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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 생브리외

by 에코바바

파란 하늘 위로 손에 잡힐 듯한 낮은 구름이 가득 떠 있다. 화가의 이젤 위에 펼쳐진 명화 속 구름처럼 근사하다. 생브리외(St-Brieuc) 기차역 선로 뒤편의 풍경이, 화가라면 누구나 붓을 들고 싶어질 것 같다. 청석을 얹은 대형 돔 아래 반원의 장미창 역사(驛舍)가 인상적이다. 단층처럼 낮아 보이지만 루브르 박물관의 지붕과 자못 닮아 있어 위엄이 있다. 기차가 생브리외역에 정차하고 있다.


몇 년 만인지… 파스칼을 만난 건 2015년 이후로 처음이다.



종종 소식은 주고받았지만, 오늘의 해후는 꿈에서만 생각했던 일이다. 만나기로 결심했을 때는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혔고, 몇 년을 더 보내는 동안에는 ‘파스칼 아줌마가 더 나이 들기 전에, 꼭 한번 보면 좋으련만…’ 하는 막연한 바람만 품어왔다. 얼마나 변했을까… 돌돌돌 소리와 함께 플랫폼에 캐리어를 끌고 내렸다.


파스칼부터 찾아 나서야겠다고 생각하자마자, 파스칼이 내 이름을 불렀다. ‘일죵~! ‘ 소리에 뒤돌아보니, 그곳에 아줌마가 서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보자마자 부둥켜안았다. ‘반갑다’는 말보다는 ‘감격’이라는 표현이 맞았다. 상상에만 가두어져 있던 생각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리웠던 감정이 눈가에 뜨겁게 맺혔다. “얼마만이에요~!”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가까이서 들여다보았다. “그러게, 얼마 만이야!”


“좋다. 좋아!” 파스칼은 좋다는 말을 연발했다.

두 손을 다시 맞잡으며 나도 “드디어 만났네요”라고 답했다.

우리는 지나쳐가는 많은 휴가객 속에서 깊고 진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파스칼은 생브리외역에서 20여 km 떨어진 교외의 껑땅(Quintin)이라는 곳에 살고 있었다. 처음 프랑스에 간다는 기별을 넣었을 때 그녀는 ‘때마침 좋은 때에 온다’고 기뻐했다. 그녀가 말하는 ‘좋은 때’란, 편안한 노후를 보내는 때를 뜻했다. 파스칼은 줄곧 플라워 샵에서 일해왔다. 은퇴한 지 갓 1년이 된 그녀는, 자신의 정원 속에 파묻혀 지내고 있었다. 자연 속에서 인생의 후반부를 보내고 싶어 하던, 늘 원했던 그 때에 맞는 손님이었다. ‘좋은 때’는 그녀 나름의 표현이었다.


주차 타워를 빠져나와 20여 분을 달렸다. 교외로 접어들자, 10년 전 함께 보냈던 브르타뉴의 한가로운 전원 풍경들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창연한 하늘과 한산한 도로. 새로 개통된 길을 시범 운행하는 차가 달리듯, 도로는 잠잠했다. 우리만이 도로를 달렸다.



마을로 접어들면서 청회색 지붕을 얹은 견고한 성벽이 가까워졌다. 껑땅 성(Château de Quintin)이다. 단정하고 깔끔한 인상이다.


“와. 성 멋지네요”

“여기는 아직도 가족이 성을 관리해”

“아. 그래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성벽을 바라보았다. 후손들이 성을 정성스레 가꿔온 덕에, 껑땅 성은 창건 당시와 그리 멀지 않은 모습이었다.




껑땅 성을 보니 성주 관련 다큐멘터리가 문득 떠올랐다. 그 다큐멘터리는 상속으로 고성(古城)의 성주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다큐멘터리 속 성주들은 대부분 자의가 아닌 타의로 '성주'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다른 직업을 갖고 있더라도––비록 그 직업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더라도––허물어지고 노후한 유산을 방치하거나 팔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 직업을 버리고 이주하여 '성주'로 살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변호사였다. 그는 물려받은 성(城)의 보수를 위해 재원을 마련할 방법을 백방으로 찾고 있었다. 성의 일부를 개조해 호텔이나 이벤트 홀로 대여하며, 다양한 행사를 유치했다. 층고가 높은 홀에서는 대형 전시회를 열었고, 일부 성주는 지하 포도주 저장고인 '카브(Cave)'를 활용해 포도주를 판매하거나 시음 행사를 열었다. 또, 그림이나 가구 같은 인테리어 소품이 많은 성은 일반 관람객에게 개방해 관람료를 받기도 했다. 프랑스의 많은 성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화재급 성의 수리는 일반 건물과는 달랐다. 고증된 재료와 전통적인 수리 방식을 고수해야 했기 때문에, 문화재 수리 장인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마련한 비용은 언제나 빠듯했다. 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성주들의 핍진한 삶을 보며, 나는 더 이상 성주라는 삶을 마냥 부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껑땅 성 역시, 그런 성 중 하나였다.


프랑스에는 루아르강을 따라 자리한 성만 해도, 샹보르성, 앙부아즈성, 쉬농소성을 비롯해 3,000여 개가 넘었다. 이 지역 전체는 그 역사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아름다운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오늘도 성의 주인, 성주(城主)들은 묘안을 궁리하거나, 혹은 부동산 시장의 문을 두드릴지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내를 지나는 내내 일관된 한적함이 마치 ‘우리 동네엔 떠들썩한 일은 아예 없어요’라고, 얘기하는 듯 고요했다. 조용한 동네가 마음에 들었다. 언덕길에 올라서며 시내로 접어들었다. 속도를 늦추며 그녀가 창밖 넘어 손짓으로 시청 건물을 가리켰다. 아담한 시청은 백발노인의 콧대에 걸린 빨간색 뿔테 안경처럼, 붉은색 창틀을 두르고 있었다. 붉은 창이 무채색 건물에 생기를 주어 발랄해 보였다.




외길로 난 작은 도로를 지나, 우리는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오솔길 끝에, 작은 빨간색 우체통이 보였다.


“다 왔어!”


동화 속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우체통이, 지키는 집치고는 너무 앙증맞았지만, 꼭 "어서 와요"하고 인사하는 것 같아서, 웰컴 우체통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우체통이 귀여워요.”

파스칼이 웃었다.


긴 오솔길 안으로 들어서자 탐스러운 꽃들과 채소밭이 펼쳐졌다. 색깔도 종류도 다양한 농작물들과 꽃이 심겨 있다. 작은 비닐하우스도 있다. 너른 채소밭을 지나 안쪽 끝에 파스칼의 집이 있었다. 드디어 도착이다. 예쁜 농가 주택이다. 차 들어오는 소리에 파스칼의 첫째 딸 이반이 웃으며 집에서 나왔다.


“Salut! 안녕!”

나도 똑같이 “Salut! 안녕!”하고 인사를 건넸다.


오면서 얘기했던 바로 그 딸이다. 이반은 파리의 한 은행에서 재무를 담당하며 재택근무 중이다. 2주에 한 번, 생브리외에서 파리로 출근하는 날을 제외하곤 이곳에서 엄마와 함께 지냈다.


“배고프지? 우선 짐부터 놓고 와서 같이 밥 먹자.”


파스칼의 말에 이반은 나를 방으로 안내했다. 나는 곧바로 뒤따라 나섰다.

이반이 안내한 방은 그녀 자신의 방으로, 멀리서 오는 엄마의 손님을 위해 기꺼이 내어준 공간이었다. 외부 테라스를 지나 방문을 열자, 아치형으로 난 예쁜 유리문 뒤로 햇살이 환하게 들이치고 있었다. 정원이 보이는, 뷰가 아름다운 방이었다. 아무래도 이 집에서 가장 좋은 방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일었다. 하지만, 햇볕이 잘 드는 이 방이 마음에 쏙 들었다. 창에서 너른 정원을 바라보니 손님방으로 내어준 마음이 더 고마워졌다.


“방이 참 예쁘다!”고 말하며, 나는 기쁜 미소가 지어지고 있단 걸 알았다. 이반이 싱긋 웃었다.



야외 테라스에 나가니 파스칼은 사과파이(tarte aux pommes)와 닭구이(Poulet rôti)를 메인 요리로 한 바게트와 버터, 잼, 차 종류를 내왔다.


“사과파이 기억나?”

“당연하죠. 같이 만들었었잖아요”

나는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는 의미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서 일부러 사과파이를 준비했어.”

추억이 빙그레 떠올라졌다.


꽃 학교 시절, 파스칼이 빌린 학교 앞 그녀의 집에 종종 놀러 가곤 했다. 파스칼은 차를 즐겼는데 어느 날은 함께 먹을 디저트를 만들자며 주방에서 이것저것 재료를 내왔다.

“이거, 생각보다 만들기 쉬운 디저트야.” 파스칼이 그렇게 말하며 제안한 건 사과 파이였다.


우리는 그녀의 작은 주방 앞에서 밀가루 반죽을 치대고, 밀대로 밀어 파이 도우를 만들었다. 그리고 버터 바른 오븐 틀에 반죽을 얹었다. 포크로 바닥을 찌르는 시범에 나도 제멋대로 찌르며 함께 깔깔 웃었다.


“이렇게 반죽을 포크로 찌르는 이유는, 반죽에 구멍을 내야 한쪽만 부풀지 않고 평평하게 잘 익힐 수 있어. 그럼, 모양도 예쁘게 나와”


파스칼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녀는 늘 설명하길 좋아했고, 나는 그런 설명 듣기를 좋아했다. 추억을 떠올리는 사이 파스칼은 큰 칼로 파이를 썰어서 큼직한 한 조각을 내 접시로 옮겼다. 옆에서 오븐에 구운 닭고기와 실한 감자가 수북이 쌓인 감자요리를 담으며 이반이 물었다.




“멀리서 오느라고 피곤하지? 오는데 얼마나 걸렸어?”


“어…우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우회하느라 비행시간이 약 두 시간 더 늘었어. 총 14시간 20분 정도 비행기를 탔고, 마침 도착한 날이 혁명기념일이라 버스가 안 다녀서 택시를 탔는데, 또 올림픽 준비로 여기저기 공사 중이라 파리 시내를 꽤 많이 돌아왔어. 그리고 파리 숙소에 잠깐 머물다가 떼제베 타고 여기까지 왔지! 긴 여정이지만 이렇게 도착했어!”


“후유~”

나는 한숨을 돌리며, 땀을 식히듯 얼굴 앞에서 손을 휘저었다.

“세상에! 진짜 오래 걸렸네~!”

“그러게~”


내 손부채질 하는 모습을 보며 파스칼도 이반도 함께 웃었다. 기차 안에서 더듬더듬 심폐소생술 하듯 죽은 불어를 살리며 만든 문장이었지만, 이렇게 웃으며 통하니, 보람이 있었다. 파파고 번역과 구글 번역기가 생겨나서 얼마나 기쁜지. 새삼 고마웠다.


파스칼의 집은 노환으로 별세한 친척의 농가주택을 인수해 낡은 부분을 손본 집이다. 농가주택 뒤로는 농장이 딸린 전형적인 브르타뉴의 석조주택이다. 내부 방들을 터서 합치고 본채 외벽 밖으로는 채광 좋은 민트색 베란다를 만들었다. 별채도 차례차례 손을 보고 있었다.




베란다에서 디저트로 멜론과 차를 먹는 사이 회색빛의 고양이 티미가 나타났다. 티미는 티미드(소심한, timide)의 짧은 표현이었지만 베란다 난간으로 걸어 다니는 모습은 전혀 소심해 보이지 않아 빙긋한 웃음이 났다. 산만한 아이들이 얌전해지기를 바라며 바둑학원에 등록하는 엄마들처럼, 티미도 그런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모순된 이름을 가진 티미의 활발함에 웃음이 터졌다.


파스칼은 내일의 일정을 이야기하며 오늘 저녁에는 시내 산책을 먼저 하자고 했다. 좋다는 대답을 하면서 내 눈은 정원을 향했다. 차를 마시면서도 온 정신이 정원으로 향해 있던 나는 기어코 정원부터 먼저 구경해도 되냐고 물었다. 안달하던 내 표정을 읽었는지 파스칼은 흔쾌히 나를 정원으로 안내했다. 기다려왔던 발걸음처럼 파스칼의 걸음도 나만큼이나 사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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