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아 Apr 19. 2020

네가 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버려진


'친구야, 아마 네가 그날 그렇게

그 역으로 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거기에 그렇게 서있었을 거야.'




어딘가에 반려동물을 버리고 떠나는 주인들이 많다. 그리고 이따금 그곳이 어디든 그 버려진 장소를 떠나지 못하는 버림받은 아이들을 보게 된다. 그들의 눈빛은 초점 없는 뚜렷한 초점으로 가득하다.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게 된 지 아주 오래되었다.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에, 집으로 가야 하는데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다. 나는 그날 그렇게 그곳에 혼자 남겨졌다. 누구도 사랑하는 동안 이런 운명이 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사랑이 나를 등지고 떠나는 순간마저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곧 알게 된다. 이제 혼자가 되었다는 것을. 이제 더 이상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남겨진 존재는 사실 그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다. 그 사랑은 나의 전부였고 나의 세상 자체였다. 그런데 그 세상이 점점 멀어지더니 사라지고 이제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서있는 곳은 더 이상 세상이 아니다. 나는 세상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 공간, 그 사랑과의 마지막 기억이 있는 공간과 시간 속에 영영 갇혀버렸다.


그들의 초점은 외부로 향하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은 스스로의 기억 속으로 끊임없이 향하고 있다. 그 버림받은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떻게 누군가에게 그토록 잔인한 짓을 할 수 있었는지 묻고 싶다.


"도대체 왜 그랬어요?"


그러나 그렇게 버려진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준 존재들이 있었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 올 수 있도록 마음을 주고 길을 보여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덕분에 버림받은 존재들은 갇힌 시간과 공간에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현실의 바람과 빛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친구야 아마 네가 그날 그렇게

그 역으로 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거기에 그렇게 서있었을 거야.

이 고마움을 지금 쓰지 않으면 좀처럼 다시 꺼내기 힘들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썼어.

정말 고마워.'

작가의 이전글 가벼운 봄꽃 산책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