은 골목길, 아버지 세대의 공장 등도 모두 우리의 역사이다. 이 역사가 모여 한 국가의 역사가 될 것이다. 국가라는 것도 결국 개인의 합이듯, 한 민족의 역사는 우리 아버지들 삶의 합이다.


담배 팩토리에서 예술 팩토리로


비록 쇠퇴하는 도시 중 1등이어도 클리블랜드와 인근 지역에는 나름 볼 것이 많았다. 사이먼스 교수님 집이 있는 비치우드(동네 이름)에 가면 레가시 빌리지라는 쇼핑 타운이 있다. 거대한 백화점이 서 너개 연결되어 있고 다양한 식당도 있었는데 유학생 신분으로 가기에는 조금 부담되는 곳들이었다.


하지만 상당한 고 퀄리티면서도 가격이 적당했던 식당이 하나 있었는데 - 그래 봤자 3-4달에 한 번 정도 식사가 가능했다. - 그 이름이 치즈케잌팩토리였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치즈케이크로 유명한 곳이 맞기는 하지만 동시에 매우 미국적인 식사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엄청나게 기름진 음식이 한 대접씩 나온다. 나와 아내는 하나만 시켜도 남을 지경. 그래도 매너가 있으니 두 개 시키면 전략적으로 메뉴 한 개는 싸가서도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시킨다.


팩토리 즉 공장은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한 공간이다. 그러니까 이 식당은 치즈케이크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공장임 셈이다.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공장의 건설이 지역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도시가 쇠퇴하면 가장 먼저 공장부터 문을 닫는다. 제품이 생산되어도 지역 내 수요가 없기 때문이다. 유일한 방법은 지역 외로 수출하는 것뿐인데 국가의 경제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으면 이 마저도 쉬운 일은 절대 아니다. 쇠퇴하고 있는 도시에 버려진 공장이 많을 수밖에 없다.


대구 중구 경제의 대표적 엔진이었던 대구연조제초장 건물은 더 이상 공장 건물이 아니다. 공장으로서의 수명이 다한 것.  1949년 지어진 이 건물은 1999년 최종적으로 문을 닫았다. 2010년대에 이르러 정부 주도로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된 후 2013년 대구예술발전소로 변신했다. 담배를 만들기 위하여 사람을 고용했던 공간이 예술을 만들기 위하여 사람을 고용하려 한다.


여전히 쇠퇴하고 있는 도시의 커다란 공장이라면 사실 개인이 건물을 구매해서 뭔가 해보기 쉽지 않다. 늘 수요 부족이라는 벽에 막힐 테니. 그래서 정부 주도의 프로젝트가 상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 또한 상업적 목표가 다분한 프로젝트는 현실적으로 추진하기 쉽지 않다. 대단한 모험일 수밖에 없는데 쇠퇴가 빠른 도시에 상업적 수요가 충분 할리 만무하다.  

 

대구발전소 연혁


대구예술발전소는 대구 중구 수창동에 위치하고 있다. 동네를 둘러보면 쇠퇴의 정도가 매우 심각한 것을 바로 알 수 있는데 연초제조창 왼편(사진을 중심으로)에 새로운 건물이 건축되고 있었다. 도시의 여러 요소와 심각한 부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이 동네 자체가 어떻게 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반면 연초제조창 건물은 오래된 건물이어서 주변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예술발전소 바로 앞에는 수창공원이 있는데 지역 주민에게 잠깐의 쉼을 주는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건물의 외관은 붉은 벽돌로 보였으며 보존 상태는 매우 양호했다.  


외관. 매우 큰 건물이다. 대구예술발전소의 영문명은  Art Factory.


수창공원


대구예술발전소는 총 5층 건물이다. 1층과 2층은 주로 전시실이 있으며 문화 예술 교육을 위한 강의 공간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방문했을 당시 1층 전시실에는 '그림으로 듣는 음악사'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경주에 있는 대중음악박물관에서도 봤음직한 전시였지만 한국 재즈와 같은 장르 음악 역사가 소개되고 전시되고 있었다.  


1층 로비


1층 전시실


2층의 전시실은 1층 전시실에 비해 규모가 크다. 2층에는 전시실과 만권당이라 불리는 북라운지가 있다. 2층 전시실의 작품은 해석하기 좀 난해했다. 다만 폐품을 활용하여 폐품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것 같았다. 난해했지만 아라리오 미술관보다는 그래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정도는 되었다. 워낙 인상적인 작품이라 사진을 찍었다. 어지러이 날고 있는 것은 나비이다. 문을 뚫고 나비의 행렬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전시 작품



만권당


발전소 내부에서 재밌는 구조물이 있어 사진에 담았다. 이런 구조가 어디에 활용되었는지는 감이 오질 않는다. 굴뚝같기도 하고. 다만 중요한 것은 보존되었다는 점이다. 아마 이 공장에서 일했던 할아버지가 손주를 데리고 놀러 오시면 이 구조물에 대해 한참이나 설명해 주실 것 같다. 하트를 그려 넣은 것 또한 매우 재밌었다.  


하트가 익살스럽다.


발전소 안을 둘러보다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담을 수 있었다. 이 동네는 참 오래된 동네이다. 빈곤을 이야기하기 전에 이 곳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여전히 사람의 흔적이 발견되는데 조만간 재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이후의 삶을 개별적으로 추적할 수는 없을지라도 도시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거처를 비워주는 이웃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여하튼 발전소 주변은 매우 쇠퇴했다.


발전소에서 본 창밖 풍경


각 층의 로비에는 공장 구조물의 흔적을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건물은 본관과 별관이 이어져있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큰 구조물 두 개가 이어졌는데 이어진 공간에서도 계단으로 오를 수 있다.


두 건물이 이어진 모습


발전소의 3층에는 흥미롭게 구성한 예술정보실과 수창홀로 보이는 공연장이 있다. 수창홀은 발전소 측에 따르면 약 120석 규모라 한다. 그리고 몇 개의 회의실도 있다.


4층과 5층은 주로 레지던시 예술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보였다. 혹시라도 방해가 될까 싶어 4, 5층은 굳이 오르지 않고 3층에서 발길을 돌렸다. 발전소 측은 4층과 5층은 작은 규모의 작업실(스튜디오)이 여럿 들어서 있고 이 곳에서는 실제 예술가들의 작업이 이루어진다고 밝히고 있다.


발전소 주변을 한번 둘러보면 수창공원 옆 쪽에 빈 건물 두 채가 나란히 서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완전히 버려진 공간이지만 뼈대는 온전히 남아 있었다. 주거 용도의 건물이었음은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발전소 바로 옆에 붓을 이용해 페인트 대신 물감을 칠한 듯한 '모타전문 고도전기'집이 있었다. 이 가게 자체가 동네의 역사일 것이다.


사진 한 장 찍고 가려는데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사장님으로부터 이 두 건물의 미래에 대해 들을 수 있었는데 이 두 건물은 리모델링 후 레지던시 작가의 숙소로 활용될 예정이라 한다.


주변의 낙후도 심하다.


   

모타 전문, 고도전기


후기
삶이 모여 역사가 되고


젊은 시절의 모든 진을 짜 내어 일을 했던 우리의 공장은 다양한 삶의 스토리로 넘쳐날 수밖에 없다. 굳이 각색도 필요 없다.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모든 감정이 여러 사건과 조화를 이루며 모두의 마음속 깊은 못에 죽는 날까지 자리할 것이다. 비록 젊은 날 우리의 멋짐이 일터의 담장 밖으로 뻗을 수 없었을지라도, 슬픔이 컸을지라도, 몇 날 며칠을 아들을, 딸을 붙잡고 그 시절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장에서 사람의 삶은 없어진다. 사람은 노동의 한 단위로 인식되고 손이 빠른 사람과 손 느린 사람 딱 두 부류로 우리 소중한 삶이 정의된다. 그래서 아픔이 많은 장소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사람은 숨을 쉬고, 관계를 맺고, 사랑을 하고, 꿈을 꾼다. 그런 삶이 하나 둘 모이면, 동네와 마을 그리고 한 나라의 역사가 된다.


사회의 필요에 적응하여 새로운 곳으로 탈바꿈할 수만 있다면 공장의 보존과 함께 그 시절의 삶도 보존된다. 요즘의 공장은 도시 중심가에 건설되는 경우가 전혀 없지만 과거의 공장은 도심지 가운데에 위치했다. 누구나 걸어서 출근할 수 있도록. 접근성이 매우 뛰어나므로 보존의 가치가 매우 크다. 그리고 공장은 크다. 건물이 크면 클수록 재활용을 위한 비용이 많이 필요하지만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매우 다양하다. 문화 시설로 공연도 가능하고 대중 교육도 가능하다. 기존의 공장을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올려 도시를 재생하는 것보다는 환경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환경 파괴의 주범에서 환경 보전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이야기. 이렇게나 장점이 많다.


공장 재활용은 이 책의 또 다른 탐험 대상이기도 하다. 공장의 변신을 통해 도시의 재생 가능성을 탐험해 보는 앞으로의 여정은 매우 흥미로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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