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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진 Jul 30. 2018

도시, 살다 5화 - 광명동굴

어두운 동굴을 밝히다


골프 치러 갈래?


지금은 그래도 대중화가 되긴 했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골프는 내 삶과는 괴리가 큰 문화이자 스포츠였다. 골프하면 떠오르는 것이 박세리와 우즈 정도일 정도로 정확히 룰도 몰랐고, 지금도 잘 모른다.


학교와 교회의 어댑티브 리유즈 사례를 모으느라 며칠 째 구글에 파 묻혀 살고 있던 나에게 갑자기 사이먼스 교수님이 골프 치러 가잔다. 내가 뭘 잘못 들었거나 나에게 말하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분명, "유진, 골프치처 갈래?"라며 내 이름부터 부르셨다.


보통 골프 칠 줄 아냐고 먼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난 칠 줄 모른다는 말 대신 내 삶에 골프채를 잡아 본 적도 없다고 웃으며 말씀드렸다. 단지 못 친다고 할 것이 아니라 왠지 전혀 못 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유진, 골프 치러 가자. 어서!”


바쁜데 갑자기 골프 치러 가자고 하시니, 심란할 뿐이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자꾸 재촉을 하시니 길을 안 나설 도리가 없었다. 사이먼스 교수님의 빨간색 소형벤에 몸을 싣고 어느 골프장으로 데려가시려나 차창 밖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는데, 한 30분은 가야 하니 피곤하면 눈을 좀 붙이라고 하셨다. 지도교수가 운전하는 차에서 맘 편히 잠을 자라니. 차라리 내가 운전하고 말지. 잠이 올리 없었다.

피곤은 했는데.


몇 가지 주제로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도중에 어딘가에 도착했다. 도통 어딘지 모를 곳. 주차장도 아닌 풀 밭 위에 주차를 하고 앞, 뒤, 양 옆을 살펴보니 여기저기 나무가 무성하고, 사람이 심긴 했으되 전혀 관리가 되지 않고 있는 잔디밭도 넓게 펼쳐져 있었다. 당연히 난 사이먼스 교수님에게 "골프장은 어디에 있나요?"라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은 내 대답에 부시던 휘파람을 잠시 멈추시며, "골프 치러 가자고 했지, 골프장 가자고는 하지 않았어."라며 웃으셨다.


"여기는 랜드필(landfill)이란다."


사이먼스 교수님의 대답이었다. 여기에 약 500세대 타운하우스가 생기는데 타당성 분석을 하는 것이 내 새로운 job이라고 덧붙이셨다.


잠시 후, 누군가의 자동차가 도착하고 사이먼스 교수님과 그 차에서 내린 중년 남성 한분은 각각의 차에서 골프채를 꺼내 잔디밭에서 연신 골프공을 때려댔다. 이 것을 티샷이라고 하던가. 아무튼.


처음 들어본 단어
브라운필드  


랜드필은 주로 쓰레기 등을 묻은 매립지를 뜻한다. 비록 토양오염에 강한 나무나 풀 등이 무성히 자라고 있을 지라도 땅을 한 꺼풀만 벗겨보면 우리가 바로 썩어가는 쓰레기 위에 서 있음을 알게 된다. 골프공을 수거하고 오신 사이먼스 교수님은 매립지나 버려진 산업단지, 주유소, 폐광 등 오염의 제거 없이 다른 목적으로 활용될 경우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땅을 브라운필드(brownfield)라고 한다며 장황한 설명을 시작하셨다.


브라운필드라는 영어 단어를 그때 처음 들었다. 아마 폐유가 진한 갈색으로 변해 브라운필드라 부르나 보다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집을 지으려고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땅을 샀는데, 땅에서 솟아난 샘물이 중금속에 오염되어 있다고 가정해보란다. 오염의 제거 책임은 당을 판 전 주인에게 있을까, 모르고 산 현재의 주인인 나에게 있을까. 궁금해졌다. 하여튼 난 그런 집에 살고 싶지 않다. 소송을 걸 수도 있겠다 싶었다.


도시가 오래될수록 땅의 오염 정도는 심할 수밖에 없다. 오래된 도시의 주력 산업은 주로 오염 물질을 여기저기 배출할 수밖에 없는 산업이 많으니까. 예전에는 오염 배출에 대한 규제도 마땅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고.


오염 특히 땅의 오염은 도시재생 과정에서 직면하는 장애 중 으뜸이다. 땅이 오염되어 있으면 환경 정의에 관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나마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은 오염된 땅을 떠날 것이므로 부동산 가치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남겨진 사람은 이주의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남겨진 사람 중 일부는 어찌어찌 그 장소를 떠날 수 있다. 들어오는 사람들은? 당연히 남겨진 사람보다 경제적 여건이 더 열악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몇 년이 흐르면 오염된 땅과 그 주변 지역은 슬럼화 된다. 대부분 도시의 슬럼화 현상은 땅의 오염과 관련 있다.


이 오염된 땅을 어찌할 것인가.


오염된 땅의 재개발을 위해서는 당연히 오염물질을 제거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의 제공과 과학적 조사라 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부터 실패하면 아무리 제거가 완벽했다고 하더라도 주민은 신뢰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브라운필드 재개발이 도시재생의 중요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반환된 미군 부지의 재활용이나 각종 폐광과 그 주변 지역의 재개발, 축산단지와 비위생 매립지 등의 재개발 과정에서 주민과 행정부의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폐광의 기적


사이먼스 교수님과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의 목적은 매립지를 타운하우스로 재개발할 경우 정부가 얻는 장기적 이윤- 주로 재산세 등의 세입 - 을 계산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광산업은 매우 활발했었다. 국토에서 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높다 보니 매장된 자원도 풍부했다. 하지만 중국산 수입이 채굴하는 비용보다 훨씬 저렴해지면서 광산업은 자취를 거의 감추게 되었다. 문을 닫은 광산 즉 폐광과 폐광 인근 마을의 낙후가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광명동굴은 광명시 가학동 가학산에 위치한 동굴인데 자연 동굴이 아니라 금을 캐내던 금광이었다. 광명동굴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9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는데 이 금광(예전에는 시흥광산으로 불렸다.)은 1912년 일제가 광업권을 독점하여 본격적으로 개발과 수탈에 나서면서 한국사에 등장했다. 광명동굴은 금광과 은광 개발에 혈안이던 일제에 의한 수탈과 강제 징용, 노역의 현장으로 아픔을 간직한 공간이다.


광명동굴 입구에 설치된 동굴 소개


가슴 아픈 역사는 기억의 뒤안길로 보내주는 것도 필요한데 광복 후 광명동굴은 다른 의미에서 다시 한번 역사적인 공간으로 활용된다. 6.25 전쟁 당시 폭격을 피해 광명 지역 주민들이 이 동굴에 새로운 안식처를 꾸리기 시작했다. 이 금광은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극복하고 지역 주민들에게는 삶을 연장할 수 있다는 희망과 안전을 선물해준 소중한 자산으로 다시 태어났다. 6.25 전쟁 동안 주민 중 일부는 이 공간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전쟁이 끝나길 기다렸다.


1972년에 금광으로서의 운명이 끝을 보게 되는데 많은 비와 태풍으로 인해 광산 찌꺼기가 마을로 흘러내리면서 폐광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는 새우젓 저장소로 활용되다가 2011년 광명시가 매입하면서 2012년부터 일부 구간이 시민에 개방되었다.


주차를 한 후 조금 걸으면 광명동굴로 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광명동굴은 가학산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조금 걸어 올라야 한다. 걸어 올라가는 길을 '정다운 길'로 네이밍을 했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꼭 잡고 걸어 올라갈만한 정말 아름다운 길이었다. 도착하자마다 뛰지만 않으면 아이들도 천천히 부모의 도움 없이 걸어 올라갈 수 있다. 자연을 따라 걷는 길이다.


'정다운 길'이다. 이 길을 따라 광명동굴 방향으로 올라가면 배고픈 배를 달래줄 식당이 있다.


광명동굴 입구의 모습이다. 1912년부터 동굴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since 1912'가 인상적이다. 물론 당시에는 시흥광산 혹은 가학광산으로 불렸다.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순간 한기를 느낄 수 있다. 평소 열이 많아 문제인 나와 아들은 크게 어려움 없이 곧바로 적응하였으나 혈액 순환 안돼 손발이 찬 분들, 특히 여성분들은 반드시 덧입을 옷을 준비해 가야 한다. 조금 깊이 들어가면 습해서 그런지 금방 적응이 되는데 입구를 지나자마자는 상당히 춥다.


광명동굴의 입구


입구를 지나 조금 들어가면 한기를 느낀다. 가능하면 가벼운 외투를 준비하자.


동굴 안에는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이 상당히 많다. 그중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동굴 예술의 전당'이다. 사진을 자세하게 보면 사진 왼쪽에 채광을 위해 광부들이 오르내렸을 계단이 여전히 보존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광명동굴을 만나러 간 시간에는 특별한 공연이 없어 아쉬웠다. 공연시간을 확인해보고 방문하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환상적인 레이저쇼가 '동굴 예술의 전당'의 무대 위로 펼쳐져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허락하고 있었다.


광명동굴 내벽에 레이저쇼가 한창이다.


이 외에도 광명동굴 안에서는 작은 수족관, '아쿠아월드'가 있다. 암반수를 이용해 우리나라 토종 민물고기와 외국의 다양한 물고기를 만나볼 수 있는데, 특히 중국에서 관상용으로 매우 유명한 금룡을 만나볼 수 있다. 금룡에 관한 정보를 더 얻고자 구글링을 해보면, 주로 중국식당이 나온다.  이 물고기에 대한 중국인들의 애착이 이름을 널리 쓰게 된 계기가 된 것 아닐까라는 나름의 추론을 해보지만 근거는 없다. 또한, 광명동굴 안에서는  친환경 식물공장인 '동굴 식물원'이 있다. 적은 빛으로 잘 살아가는 것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신비롭다. 광합성은 LED 조명을 활용해서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귀한 금룡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 동굴에는 용이 산다.


광명동굴의 용


골룸도 산다. 실제 반지의 제왕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서 어떤 아이는 무서웠는지 울음을 터트렸다.


광명동굴의 골룸. 물고리를 들고 있는 디테일함이 돋보인다.


광명동글 내부의 시그니쳐는 '와인동굴'인 것 같다. 한국의 와인 시장에서 광명동굴의 와인을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와인동굴에서 와인이 생산되는 것은 아니다. 대신에 한국의 거의 모든 와인을 시음할 수 있고 구매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장소는 드라마에 많이 등장한다. 컴컴한 분위기의 동굴 속에서 와인을 마시면 무조건 광명동굴이다.


와인동굴은 광명동굴의 대표적 볼거리이다.


광명동굴이 멋진 것은 내부뿐만 아니다. 동굴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가 내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센터의 외부에도 업사이클을 활용한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폐차의 사이드미러를 활용한 작품 'One's가 눈에 확 들어왔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1300개의 사이드 미러를 활용해 3.5미터의 구를 만들었다고 한다. 각기 다른 배경에서 자동차의 안전을 지키던 사이드 미러가 한 공간에서 호흡하게 의도한 것이다.


사이드 미러를 재활용한 'One's'(이호진 작)


내가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를 방문했을 때에는 토이스토리 기획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버려진 장난감이나 플라스틱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재탄생시켰다. 사람이 조물주가 되는 순간 아닐까.  




광명동굴 수입의 1%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등을 위해 사용된다고 한다. 관람의 의미를 마음에 담아 갈 수 있었다.



후기
브라운필드 재개발은 어렵지만


사람의 손을 타 오염된 땅은 정부의 개입 없이 재개발하기 쉽지 않다. 오염 정화에 너무 많은 돈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러운 땅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정의의 실현에 있다. 경제적 여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이웃을 오염된 땅에 살게 해서는 안된다.


도시재생 과정에서 도시의 오염은 피해가야 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직면해야 한다. 이를 피하고 덮기에 급급하다면 도시는 일시적으로 값싼 비용으로 되살아날 수 있어도 우리 다음 세대의 건강이 심각한 정도로 위협받을 수 있다. 도시의 재생을 추진하는 행정의 영역뿐만 아니라 활동가도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제 수도권, 아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지 중 하나가 된 광명동굴. 광명동굴 주위는 하나의 정원처럼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다. 오염된 땅이나 폐광 당시 주변을 뒤덮었던 광산 찌꺼기 등은 흔적 조차 찾을 수 없다. 이에 우리는 오래 머물지는 않더라도 안심하고 광명동굴 주변을 산책하고 동굴 안의 즐길거리를 만끽하고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브라운필드의 재개발이 지역 사회의 대표적 관광 상품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역사성 또한 보존되었다. 반환된 미군 부대의 재개발이나 아직도 도처에 방치되고 있는 폐광, 그리고 앞으로 빈 건물이 흉물처럼 방치될 운명에 처한 적지 않은 공장의 재개발 계획을 수립할 때 되새겨야 할 교훈을 주는 곳, 바로 광명동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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