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깔리기 전, 껑땅에서의 오후 산책에 나섰다. 산책 코스는 파스칼이 즐겨 걷는 길이다. 익숙하지 않은 오르막길인데도 고요한 길이 살갑다. 시내로 나가는 길목에, 성벽처럼 높이 솟은 넉넉하고 근사한 집들이 많다. 세월이 묻은 집들이 켜켜이 쌓아 올린 돌담을 두르고, 묵직하고 견고한 인상을 풍긴다. 멋스러운 나무도 그 안에 여럿 품었다. 길가에는 마른 꽃잎이 남아 있는 흰 니겔라와 씨방들이 인도 틈새마다 피어 있다.
“이 집도 비었어, 이 집도…”
“집이 예쁜데… 안타깝네요”
“맞아…”
파스칼은 떠나가는 이웃들을 많이 아쉬워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집은 주인 없이 홀로 조용히 나이 들어가는 중이다. 번성했던 시절에 지어진 집들과 울창한 나무들만이 오래된 담벼락 너머로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봉쥬 bonjour”
우리는 눈인사로 웃으며 마주치는 동네 주민과 친근한 인사를 나눴다.
갑자기 뒤에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따라붙었다. 돌아보니, 부부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오고 있었다. 한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닐 정도였고, 다른 아이는 더 어려 보였다. 원피스와 라피아 모자가 딱 바캉스 복장이다. 유럽인들은 짧은 여행은 파리로, 장기 휴양지로는 프랑스 시골로 떠나곤 했는데, 살짝 상기된 표정을 보니 나처럼 여행객인 듯했다.
쿠쿠 coucou! 안녕!
우리는 아이들에게 인사를 전한다.
앙증맞은 얼굴에 붉게 올라온 볼살이 귀엽다.
벨기에에서 왔다는 가족은 한 달간 집을 빌려 브르타뉴에서 머무는 중이라고 했다. 조용한 소도시에서의 휴가가 무척 만족스럽다며 다녀온 곳들을 이야기했다. 파스칼은 잠깐 서서 가볼 만한 장소 몇 군데를 추천해 주었고 우리는 갈림길에서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좋은 여행이 되기를 바라요.”
시내에 도착해 먼저 들른 곳은 오래된 시내 서점이다. 파스칼은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며 보여주고 싶었다던 서점을 소개했는데, 그녀는 2014년 브르타뉴 여행 때도 일행을 데리고 서점 투어를 했었다. 그때 브르타뉴 출신 환경학자가 그린 브르타뉴의 자연과 새, 항구와 집들이 마음에 들어 드로잉집을 구매했는데, 투박한 듯 거친 드로잉 선 위에 아름다운 색감이 더해진 수채화 화집이었다. 나는 한국에 가져와 작업실에 꽂아 두고, 브르타뉴 풍광이 생각날 때마다 종종 꺼내어 보곤 했다.
서점은 목재 기둥을 그대로 노출하여 전통 방식으로 쌓아 올린 목재 골조양식(colombage)으로 지어졌다. 3개의 기둥보가 든든히 건물을 떠받치고 있다. 서점에 들어서자,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른 시대에 머무는 은자의 집으로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든다. 건물 안은 두꺼운 사각 화강암 돌들을 암벽처럼 쌓아 올린 벽으로 둘러싸여, 문밖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로비 안쪽에 아치형으로 난 낮은 문을 고개 숙여 내려가자, 청소년 코너로 이어졌다.
연결된 통로는 또 다른 동굴 같은 곳으로 이어졌고 계단 없이 완만한 단차가 계속되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살짝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갑자기 호그와트 기숙사 비밀의 방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으슬으슬 한데서 무언가 비밀스러운 게 나올 것 같다. 해리포터와 헤르미온느처럼 무서워도 꾸역꾸역 참아가며 한발 한발 내딛는 아이들이 생각난다. 궁금함이 두려움을 이긴 용감한 아이들. 영화인 줄 뻔히 알면서도, 이불을 꼭 말아 쥐고 눈 밑까지 끌어당긴 채, 귀까지 틀어막고서야 겨우 볼 수 있는 어른들도 있는데…그래서 세상은 그 아이들을 더욱 사랑해 줬을 것 같다.
간접조명 아래, 가지런히 정리된 청소년용 책들이 아늑한 분위기를 냈다. 적당한 습도와 직사광선 없는 곳에서 지내는 책들이 이 공간안에서는 꽤 쾌적하고 안전해 보였다. 나는 마음에 드는 책들이 꽂혀 있는 서가 앞에 섰다. 단지 책 한 권을 꺼내 펼쳤을 뿐인데, 그 단순한 행위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책 구경에 허우적대며 좋아하는 내게 파스칼은
“좋아할 줄 알았어”라며 기분 좋아했다.
“여기 공간이 멋져요.”정말 마음에 들었다.
웃으며 둘러보니, 푸른 회색의 폭신한 소파에 앉아 텍스트를 읽고 있는 독서가의 안락한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목조 기둥보가 받치는 낮은 천장 아래, 편안한 리듬으로 책을 읽는 망중한의 여유. 한가로운 풍경이 보기가 좋다. 나는 진열된 책 사이사이를 거닐 듯 눈으로 산책하다 ‘멜랑꼴리아(MELANCHOLIA)’라는 한글책을 발견했다. 칵테일파티 효과처럼 수많은 알파벳 속에서 한글을 찾아낸 것 같다. 망원렌즈를 최대로 당긴 듯이 한글이 또렷이 맺혔다. 이 책은 한국작가(작가 성아정)의 아코디언 그림책으로 프랑스어와 한국어로 쓰였다.
Quand ils m’entouraient
검은 구름에 둘러싸였을 때
J’ai férme les yeux
눈을 감아 버렸어요
Je ne sais pas pourquoi
나도 모르게
Aller
가자
책은 목탄으로 그린 시커먼 구름이 소용돌이치며 하늘로 휘감겨 올라가는 장면으로 시작됐다. 칠흑 같은 구름은 하늘을 활공하는 새들조차 집어삼킬 기세로 점점 커져갔다… 이방인으로 살던 시절, 망향이 짙어지던 때의 감정이 떠오르며 문득 내 마음도 아릿했다. 책은 제목 ‘멜랑꼴리아’처럼 글과 그림에서 멜랑꼴리한 작가의 심상이 그대로 전해졌다.
우울한 감정과는 별개로 나는 ‘한국어가 담긴 소중한 그림책을 외딴 이 작은 도시에서 만나다니!’라며 다른 결로 기쁨을 느꼈다. 외딴 소도시에서 한글을 만날 줄이야. 파스칼에게도 책을 보이며 낯선 도시에서 뜻밖의 조우를 자랑했다.
“여기 한글책이 있어요!”
“그러게! 정말 한글책이 있네!”
한 쪽씩 붙잡고 아코디언 북을 펼쳤다.
우리는 동굴을 탐험하듯 신간코너, SF코너, 만화코너 등을 넘나들다 예술 서적 코너에서 멈춰 섰다. 빨간 아라비아풍 무늬의 태피스트리가 깔린 의자에 앉아, 마음에 드는 책을 펼쳤다. 취향껏 고른 책들과 데이트가 한창 일 때에 파스칼이 책 한 권을 가져왔다. 브르타뉴의 명소가 담긴 사진집이다. “내일은 여기 갈 거야“하며 파스칼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요새처럼 지어진 등대가 있었다. 그곳은 분홍 화강암 지대위에 사각의 등대가 우뚝 솟은 라 그라닛 호즈(La Granit Rose)였다. 커다란 바위가 장관인 곳이라 험난해 보이면서도 기대가 됐다.
서점에서 나와 들른 시청과 도서관은 과하지 않은 규모에 겸손한 듯 단정했다. 마을 중심에 자리한 시청은 광장 역할도 겸해, 그 주변으로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중 작은 상점에 두 마리의 강아지와 가족 초상화가 전시돼 있다. 단란한 강아지 가족이 따뜻한 인상을 준다.
겉보기엔 오래되지 않은 말끔한 건물 외벽에 숫자 하나가 새겨져 있다. 1670. 축조 연도다. 이 건물 위로 수백 년의 세월이 쌓였다는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마치 세월과 멀찍이 떨어져, 방부처리 되어 살아온 것 같다. 2층 중앙에 있는 아치형 벽감 안에 안치된 아기 예수와 성모 마리아 덕분일까? 종교의 신비와 힘을 슬며시 빌려와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현현이나 기적 같은 것에 기대지 않고도 이해하고 싶었다.
건물은, 과학적인 통풍 설계의 유연함과 볕이 구석구석 잘 닿는 구조 덕에 관리도 효과적이었을 것 같다. 재료의 견고함, 시공의 합리성 등도 유지 비결이겠지만, 무엇보다 건물을 아끼는 사람들의 정성이 배어 있는 것이 비밀의 열쇠 같았다. 지붕을 손보고 균열을 메우고 누수관을 제때 고치며, 마치 꽃을 가꾸듯 사람을 돌보듯 이 건물을 가꿔 온 사람들의 애착의 손길이 지금의 이 말끔한 아름다움을 만든 것은 아닐까. 전면 개방한 창문이 활짝 연 마음처럼 시원했다.
우리는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난 뒤, 껑땅 성과 성당에 들러 시간을 보냈다. 성모 마리아상 아래에서 초 하나에 불을 붙이고, 성가가 울려 퍼지는 자리에서 종소리를 들으며 한동안 머물렀다. 파스칼과 나는 말없이 가족의 건강과 주변의 안녕을 빌었다.
햇살이 오래된 전나무 사이를 뚫고 아늑한 공원 잔디밭을 비췄다. 작은 이 공원도 파스칼이 자주 산책하는 곳이다. 잘 손질된 너른 잔디를 지나, 돌로 네모지게 둘러쌓은 오래된 분수를 향해 걸으며 노목과 푸른 들을 지났다. 공원을 함께 거닐며, 매일 이곳을 걷고 있을 파스칼의 평온이 그려졌다.
돌아오는 길, 반딧불이처럼 작고 은은한 빛 하나가 창밖으로 흘러나왔다. 빛은 드물게 다시 돌아온 이웃집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었다. 수리와 단장을 마친 집에서 내뿜는 빛은, 희망의 등대처럼 마을의 좌표가 된 듯하다. 마치 하나뿐인 가로등처럼 환했다. 덕분에 집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활기를 띠었다. 드문 빛 하나가 주는 선명함이 따뜻하게 와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