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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식 Sep 03. 2018

20. 우리는 모두 속았다

놀이는 우리 뇌가 가장 좋아하는 학습 방식이다.  Play is our brain’s favorite way of learning. 

–– Diane Ackerman, Contemporary American author 


1990년대는 뇌의 시대였다. 예산 규모가 수십억에서 수백억 달러, 한화로 몇 조원에서 몇 십 조 원에 이르는 엄청난 프로젝트들이 뇌과학 연구와 관련되어 여러 나라에서 시작되었다. 연구가 진행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뇌란 무엇이며 어떤 작용을 어떤 방식으로 해내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만족할 만한 답은 쉽게 나올 기미가 없다. 어떤 활동을 하고 무슨 음식을 먹으면 뇌에 좋다는 가설들이 많이 나오긴 했지만, 과학은 ‘머리가 좋아지는 법’을 밝혀 내지 못했다. 뇌과학의 성과가 적지 않았지만 투입된 시간과 예산과 인원에 견주어보면 아쉬움이 많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의 뇌와 관련된 연구 성과가 기대한 만큼 빠르고 풍족하게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 아니다. 장사꾼들이 그나마의 연구 성과를 악의적으로 소통하고 이용했다는 점이 문제였다. 두뇌를 계발시켜준다는 무수한 게임이나 장난감은 애교로 봐줄만 했다. 뇌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물질인 DHEA를 함유한 여러 식품들이 오히려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게 밝혀지고 있다. 뉴런이 어쩌고 뇌발달과 학습이 어쩌고 하면서 과학을 홍보대사 삼아서 성인들이 아동들을 책상 앞에 붙잡아 놓도록 만든 학습지 관련 수험산업은 공해나 다름 없었다. 

뇌과학이 밝혀낸 바 ‘학습의 결정적 시기’라 하여 아동기의 일정 시기 시기에 뇌의 성장이 폭발하듯 이루어진다. 이 시기는 유아기부터 시작하여 꽤 늦춰 잡아도 초등학교 4~5학년 정도의 연령인 만 10세까지이다. 이후의 지적 성취가 이루어질 바탕과 토대를 쌓기 위한 최대한도의 학습이 일어날 수 있는 나이는 딱 그 정도이다. 인간의 학습능력을 스폰지에 비유하자면, 물론 맘에 드는 비유는 전혀 아니지만, 유년기부터 만 10살 정도까지는 초고성능 울트라 슈퍼 스폰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나이가 지나면서 스폰지로서의 성능이 조금씩 떨어진다고도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결론은 여러 나라의 여러 연구 기관에서 여러 차례의 다양한 연구와 조사 및 실험에 의해 거듭 입증되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나 유명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면접조사, 그리고 최근의 뇌과학이 밝혀낸 결과에는 차이가 없다.  

문제는 이 결론이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곡해되어 이용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나빠졌다. 특목고를 대비한다는 유치원이 일부 지역에서 성행한다는 뉴스가 있지만 일부가 아닌 대부분의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2~3학년 국어와 수학을 선행학습하고 영어에 더불어 중국어와 일본어 공부를 시킨다. 구조화된 자료를 획일적인 프로그램에 따라 아동에게 강요하는 것은 실로 쑥쑥 커가는 뇌에 독약을 조금씩 투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예를 들어 한국의 2학년 아동은 2학기 중 며칠 안에 구구단을 암기하도록 하는 교과과정에 맞추어 성장해야 한다.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여러 모로 당근과 채찍 즉, 협박과 회유가 따른다. 끝내 구구단을 외우지 못하면, ‘남들 다하는 걸 못하는 쳐지는 아이’라는 평가를 내면화해야한다. 이런 정신적 고문이 그저 학교 안에서 끝났던 시절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사교육이라고 흔히들 말하는 수험산업에 의해서 아동들의 방과후 일상이 조직되는 이 시대에 공부 못하는 아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를 놀이생태계 안에서 반전시키고 역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좀처럼 얻지 못한다. 그래서 이 시대의 아이들은 초등학교 시절의 성적이 이후의 성적을 결정한다. 학교 공부 이외의 활동에서 자존감이나 자신감을 충분히 지킬 수 있었던 시절에는, 그러니까 대략 90년대 중반만 해도, 초등학교 시절 학업에 뒤쳐질 수 밖에 없었던 머리가 늦게 트인 아동들이 중학교나 고등학교 심지어는 고3때 반짝해서 명문대에 갔던 사례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들은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들여 오히려 자녀의 행복과 잠재력을 깍아버리는 경쟁에 몰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주 쉽게 말하자면 ‘생각의 힘’이라고 표현할 수 있고, 조금 어렵게 말하면, ‘비구조화된 세계를 구조화하는 능력’이 유년기부터 초등학교 고학년 시기까지 최대한 발달한다. 그리고 이 시기의 아동들은 놀이를 원리 삼아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하고 생각을 조직화하는 법을 익혀나가기에 가장 놀라운 지적 성취를 이룬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놀이의 내적원리는 몰입이고 그 방식은 터득이 된다고 앞서 말했다. ‘놀이는 생각을 위한 도구의 도구’다. 2007년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생각의 탄생>에서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은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인식, 패턴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이라는 사고 패턴을 생각의 도구로 정의하였으며 그 중에 놀이야 말로 이 모든 생각의 도구를 잘 활용하기 위한 도구라고 결론지었다. 이 결론에 비추어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한 자각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놀이의 여러 차원을 고려하고 이용한 프로그램이 지금으로선 가장 시급한데 ‘생각의 도구’와 비슷한 ‘마음의 도구’ 프로그램이 특히나 성공적이라는 점과 더불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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