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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G 무선 통신, 다시 과거로

by 에코바바

프랑스에 머무는 동안, 친구들과 연락할 임시번호를 개통하려 통신사 부티크로 향한다. 어느 통신사를 선택할지 망설일 법도 한데, 선택에는 고민이 없다. 무조건 반사로 한 통신사가 떠올랐으니. ‘브이그’. 왜 하필 그 통신사였을까. 요금도, 서비스도 다른 선택지가 더 나았을지도 모르는데. 그 순간 내 마음을 이끈 건 실용보다 기억이었다는 사실에 조금 멋쩍은 웃음이 났다. ‘브이그’는 프랑스에 처음 머물렀을 때부터 줄곧 사용하던 통신사다. 선택은 오직 ‘추억’에서 비롯되었다.


추억은 그렇게 조용하면서도 강하게 마음을 움직였다. 마치 먼 대륙에 사는 아이의 책상 서랍 속에 들어 있는, 꺼내 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시험지처럼, 나는 두 번 고민하지 않고 통신사를 골랐다. 동네에서 데면데면했던 스타벅스가 낯선 곳에선 오랜 벗처럼 느껴지듯, 시간이 흘렀지만, 여행지 한복판에서 익숙한 이름 하나가 주는 안도감은 여전히 컸다. 추억이란, 아마도 유효기간 없이 가슴속 어딘가에 남아 있다가 필요할 때 불쑥 나타나, 고민을 단순화해 주는 묵묵한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내 마음은 그곳에 있었으니.




부티크 행 정류장에 62번 버스가 꽁방시옹(Convention)역을 향해 천천히 들어왔다. 고동색 번호판을 단 62번 버스는 파리 센강 남쪽을 지난다. 16구 서쪽 끝에서 13구 동쪽 끝까지 이어지는, 강남을 잇는 가장 긴 노선이다. 잦은 배차에 많은 사람들이 62번 버스를 애용했다.


나는 어학원이 끝나면, 이 버스로 갈아타고 하원하는 아이를 자주 데리러 갔다. 치킨 가게가 드물었던 시절에는 15구 유일의 치킨집인 KFC를 찾아 타던 버스이기도 했다. 그래서 62번 버스는 나에겐 하교 버스이자, 우리 집 외식 버스였다.


아이도 이 버스에 오르면 치킨과 프렌치프라이를 먹으러 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 즐겁게 내맡긴 아이의 손을 잡고 소풍 가듯 외식하러 다니던 기억 때문이었을까. 버스를 탄 목적이 휴대전화 개통보다는 나들이를 가는 기분에 더 가까웠다. 버스 창문을 열어 얼굴에 바람을 맞아 본다. 아~ 상쾌하다.


62번 버스에는 유독 유모차가 자주 보였다. 엄마 혼자서도 주변의 도움 없이 유모차를 기울여 탈 수 있는 낮은 굴절 버스였기에, 많은 아기가 버스에 함께 올랐다. 덕분에 귀여운 아기들을 자주 마주치고 자주 웃을 수 있었다. 이 버스를 탈 때면 그런 소소한 즐거움이 따랐다.


버스에서 내리자, 그 시절 귀했던 치킨집이 아직도 있을까 싶어, 꽁방시옹역 사거리에서 고개를 내밀어 간판을 찾아본다. 간판이… 여전히 있다.


“아! 아직 있구나.”

왠지 소식 끊긴 친구를 만난 듯

“어떻게 살아 있었네!”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나는 문득, 우리가 자주 앉던 창가 자리도 그대로인지 궁금해졌다.




브이그(Bouygues) 통신사 부티크에 들어서자, ‘퐁퐁퐁퐁’ 튕기듯 예전 번호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치 팝콘처럼. 임시 번호를 만들러 왔지만, 혹시 예전에 쓰던 번호로 다시 개통할 수 있을까 싶어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왜 인지, 잊으려 한 적도, 잊지 않으려 한 적도 없는 이 평범한 번호가 떠올랐다. 가끔 어떤 기억은 도드라지는 기억으로 남지만, 이미 오래전에 잊혔다고 생각했던 숫자가 뇌 속 어딘가에 잠들어 있는 줄은 몰랐다. 많은 휘발된 기억들과 달리, 이 번호는 기억 창고에서 여전히 살고 있었던 모양이다. 10년이 다 되도록 잊히지 않은, 10자리 숫자다.


나는 당연하게 옛 번호 대신 새로운 번호를 받았다. 프랑스에서 에스토니아까지, 유럽 전역에서 쓸 수 있는 유심칩으로 갈아 끼운 뒤 전화기를 다시 켰다. 전원이 켜지는 순간, 문득 아빠가 처음 사줬던 011 애니콜 휴대폰을 손에 들고, 전화기를 켜던 기억이 떠올랐다. 스무 살 대학 시절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휴대폰이 나를 거쳐 갔어도 첫 개통의 느낌은 쉬이 찾아온 적이 없었는데, 이상했다. 삐삐 메시지를 공중전화로 듣던 시대에서, 나만의 손전화기를 갖는 시대. 그야말로 신세계가 펼쳐졌던 시절의 설렘이었다. 그때 느꼈던 큰 두근거림으로 휴대폰이 켜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기루 같은 공중누각이 가슴 속에서 일렁였다. 이런 감정이 다시 오려면 아마도, 언젠가 이곳에 돌아와 예전 번호를 다시 쓰게 되어야 가능할 거란 상상을 해보았다.


통신이 연결되자 통신 바 옆으로 3G라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마크가 보였다. 3G. 3세대 통신 기술···? 10여 년 전, 마지막으로 쓰던 그 속도 그대로 돌아오다니. 그때 두고 간 휴대폰의 전원 버튼을 지금 다시 누른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시간을 거슬러 온 것처럼, 10여 년 전 프랑스로 돌아온 느낌이라니···. 3G.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휴대폰 액정 속 숫자가 4G와 3G를 오갔다.


“그래도… 4G로 가고 있다. 4G가 어딘가…”

아직 4G가 확정되지 않은, 확연한 변화는 아니었지만, 프랑스도 나름 가열하게 통신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10여 년 전, 세상에서 가장 빠른 나라에서 가장 느린 나라로 왔었던 그 느낌이 데자뷔 됐다.




은행 계좌 개설, 주택보조금 신청, 인터넷 개통 같은 일들이 3주에서 석 달은 족히 걸렸던 나라, 프랑스 정착의 열쇠는 ‘인내’였다. 인내는 숨을 30초, 40초, 1분…점점 더 길게 참아내는 것처럼, 시간을 들여야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길게 조금 더 길게. 단숨에 길러지는 것이 아닌, 일상에서 천천히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었다.


나는 프랑스를 떠날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 속도에 맞춰 숨 쉴 수 있게 되었다. 여행은 다시 그 삶을 살게 할 것이다. 내가 길들었던 그 속도대로. 나는 다시 이곳의 속도로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 휴대폰은 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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