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아홉 시 반, 슈퍼 Super U에 들러 샌드위치용 잠봉을 사고 ‘성인의 계곡(La Vallée des Saints)’으로 향한다. 껑땅에서 70여 km 떨어진 꺄흐노에(Carnoët)에 위치한 성인의 계곡은 브르타뉴 건국 성인의 조각품이 있는 현대 문화 예술 유적지다.
파란 하늘과 도로 위의 캠핑카 행렬이 피서의 계절을 알린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마치 강원도의 메밀밭을 옮겨 놓은 듯했다.
“메밀(Sarrasin) 알아? 저기 보이는 게 메밀이야.”
“메밀요? 알아요! 한국도 메밀 먹거든요.”
”저흰 국수로 많이 먹어요.”
브르타뉴에 끝없이 펼쳐진 초록 들판 위로 소금꽃처럼 메밀꽃이 빛난다. 자잘히 터지는 흰 폭죽 같다.
브르타뉴는 비가 자주 오는 습한 기후 탓에 밀보다 작황이 좋은 메밀을 많이 재배해 왔다. 버터와 치즈, 시드르, 게랑드 소금으로 유명하지만, 메밀도 빼놓을 수 없는 이 지역 특산물이다. 덕분에 메밀로 만든 갈레트는 브르타뉴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갈레트는 게일어로 납작한 케이크라는 뜻으로, 둥글 넓적하고 바삭한 식감이 특징이다.
갈레트를 직접 체험할 기회는 파스칼의 별장에서 찾아왔다. 그날은 일본 친구들, 프랑스 학우들과 함께 밀반죽으로는 크레페를, 메밀 반죽으로는 갈레트를 구웠다. 갈레트는 보통 식사 대용으로 먹는 음식이라, 한 장 한 장 구울 때마다 정성을 쏟았다.
체험에 앞서, 파스칼은 우리의 배를 든든히 채워줄 토핑 주문을 먼저 받았다. 갈레트 판에 묽은 반죽 한 국자를 붓고, 크레페 도구로 둥글게 돌려 얇게 편 반죽이 고루 익어갈 즈음, 주문받은 대로 에멘탈 치즈, 햄, 달걀 등을 얹었다. 저마다의 취향대로 누텔라 초콜릿, 바나나, 그 위에 샹티이 크림(Crème Chantilly)을 올리기도 했다.
갈레트는 뒤집지 않고 한 면만 구워 그 안에 토핑을 얹는데, 밀반죽보다 쫀득하고 끝이 더 바삭했다. 그렇게 완성된 갈레트로 허기를 채우면 행복한 기분이 절로 들었다. 파스칼은 배부르게 먹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엄마처럼, 뿌듯한 얼굴로 우리의 배가 다 채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식사가 끝나자, 크레페 만들기 체험이 이어졌다.
검은빛이 도는 메밀 반죽은 익으면서 구멍이 송송 났다. 체험객들은 원으로 에둘러 서서 다른 사람이 크레페를 완성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크레페는 부채꼴 모양으로, 갈레트는 사각 모양으로 접어 완성했다.
모두가 앞선 체험자의 크레페가 잘 완성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시선을 떼지 않고, 누군가 멋지게 모양을 잡으면 마치 자신이 만든 것처럼 손뼉를 쳤다. 아들 준이도 도구에 한 손을 얹고 나와 함께 반죽을 돌렸다. 반죽이 둥글게 펴지며 모양이 만들어지자, 아이는 스스로 해냈다는 기쁨과 주변의 환호에 좋아서 폴짝폴짝 뛰었다. '꺄르르' 준이의 웃음소리에 모두가 덩달아 웃었다.
파스칼이 이 전통음식을 굽기 위해 넓고 판판한 원형 철판을 꺼내왔을 때, 나는 우리나라의 가마솥이 생각났다. 모양은 다르지만, 밥을 짓고 사람이 모이는 풍경은 어쩐지 비슷해 보였다.
작은 마을 길과 평야를 지나 굽이쳐 도착한 ‘성인의 계곡’은 비교적 높은 지대에 있었다. 하늘과 대지, 너른 들판과 나무, 검은 흙을 품은 경작지 외에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 위에 190 여 개의 거석들이 세워져 있었다.
이곳에서는 반세기에 걸쳐 약 1,000기의 석상을 세우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브르타뉴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아일랜드, 웨일스, 영국 콘월에서 건너온 성인들과 브르타뉴의 건국 성인들이 시조처럼 세워지고 있었다. 프랑스와 영국에서 실려 온, 높이 약 4미터에 달하는 화강암 조각들이 전시장을 채웠다.
기념 공원에 들어서자, 길목 한 편에서 산업용 귀마개와 작업용 선글라스를 낀 조각가가 고개를 옆으로 꺾은 채 한창 작업 중이다. 비계에 올라 굵은 땀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는 조각가의 두 손엔 전동 공구가 들려 있다. 공구를 힘껏 잡은 그의 팔뚝 위로 힘줄이 울긋불긋 올라올 때마다 근육음이 들릴 것 같아 작업이 더욱 격렬해 보였다. 조각가는 단단한 화강암 속에서 성인들을 끄집어내는 작업에만 온전히 집중하고 있었다. 마치 우주 한가운데 조각가와 화강암 속에 갇힌 성인 단 두 사람만 있는 세상 같다.
그러다 바위 깎는 기계 소리가 잠시 멈췄다. 우리는 조각가의 다음 스텝이 휴식일 거로 생각했지만 조각가는 고요를 깨고 이내 다시 정과 끌을 들어 작업에 몰두했다. 예술가들은 온몸과 영혼을 다해 성인의 기념비를 조각하며 공원 조성에 함께하고 있었다. 그들의 헌신이 깃든 석상에 경의를 표하며, 땀과 열정이 담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고 싶어졌다.
입구에서 로제타 스톤을 닮은 비석이 우리를 먼저 반겼다. 이제 막 벽에서 떼어낸 듯 둘레가 거친 비석을 들여다본다. 새겨진 고대어의 뜻은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성인을 경배하는 내용일 것이라 짐작했다. 대여한 해설 오디오 가이드를 들고 석상들을 둘러본다.
석상마다 개성이 뚜렷해 우리는 관심 가는 성인 중심으로 관람하기로 했다. 나는 먼저 십자가에 매달려 손목이 하늘로 포박된 예수 성인의 몸에 시선이 갔다. 미간을 찌푸린, 긴 머리의 예수 몸에는 수많은 구멍이 뚫려 있다. 구멍의 숫자를 헤아리다 스무 개를 넘기자, 숫자 세기를 멈췄다. 고통이 충분히 전해져 구멍의 수를 세는 일이 무의미해졌기에.
로브를 입은 수도승의 석상은 임계점을 넘은 고통의 성체를 마주하며, 묵상하듯 침묵 속에 응시한다. 석상 사이에 선 나는, 그들 사이에서 과거와 미래의 경계에 선 듯한 기분이다.
전장의 부츠 같은 신을 신고 거대 강아지와 먼 곳을 바라보는 성인, 모자를 쓰고 팔레트 위에서 붓으로 색을 섞고 있는 화가 성인, 거대 성인의 측면에 붙은 아기 성인, 늑대인간이 끄는 마차에 탄 동물들 등, 석상은 신화와 결합한 상상력의 열매가 관람객들을 깊은 사색으로 이끌었다. 그때, 해맑게 웃는 하회탈을 닮은 거대한 얼굴 석상 위로 구름 사이 햇살이 사선으로 비쳤다. 신의 계시처럼 성스러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볕 때문이었을까? 석상의 웃고 있는 입가 주름이 더욱 인자하게 느껴졌다.
‘리와논(N78, Saint Riwanon)’ 성인은 이 많은 멋진 석상 중에서도 특히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멀리서부터 가까이 다가갈수록 시선은 점점 그녀에게로 모아졌다. 이음새 없이 단정한 긴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가지런히 넘긴 채 저 먼 곳 어딘가를 응시하고 서 있었다. 한 손은 무릎 위에 다른 한 손은 바람에 날리는 풍성한 머리카락을 고정하듯 붙잡고 있다.
5세기 말경에 태어난 그녀의 이름은 브르타뉴어 Rivanone으로 ‘달콤하고 다정한 여왕’을 뜻한다. 성인 Saint Hervé의 어머니로, 성인의 아버지는 천사의 조언으로 리와논을 찾아 결혼해 성인 Saint Hervé을 낳았다.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가 생각나는 이야기지만, 리와논 성인은 성모 마리아와 달리 음유시인으로 살았다. 명상과 시로 자신을 수양하고 행복한 기질을 발전시켰던 그녀 옆에서 나는 조금 더 머물렀다. 평온했다.
“우리 여기서 사진 찍을까?” 파스칼이 나를 불렀다. 그녀가 가리킨 곳에 왕좌를 닮은 석상이 있다. 의자는 등 받침 위로 높이가 다른 두 개의 첨탑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 등받이에 뚫린 무늬 사이로 구름이 배경처럼 흘러가고 있다. 제왕이 살고 있는 어느 세계관 속으로 이동해 온 듯한 기분이다. 우리는 단순한 관광객이 아닌, 마치 그 세계의 일부가 된 듯한 착각과 함께, 왕좌를 차지한 것처럼 묘한 영광에 휩싸였다. 왕좌를 한 번씩 차지한 우리는 위엄 있는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파스칼의 스카프가 바람에 실려 동쪽으로 가고 있었다.
기념 공원 한가운데, 산등성이가 있다. 계단을 따라 오른 산등성이의 산책로는 양치식물로 가득했다. 360도 파노라마 뷰가 펼쳐지는 원형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초록 대지 위의 석상들을 내려다본다. 펼쳐진 구름이 살짝만 내려앉아도 석상에 닿을 듯이 낮게 드리워졌다. 바람을 맞으며, 1,000여 개의 석상이 모두 세워졌을 때 펼쳐질 장면을 상상한다. 예술가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성인 조각들이 장관을 이루는 풍경을 떠올리며, 반세기 후의 모습을 그려본다.
현실로 돌아와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작은 성당을 둘러보려는 가족 관광객들 사이에 우리도 자연스럽게 섞여 들었다. 유적물 기념비가 붙은 아기자기한 샤펠의 안을 들여다보지만 굳게 닫힌 문이 속살을 허락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풍화되고 부서져 희끗희끗 가루를 날리지만, 샤펠은 여전히 무수한 사람들이 기도하던 시간을 간직하고 있다. 폐쇄된 지금도 기도가 이어졌던 그 시절도 시간은 멈췄지만, 의미는 잊히지 않았다. 순간의 여운을 품고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 기념품 상점에 다다랐다.
우리는 관람을 마친 기념으로 공원 기념품을 고르기 시작했다. 성인의 미니어처, 성화, 서적, 엽서 등 멋진 성인 조각들이 진열되어 있어, 쉽게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파스칼도 신중한 모습이다. 비교적 긴 시간 동안 기념품을 고른 끝에, 우리는 각자의 기념품을 손에 든 채 차에 올랐다.
출발하기 전, 나는 파스칼에게 내가 고른 기념품을 건넸다. 건네받은 파스칼은 웃음을 터뜨리며 자신이 고른 선물을 내게도 내밀었다. 맞교환 같은 선물 증정식에 둘 다 웃었다. 그녀가 고심 끝에 선택한 선물은 내가 오래도록 바라보았던 미니어처 석상이었다. 기념품 중에서도 유독 마음을 끌었던 성인의 조각이었다. 그리고 지역 특산 차. 나는 선물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담아 선물을 주고받았고, 껑땅의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하루가 저물어가는 작은 소도시 껑땅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이반, 파스칼, 그리고 나. 우리 셋은 마지막 밤을 기념하기 위해 시내의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고즈넉한 거리를 함께 걷는다. 도란도란 걸으니 조용하던 거리에 우리의 목소리만 들린다. 갑자기 파란빛이 은은하게 퍼진 하늘 위로 새들이 부산하게 날아다닌다. 새들은 분주한 소통을 하느라 우렁차게 지저귄다. 품이 넓고 조용했던 도시에서 느껴지는 부산스러운 경쾌함이 반갑다. 마지막 저녁을 보내며 우리는 와인잔을 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