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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진 Aug 02. 2018

도시, 살다 6화 - 제주 한림 앤트러사이트

공장에서 커피 한 잔

러스트 벨트의 한가운데에서


"유진이 형, 창 밖을 봐요!"


나도 총소리를 듣긴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꿈인 줄 알고 살짝 깬 잠을 다시 청했는데, 같은 층에 살던 다른 한국 학생이 벨을 사정없이 누르며, 거의 비명을 지르며 밖을 보라고 했다. 목소리는 매우 다급했고, 떨림과 두려움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간신히 일어나 커튼을 젖히고 밖을 바라보았는데, 처음에는 상황 판단이 잘 되지 않았다. 내가 살던 아파트 앞 사거리에 경찰 사이렌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고.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눈을 한 차례 질끈 감았다 떠 보니 영화 속 익숙한 장면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사거리의 네 방향을 모두 경찰차가 막고 있었고, 총을 든 누군가는 경찰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자마자 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여기 계속 살아도 되나?"


원룸 계약 기간이 끝나자마자 난 좀 멀리 이사했다.


대학원 공부를 할 때 한인 학생 회장을 한 적이 있다. 2년 정도. 회장으로 자원한 학생이 없어 2년 동안 크게 하는 일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나마 회장으로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우리 학교에 입학한 한국 학생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나름의 도움을 주는 일이었다.


여름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여학생이 우리 학교로 진학을 위해 이사온다는 연락을 학교 측 인터내셔널 오피스(international office)로부터 받았다. 아마 학교를 통해 한인 학생회 임원을 수소문한 모양이다.


여학생이 도착했다. 우선 먹고 자고 할 공간을 마련해야 하므로 여기저기 내 차로 라이드하며 방을 보러 다녔다. 그 여학생 입장에선 면허가 없으니 학교를 걸어 다닐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지낼 곳을 마련하고 싶어 한 것은 당연했다. 학교 측에서는 기숙사를 추천했지만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개인의 사적인 공간이 중요해서 그럴 수도 있었고, 외국인들과 같이 방을 쓰는 것이 무서웠을 수도 있을 것이기에 이유는 묻지 않고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우리 학교는 다운타운에 있었다. 가끔 총소리가 들리는 러스트 벨트의 한가운데 우리 학교가 있었다. 당연히 나는 추천하지 않았지만 차를 살 수 없다고 하니 도리가 없었다. 미국의 대중교통은 한국의 대중교통과 사뭇 다르다.


문을 닫은 교회
건물을 방치하면 안 되는 이유


학교 앞에는 종교적 의미를 잃어버린 교회가 하나 있었다. 100년이 거의 다 된 교회이지만 관리가 되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고 있었고, 해가 지면 마약을 하는 노숙자들이 몰래 교회로 들어가 약에 취해 잔다는 소문이 있었다. 역사성이 매우 높은 건물이어서 문화 시설로 사용하자는 요구가 많았지만, 여전히 소유 자체는 개신교의 어떤 교단이었다.


그 여학생이 학교에서 집으로, 집에서 학교로 가려면 반드시 그 교회를 지나야 했다. 어느 날 밤에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경찰이었다. 지금 한국 여학생이 경찰서에 있고 보호자로 나를 지목했으니 경찰서로 와줄 수 있느냐는 이야기였다. 새벽을 향하고 있던 시점이어서 걱정스러운 마음 한 가득 안고 경찰서로 향했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그 여학생이 친구들과 학교에서 팀 프로젝트를 위한 모임을 하느라 귀가가 늦었던 모양이다. 밤 10시경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향하던 중 그 교회 앞을 지날 때, 갑자기 교회 문이 열리면서 손이 문 사이로 쑥 나와 그 여학생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평소였으면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그 교회를 관리하던 교단의 한 목사가 낮에 물건을 두고 간 것이 있어 밤에 다시 교회를 찾았다고 한다. 교회에 막 도착한 목사는 여학생이 끌려 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자마자 경찰에 신고한 후 경찰을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어 바로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다행히 노숙자는 여학생을 더 이상 잡고 있지 않고 바로 도망을 쳤다.  


노숙자는 검거되지 않았지만, 학교 앞 순찰이 강화되고 그 교회의 재활용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계기가 되었다.


낙후된 지역의 빈 건물은 절대로 방치하면 안 된다. 범죄가 모의되기도 하고, 범죄자가 숨어들기도 하고, 범죄를 위한 장소로 이용하기도 한다. 차라리 헐어 버리는 것이 낫다. 빈 건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범죄 예방'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귀국한 다음 해, 이 여학생이 무사히 학부를 졸업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이메일로 보내왔다.


무연탄이란 이름의 카페


카페 방문기를 기록하기 위해 지나치게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 놓은 거 같다. 사람이 떠나는 도시는 빈 공간을 많이 가지게 된다. 비어버린 공간에 우리의 관심이 필요한 이유를 강조하다 보니 이야기가 무거웠다.


앤트러사이트는 무연탄이란 의미의 영어 단어이다. 카페 이름이 무연탄이라. 어울리지 않아도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매우 음침할 것 같음에도 빈 건물을 재활용하여 청년에게 사랑받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이 카페는 반짝반짝 빛이 난다. 엔트러사이트 카페는 네 개의 지점이 있는데 모두 빈 공간을 재활용하여 탄생하였다. 앤트러사이트의 철학을 느낄 수 있다.


망원동의 서교점은 오래된 저택을 카페로 바꾸었고 합정과 한남 그리고 제주의 한림점은 모두 공장을 카페로 재활용하고 있다. 이 중 한남이 엔트러사이트의 출발이고 그다음으로 제주시 앤트러사이트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한림(제주시)의 앤트러사이트는 전분 공장이었던 공간을 재활용한 것이다. 사실 제주시의 한림은 제주를 찾는 객들 사이에서는 매우 유명한 곳이다.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수욕장으로 꼽히는 협재해수욕장이 한림에 위치하고 있고 천연 용암동굴 지대, 한림공원, 이시돌 목장 등도 한림에 위치하고 있다. 사실 어느 곳을 방문하더라도 제주의 멋짐을 느낄 수 있다(이시돌 목장과 관련한 에피소드는 향후 추가될 것 같다.).  


이시돌 목장의 간판이다.


앤트러사이트 한림점은 도시 주변의 낮은 초목 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멀리서 이 공간을 바라보면 마치 영화의 세트장이나 특전사 등의 군인이 훈련을 위하여 일부러 제작한 세트장 같은 느낌마저 든다. 차를 주차하고 카페로 활용되고 있는 주 건물 주위를 둘러보니 이런 느낌이 오히려 더 강해졌다.


엔트러사이트의 정면(사실은 측면) 이미지


차를 주차하고 만날 수 있는 건물이다. 무슨 건물로 활용되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데 터만 남아있다. 내가 지금 제주에 여행을 왔다는 감정을 잠시 놓아 버리면, 이 터를 마주하는 순간 "혹시 여기 중동인가?"라는 착각이 들 수도 있다. 폭격을 맞아 건물이 일부가 파손된 느낌이 들었고 쏟아지는 총과 포를 피해 잠시 몸을 숨기기에도 안성맞춤인 것 같은, 진짜 전쟁터에 와 있는 듯한 심각한 상상의 오류에 한 10초 정도 빠져들었다. 물론 건물을 타고 자라고 있는 넝쿨을 보니 여긴 한국이었지만.

 

차를 주차하고 바로 볼 수 있는 건물의 잔해(?)


여기가 바로 앤트러사이트임을 알리는 간판. 하지만 자세히 보아야 앤트러사이트라는 글씨가 보인다. 의도한 것으로 보이는데 새 것마저 예스러움을 입혀 오래됨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간판마저 옛스럽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할 전분공장의 기계들이다. 전체 공간의 거의 반은 이런 공장 기계의 소유이다. 마치 박물관에 들어온 느낌을 주고 있는데 공간 활용의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것은 아닐 수 있다. 커피를 앉아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킬'해 버렸으니.  


전시된 것 같은 공장의 기계들


하지만 이런 공간의 보존은 오히려 새로운 가치를 덧입히고 있다. 여기가 공장인지, 카페인지 순간 혼동이 올 수 있는데 이런 착각이 오히려 이 공간의 매력인 듯하다. 다른 카페에는 실내 장식을 위해 화분을 들여놓지만 한림 앤트러사이트에는 자연스럽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이름 모를 풀들이 자기도 이 공간의 주인이라 말하는 것 같다.  


공장 기계 옆에는 화초가 자연스럽게 자라고 있다.

 

그래도 여긴 어엿한 카페이다. 적지 않은 수의 직원들은 이 카페의 매출이 상당할 것이라는 추정이 합리적임을 지적하고 있다. 서울 한 복판에서 만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음료와 조각 케잌을 마시고 맛볼 수 있다. 이 카페는 공간의 특이함 혹은 이질성 혹은 기이함에만 의존하고 있지 않다. 매우 맛있다.


여긴 공장이 아니라 카페이다.


바닥은 매우 불편할 수 있다. 울퉁불퉁한 바닥도 앤트러사이트 역사의 기록에 몇 줄은 장식하고 있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긴 조금 위험해 보였다. 그런데 카페는 아이들 놀이터가 아니므로 크게 상관은 없을 듯하다. 철제로 만들어진 의자는 바닥과 매우 잘 조화를 이룬다.


바닥의 모습이다.


카페와 충분한 만남을 뒤로하고 나오기 전 눈에 띈 것. 바로 공구들이 걸려 있는 내벽이다. 과연 공장 시절에 쓴 것일까, 지금도 누군가가 쓰고 있을까. 오래된 공구 사이로 물이 채워져 있는 분무기와 밀짚 모자가 매우 이색적이었다. 이 공구 걸이는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공구가 걸려있는 내벽


후기
그리움과 감사를 지켜낸 곳


도시에 공간이 비면 위험하다. 물론 채우는 것이 능사가 아닐 수 있다. 채워도 그곳이 새로움으로 다가오지 못하면 차라리 비우는 것이 낫다. 자연에게 돌려주는 방법도 매우 훌륭한 결정이다. 하지만 역사에 우리의 상상을 더할 수만 있다면. 버려져 도시의 미관을 해치고 범죄의 장소로 악용될 수 있는 공간이 도시 안에서 가치를 만들어 낼 수만 있다면. 도시가 새로워진다.


한림에 위치한 앤트러사이트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 바로 전 세대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이 곳을 조금만 벗어나도 제주를 즐기는 객들의 활기참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앤트러사이트 주위는 조금 다른 세상처럼 느껴진다. 만약 이 곳, 앤트러사이트가 여전히 비어있는 공간으로 방치되어 있다면 어땠을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땀을 흘리고 눈물을 쏟아냈단 이 공간은 그리움으로 변해가다 어느 순간 시간의 흐름 속에 기억조차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낙후된 도시의 상징이 되었을 것이다. 앤트러사이트는 그리움을, 그리고 감사함을 지켜낸 것이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계속되길 소망한다.


앤트러사이트는 그리움과 감사를 지켜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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