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유진 Sep 22. 2018

도시, 살다 13화 - 안성팜랜드

우리 모두의 놀이터

최고의 놀이터


초등학교 고학년에 들어서면 ‘새로운 놀이 공간’에 대한 욕구가 강해진다. 기존의 놀이 공간 - 예를 들면 초등학교 운동장이나 동네 골목 - 으로 만족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내가 살던 곳에는 초등학생이 걸어서 놀러 갈 만한 곳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사실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학교를 벗어나면 놀기 위해 갈 곳이 없었다.


우리 집 근처에는 상당히 큰 규모의 대학교가 하나 있었다. 한국의 대학답게 엄청난 각도를 자랑하는 언덕에 자리 잡은 이 대학에서 노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워낙 좁은 공간에 밀도 있게 만들어진 대학이다 보니 감시의 눈초리를 피해 맘 편히 놀만한 장소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초등학생이 와서 논다고 쫓아내는 사람은 없었지만, 형들과 누나들이 한 번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움찔, 움찔했다. 죄 지은 것은 없었는 데도 말이다.


우리 동네는 아니었지만 친구들이 많이 살던 옆 동네에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 있었다. 진짜 이름은 아직까지 모른다. 그냥 우리는 그 산을 달마산이라 불렀다. 달마사란 사찰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저 이 산 위에 올라 여기저기 나무 작대기 하나 들고 돌아다니는 것만 해도 '서울 촌놈'들에게는 나름 괜찮은 놀이였다. 그런데 이마저도 어렵게 되었다. 친구 중 하나가 달마산에서 놀다가 깡패(고등학생쯤 된 가출 청소년으로 추정)를 만나 호주머니를 털린 사건이 있었다. 몇 백 원 뺏겼을 뿐인데 이 사건으로 인해 달마산이 주는 행복을 더 이상 만끽하기 어려웠다. 무서웠으니까.


초등학교 5학년 때쯤으로 기억한다. 드디어 놀만한 장소를 찾았다. 물론 걸어서 가기에는 약간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이 장소에 도달만 하면 꽤 괜찮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국립묘지. 지금은 국립현충원으로  불리는 곳이다.


국립묘지를 방문하는 대두분의 사람들에게 이 곳은 추모의 장소이겠지만 철없는 초등학생에게는 매력적인 놀이 장소였다. 국립묘지에서는 개구리를 잡을 수도 있었고 심심치 않게, 지금은 청설모에 쫓겨 보기 힘든, 다람쥐도 목격되었다.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더 이상 '자연'은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즐길 수 없는 추억 속 이야기가 되어가기 시작할 무렵 내가 만난 국립묘지는 최고의 놀이터이자 배움터였다.


나름 자랑할 만한


내가 박사 공부를 위해 머물 던 클리블랜드는 한국 사람에게 매우 낯선 도시이다. 뉴욕이나 시카고, LA, 샌프란시스코 등은 미드에도 자주 등장하고, 종종 헐리웃 영화의 배경이 되므로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클리블랜드가 미디어에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


그나마 '추추열차'라는 닉네임을 가진 부산 출신의 한국 야구 선수가 이 도시의 야구단에서 매우 좋은 활약을 펼쳐 이 도시 이름이 한국의 미디어에 오르내렸다. 또한, '왕'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농구 선수(물론 미국 흑인이다.)가 이 도시의 농구단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줘 한국의 농구 마니아에게 이 도시 이름이 자주 언급된 것 같다. '왕'이 더 위대한 농구 선수인지, 마이클 조던이 더 위대한 농구 선수인지는 미국뿐 아니라 한국의 농구 마니아에게 영원한 떡밥이다.


클리블랜드라는 도시의 주민에게 야구단 '인디언스'와 농구단' 캐벌리어스'는 나름 자랑할 만한 도시의 자산이다. 이들 구단과 더불어 클리블랜드는 '브라운스' 미식축구 클럽도 보유하고 있다. 미국 4대 스포츠 중 3대 스포츠 구단을 보유하고 있는 도시는 미국 전역에 그리 많지 않다. 적어도 스포츠에 있어서 클리블랜드 주민들은 자부심을 가질만하다.


한국의 친구들이나 선배들 혹은 교수님들이 "클리블랜드는 뭐가 유명해?"라고 종종 묻곤 했다. 이 도시하면 인디언스와 캐벌리어스 정도 유명하고 - 그것도 마니아쯤 되어야 - 아는 것이 없으니 당연한 질문이다. 의례적으로 묻는 경우도 있지만, 진지하게 묻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난 그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관광 갈만한 곳이 많아."


그러면 다들 흠칫 놀란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클리블랜드의 유명한 관광지를 떠올릴 수 없으니 놀라는 것은 당연하다.


난 덧붙인다. "운전해서 뉴욕도 7시간이면 가고, 시카고도 7시간이면 가고, 나이아가라 폴스도 7시간이면 가니까. 나름 괜찮아."


내가 찾은 자랑거리였다.

  

마치 4대 천왕 같은 느낌의 쇼핑몰


유학을 가면 공부만 할 것 같아도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이니 쉬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혈기 왕성한 때에 간 것이니 적당히 놀아줘야 한다. 난 놀이터를 찾아야만 했다. 한국의 남자답게 쇼핑에 대한 취미가 거의 없었다. 난 대학 다닐 때 전통시장에서 옷을 사 당시 연애하던 지금의 와이프를 경악시킨 적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세상에서 제일 좋은 브랜드는 '뱅뱅'인 줄 알았다. 서울 남자, 안성 여자 조합이었는데 내가 더 촌티 났다.


난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 클리블랜드 인근의 쇼핑몰을 찾아다녔다. 이때 쇼핑에 대해 취미가 좀 붙은 거 같다. 사지 않더라도 즐길 수 있는 법을 알게 된 것이다. 뭘 살 돈도 없었던 시절이다.


클리블랜드 인근에는 동쪽과 서쪽, 그리고 남쪽에 매우 유명한 쇼핑몰이 하나씩 위치하고 있었다. 관문처럼. 클리블랜드의 북쪽은 5대 호중 하나인 이리 호수와 인접해 있으므로 북쪽 쇼핑몰은 없었지만 마치 클리블랜드의 동서남북을 지켜주는 4대 천왕 같은 느낌의 쇼핑몰들이었다. 동쪽의 쇼핑몰은 레가시 빌리지(Legacy Villiage), 서쪽의 쇼핑몰은 크로커 파크(Crocker Park), 남쪽의 쇼핑몰은 사우스 파크(South Park)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나마 한가한 주말에 이들 쇼핑몰 안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머리를 비운 시간들이 없었으면 난 아마 우울증으로 힘겨운 하루하루를 이어나갔을 거다.


아이들의 놀이 욕구가 커감에 따라 새로운 놀이 공간이 필요하듯 성인들도 스트레스의 해소를 위한 놀이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스스로 힐링하지 않으면, 하루 살기가 벅찬 우리 도시민들의 삶이다. 도시 안에는 적절한 쇼핑의 공간도 필요하고, 자연을 느끼며 배울 수 있는 그런 공간도 필요하다. 그렇게 우리의 스트레스는 관리되어야 한다.


안성팜랜드
우리 모두의 놀이터


안성은 도농복합도시이다. 여전히 적지 않은 인구가 포도 재배나 논농사, 축산업 등의 1차 산업에 종사한다. 처음 안성에 왔을 때의 문화 충격을 잊지 못한다. 비록  촌티가 조금 흘렀어도 난 '어엿한' 도시 남자였다. 프랜차이즈도 거의 없었고 개봉관도 없었다. 놀려면 천안이나 평택을 가야 했다. 파리 빵집이 안성 구도심에 들어섰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야기를 들은 지 얼마 안 되어 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유학을 마치고 이제 한 아이의 아빠가 되고 보니 안성에서도 놀만한 장소가 필요했다. 아이에게는 배움과 경험의 기회를 줘야 했고 나 역시 정신적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소똥 냄새 날 것 같아 추천이 쏟아져도 절대 찾지 않던 '안성팜랜드'에 관심이 갔다.


안성에 정착한 이후 최근까지 다섯 번 정도 방문한 것 같다. 이 곳은 적어도 지금은 '어엿한' 안성 시민인 나에게 '군계일학' 같은 곳이다.


안성 팜랜드는 경부고속도로 안성 IC로 진입하면, 약 15분 안에 만날 수 있다.


팜랜드의 정문이다. 코스목동축제는 팜랜드의 시그니쳐 프로그램이다.


입장권을 구입하고 정문으로 들어서면 세 가지 광경이 동시에 펼쳐진다. 왼편에는 트릭아트 뮤지엄과 식당 등이 보이고, 중앙에는 널찍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각종 놀이 기구가 보이며, 오른쪽에는 환상적으로 조성된 수중 공원(동화마을연못)이 있다. 그 공원 바로 옆 쪽에 팜랜드 역사관이 있어 안성팜랜드의 역사를 공부할 수 있다.  


안성팜랜드의 역사관이다.


안성팜랜드 조성의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동일한 분단국가였던 서독에게 원조(ODA)를 요청하기 위해 직접 서독을 방문했다. 서독의 원조로 1969년에 설립된 것이 '한독시범목장'이다. 이 목장의 초기 발전을 위해 서독의 낙농 전문가가 한국으로 건너왔다. 충분한 기술의 전수 이후 이 장소는 한국 낙농 산업의 중심지로 발전해 갔다. 하지만 이 장소는 단순히 축산을 위한 공간으로 머무르지 않고 2000년대 후반부터 테마공원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마침내 2011년에 안성팜랜드가 개장하였다. 한독시범목장의 설립 후 팜랜드로 개장하기 전까지 이 목장은 '안성목장'으로 불려 안성시민들에게는 랜드마크였다.


한독시범목장 설립 기념비. 팜랜드 역사관과 수중 공원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흔히 우리나라를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바뀐 유일한 나라라고 한다. 다시 말해, 국가의 발전과 도시의 개발을 위해 해외로부터 원조를 받은 세계의 국가들 중 원조를 줄 수 있는 나라로 성장한 유일한 국가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이다. 자부심을 느껴도 되는 대목이다.


세계의 빈국은 수많은 원조에도 가난을 극복하지 못한다. 국가의 역량이 부족하고 부패가 만연해 원조를 나라 발전을 위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원조를 알뜰살뜰 썼다. 이를 통해 세계사에 비슷한 예가 없을 정도로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원조를 정말 잘 활용한 살아있는 예가 바로 안성팜랜드이다. 그 시절에 대한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평가와는 별개로 이 공간은 그래서 배움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더욱이 안성 팜랜드는 공공재로서 가치를 잃고 쓰레기 더미가 쌓여있던 안성 공도의 야산에 조성되어 도시계획이나 도시행정 등 분야에서 연구의 가치도 매우 크다.  


이제 팜랜드 곳곳을 만나보자. 팜랜드 초입은 놀이기구로 가득하다. 세상 노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를 동반한 부모라면 이 곳을 지나쳐 동물을 만나러 가기까지 긴 인내가 필요할 수 있다.


로켓을 타고 우주로 날아오를 수 있다.


놀이기구는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다. 로켓, UFO, 범퍼카가 한 공간에 있는데 조금 더 비싸고 키즈 바이킹, 열차, 회전목마 등이 한 공간에 모여 있는데 조금 더 싸다. 이들을 모두 즐긴다면 족히 에버랜드를 가는 것이 나을 수도 있는 금액이 나올 수 있으니, 마치 참새 방앗간 지나치지 못하듯 놀이기구를 모두 즐겨야 하는, 내 아들 녀석과 같은, 아이의 부모님이라면 적절히 함께 묶여 있는 티켓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 입장권과 함께 로켓, UFO, 범퍼카를 묶어 저렴하고 매표소에서 구입할 수 있다. 기구를 타지 않아도 환불되지 않으니 주의.


전혀 안 무서울 것 같은 바이킹도 있다.

 

긴 인내심 끝에 놀이기구를 지나면 이제부터 동물원에서 맡을 수 있는 짙은 향기(?)가 코끝에 전해진다. 낙동 테마파크답게 동물을 매우 가까이에서 보고 만질 수 있다. 비록 우리 농촌의 소득 증가를 위해 기르는 동물에 한정되어 있지만 체험형 동물원 같은 느낌을 준다.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동물은 그냥 풀밭에 풀어놓은 양들이다. 직접 보면 무서울 줄 알았는데 명성답게 매우 온화하게 풀을 뜯고 있었고 가까이 다가가도 이미 익숙한 듯 나 따위는 관심을 전혀 주지 않았다.


양들이 풀을 뜯는 모습은 매우 평화롭다.

 

그 뒤에 토끼 마을이 있다. 우리 가족은 비록 아파트에 살아도 지인이 분양해 준 두 마리의 토끼를 완전 새끼 때부터 성체에 이르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키운 적이 있다. 하얀 털에 검은 눈동자를 지닌 토끼 이름을 대디로, 갈색 토끼 이름은 씨디로 아들 녀석이 붙였는데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같은 수놈이었던 두 녀석이 성체에 이르자 그렇게 물고 빨고 사이가 좋았음에도 피 보는 싸움까지 하는 통에 또 다른 지인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그 녀석들을 그리워하는 아들 유주는 이런 흰쌕 토끼와 갈색 토끼를 볼 때마다 대디와 씨디라고 하며 엄청 좋아한다. 사실 유주도 알 거다. 실제 이 토끼들이 대디와 씨디는 아니라는 것을. 그리움 때문이겠지.


유주에게 하얀 토끼는 늘 '대디'로 불린다. 대디가 참 많다.


토끼 마을까지 지나면 본격적인 체험마당이 펼쳐진다. 말을 타볼 수도 있고 활을 쏘는 경험도 할 수 있다. 연 날리기를 할 수 있는, 흥미 넘치는 공간이다.


체험마당으로 가보자.


체험의 시그니쳐는 말에게 당근 주기이다. 어묵꼬치에 꽂힌 당근을 우리의 말에게 먹여 주는 일종의 체험인데 어른이라도 처음에는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사진에서 보는 것보다 체감으로는 말과 무척이나 가까운 거리에서 주는 것 같다. 말이 당근을 물면 치악력을 느낄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무서움을 느껴 꼬치를 놓아 버린다. 경험이 없으면 처음에는 거의 열의 열 아이가 다 그렇다. 하지만 그 무서움을 극복하고 꼬치를 꽉 쥐면 말의 치악력으로 인해 손 끝에 짜릿한 쾌감이 느껴진다. 난 낚시는 안 하지만 마치 낚싯대에 대물이 입질했을 때처럼. 나름 경험이 쌓이면 이미 배가 상당히 부를 말에게 계속 먹이고 싶어 진다.


말은 정말 당근을 좋아한다. 주식이니 당연하가. 근데 왜 한국 사람은 쌀이 주식인데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까.


하트 게이트를 지날 때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염소 새끼를 만날 수 있었다. 직접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미 사람의 손이 많이 탄 듯하다. 우리 안의 염소만 만나다가 직접 보니 강아지 같은 느낌도 있고, 거부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많은 아이들이 호기심에 다가가 보는데 좋은 경험이 될 듯하다.  


하트 게이트 앞의 염소 새끼 한마리.


타조는 우리 머리 속에 존재하는 이미지와 실제 모습이 조금 다른 것 같다. 나름 귀여운 면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실제 성체 타조는 거대하다. 날 수 없는 새 중 대표이면서 가장 큰 새인 타조. 서식지가 많이 줄어들어 유주가 성년이 된 후에는 자연에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프리카에만 살지만 과거에는 아시아에도 폭넓게 분포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그런 거 보면, 기후만 온화하면 큰 문제없이 서식할 수 있는 것 같다.


타조는 멋지다.


체험마당 바로 옆에는 동물에게 먹이를 줄 수 있는 우리가 모여 있다. 사슴, 돼지, 염소, 양, 소 등 우리가 가축으로 기르는 거의 모든 동물이 모여 있고 우리 밖에서 먹이를 주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온화한 생김새 때문인지 유주는 주로 양에게 먹이를 준다. 먹이를 준다기보다는 실제 먹이가 담겨 있는 통으로 먹이를 주위에 뿌려 주는 건데, 양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먹이 주는 체험을 할 수 있는 양 우리


산양 우리이다. 먹이를 갈망하고 있는 중



후기
우리 모두의 놀이터


2018년 올해 여름은 기록적으로 더웠다. 그래서 여름이 지나도록 팜랜드를 방문해볼 엄두가 나질 않았는데 이제 한낮에도 기온이 30도를 넘지 않는 계절이 다가왔기에 무거운 머리를 가볍게 하기 위해 방문했다. 아들에게는 배움과 체험의 기회가, 내게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완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때로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약 한 알을 꿀꺽하기보다, 이런 놀이터 방문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자동차를 안성으로 몰아보자. 안성의 군계일학, 팜랜드를 만나볼 수 있다. 비록 사자와 퓨마와 같이 멋들어진 대형 맹수의 포효를 볼 수는 없어도, 벨루가나 타이거 상어와 같이 환상적인 바닷속 명물을 만나 볼 수는 없어도, 오래전부터 우리와 함께 이 땅에 살아온 매우 친근한 한국의 동물을 만나볼 수 있고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시원한 바람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탁 트인 하늘을 마음에 저장할 수 있다.


바람과 하늘 그리고 동물 친구로 우리 정신을 치유할 수 있는 곳. 그 곳이 바로 팜랜드이다.


이전 03화 도시, 살다 12화 - 태백 상장동 벽화마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