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과 0엔 주택, 그 집엔 누가 살았을까

시간이 멈춘 집에서, 살아낸 흔적을 보다

일본 지방 도시의 아침 골목, 그곳에서 자꾸 눈에 밟히는 집들이 있습니다. 출장 중 일부러 조금 일찍 숙소를 나선 날이면, 두세 블록만 걸어도 금세 조용한 주택가가 펼쳐지죠. 낮은 지붕의 집들과 오래된 정원이 이어지는 풍경은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익숙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 골목에서 자꾸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생겼습니다. 굳게 닫힌 현관문, 발치에 쌓인 우편물, 시간이 멈춘 듯한 커튼. 바로 요즘 일본에서 사회 문제로까지 언급되는 ‘아키야(空き家)’, 빈집입니다.


처음엔 인구 감소 때문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고령화와 지방 이탈, 너무도 자주 언급되는 일본의 구조적 문제들이 머리를 스쳤죠. 하지만 그 원인은 생각보다 복잡했습니다.


버블 경제기의 기억이 생생하던 시절, 도쿄를 중심으로 위성도시들이 대거 개발됐습니다. 학교와 병원, 상업시설이 한꺼번에 들어섰고, 많은 가족들이 도심과 연결된 삶을 꿈꾸며 이주했습니다. 모두가 비슷한 미래를 바라보던 시절이었죠.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그 꿈의 터전이 남긴 건 빈집이었습니다.


부모 세대는 고령자가 되었고, 자녀 세대는 이미 도심에서 각자의 삶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남겨진 집들은 관리되지 않았고, 때로는 아무도 찾지 않는 공간이 되어버렸습니다.


한 일본인 클라이언트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버블기 한가운데에서 부동산으로 큰 수익을 냈던, 저의 부모님 보다도 연배가 높은 분입니다. 예전에는 초과 분양이 당연했고, 분양가의 두 배에 거래되기도 했다고 웃으며 이야기하셨죠. 하지만 몇 해 전부터는 자녀들에게 “지방에 집 짓지 말라”고 조언한다더군요. 알고 보니 본인이 보유한 부동산 중 몇 채는 수년째 세입자를 찾지 못한 채 헐값으로 나와 있고, 관리비만 고스란히 빠져나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자녀들 역시 상속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끝에 맺힌 무게가 오래 남았습니다. 지금 일본에서 ‘부동산’이라는 단어는, 가격보다 수요가 먼저 사라졌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한국에서도 들었습니다.


한 친구는 결혼을 계기로 분당에 신혼집을 마련했죠. 당시엔 집값이 조정된 직후였고, 더 떨어질 거란 우려도 있었지만 ‘내 집’이라는 안정감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몇 년이 흐른 뒤, 그 집은 처음 산 가격보다 훨씬 올랐습니다.


반대로 또 다른 친구는 신도시 아파트를 분양받았다가 시세 하락과 공실로 발이 묶였습니다. 입주 당시엔 전세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렀지만, 계약이 끝난 뒤엔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결국 자신이 직접 들어가 살게 되었고, 늘어난 대출과 이자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런 일들을 곁에서 보다 보면, 점점 선을 긋지 않게 됩니다. 누가 잘했고, 누가 실수했는지를 따지기보다, 그저 각자의 선택과 배경을 받아들이게 되죠. 집이라는 건 숫자로만 설명되지 않는 대상이라는 걸, 나이가 들수록 더 실감하게 됩니다.


그것은 공간이기도 하고,

기억이기도 하고,

때로는 조용한 부담이며,

때로는 아주 오래된 위안이기도 하니까요.


누군가에게 집은 단지 지붕 있는 장소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또 누군가에겐 삶의 중심이자, 가장 사적인 안식처가 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땐 저도 모르게 창밖을 한 번 더 보게 됩니다.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집을 갖고 싶어 합니다. 임대 기간이 끝나면 이사를 해야 하는 현실, 집주인의 말 한마디에 계획이 흔들리는 불안. 그런 일에 더는 휘둘리고 싶지 않다는 바람이, 때로는 감정이 이성을 앞지르는 선택을 이끕니다.


그래서 ‘내 집 마련’이라는 말에 막연한 로망이 생기는 걸지도 모릅니다. 가구를 들이고, 벽에 못을 박고, 작은 식탁을 놓는 일. 단지 생각만으로도 단단한 위로가 느껴지는 그 장면들 말입니다.


얼마 전, 일본 소도시를 방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업무를 마치고 잠시 산책하던 저녁, 오래된 단독주택 앞에 멈춰 섰습니다. 외벽은 벗겨졌고, 정원엔 들풀이 무성했으며, 낡은 우편함은 비어 있는 채 삐뚤게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 순간, ‘0엔 주택’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무료로 줄 테니, 살기만 해달라는 조건. 누가 그 집에서 처음 울었고, 누가 마지막 불을 끄고 나갔을까요. 이상하게도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빈집은 어쩌면 실패의 상징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는 시간의 흔적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그 안에서 살아냈고, 결국 떠났으며, 그 이후의 시간이 지금도 조용히 흐르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런 집을 볼 때면 판단보다 생각이 먼저 듭니다. 나는 어떤 공간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은가. 집이란 결국 사는 것일까, 살아내는 것일까.


그리고 요즘은 이런 생각도 덧붙여집니다. 집을 갖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려운 시대인지도 모르겠다고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누군가 집 이야기를 꺼내면 굳이 의견을 덧붙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저 조용히 듣는 쪽이 더 편하더군요.


그리고 가끔, 그 일본의 오래된 빈집이 떠오릅니다.


그 집엔, 누가 살았을까요.

그리고 다음엔, 누가 살게 될까요.


경제 용어로 다시 읽는 오늘의 에세이


아키야 (空き家)

사람이 살지 않아 비어 있는 주택을 뜻하는 일본어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일본의 ‘빈집 문제’를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특히 고령화와 인구 감소, 도심 집중으로 인해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된 집들이 지방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0엔 주택

구입 가격이 ‘0엔’으로 표기된 일본의 빈집 매물. 지방자치단체나 민간 플랫폼이 아키야 활용을 위해 무료 또는 파격적 조건으로 내놓은 경우입니다. 실제로는 리폼 비용과 세금, 등기 등의 추가 비용이 발생합니다.


버블 경제

자산 가격이 실물 가치 이상으로 과도하게 상승한 상태를 말합니다. 일본은 1980년대 말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급등하며 버블이 형성되었고, 1990년대 초 붕괴 이후 장기 침체에 접어들었습니다.


위성도시

대도시의 인구 분산을 목적으로 주변에 계획적으로 조성된 도시. 일본에서는 도쿄 근교의 지바, 사이타마, 가나가와 등이 대표적이며, 버블기 대규모 주택단지 개발이 집중되었습니다.


초과 분양

분양 희망자가 몰리면서 예정된 물량보다 더 많은 계약이 이뤄지는 현상. 일본 부동산 버블기의 과열 양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상속 포기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의 유지·관리 비용이 수익보다 클 경우, 상속인이 이를 거부하는 현상. 일본에서는 빈집 문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됩니다.


정주인구 / 관계인구

‘정주인구’는 해당 지역에 실제 거주하는 인구, ‘관계인구’는 거주하지 않지만 일시적으로 지역과 연계되어 활동하는 인구를 뜻합니다. 일본은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이 관계인구 개념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지방소멸

젊은 인구가 빠져나가면서 지방 도시의 기능이 약화되는 현상. 2014년 마스다 히로야 보고서를 계기로 이 용어가 주목받았으며, 지역 인구 감소에 대한 국가적 대응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감정의 경제학

사람의 감정이 경제적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분야. 집은 단순한 투자 자산이 아니라 ‘기억’과 ‘정서’를 담는 공간이기에, 구매 결정에는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합니다.


※ 이미지 출처

작가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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