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중인 아이들은 그저 노는 게 아니다. 이들의 놀이는 가장 진지한 정신 활동으로 여겨 져야 한다. Children at play are not playing about. Their games should be seen as their most serious minded activity.
성인들이 과거를 돌이켜 어릴 적 놀았던 골목을 떠올릴 때 좋았던 기억들 위주로 회상하는 경우가 흔하다. 골목은 일종의 공동체였으며 그 곳에서 유소년기에 보내면서 남은 추억들은 일생 잊기 힘들다. 그러나 골목은 영화 <반칙왕>의 송영창이 웅변하듯 약육강식의 “쟝글”이라는 측면이 있었다. 물론 골목대장의 전횡은 보통 상식선을 넘지 않곤 했다. 골목대장이 구성원 간의 암묵적인 합의를 넘어서서 군림하면 오히려 따돌림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 놀이생태계는 폭군을 인정하지 않으며 약하고 어린 아이들도 얼마든지 존재하고 살아갈 방도가 있었던 쟝글이었다. ‘처절한 약육강식’의 세계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열대우림에서는 강자와 약자의 공존 법칙은 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쟝글이라고 말할 때 그 쟝글은 보통 고도화된 자본제 인간 사회에나 존재하는 승자독식 강자존의 어이없는 질서를 칭한다.
골목길의 꼬마들 사이에는 동물행동학에서 말하는 ‘페킹 오더’가 존재했다. 나이와 덩치와 놀이실력과 인망이라고 할 만한 여러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꼬마들의 위계를 결정했다. 이 위계는 특별한 사건이 없는 한 그 골목의 또래집단에 속하는 시기부터 골목을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가는 시기까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골목을 떠난 또래집단 안에서는 아버지의 경제력이나 학업성적, 이성에게 얻는 인기, 말빨, 성인사회의 작동원리나 성에 대한 사소한 지식 같은 새로운 요인들과 그리고 인망과 체격 같은 골목기의 요인들이 더욱 복잡하게 얽혀서 ‘페킹 오더’가 결정되었다.
놀이생태계 내에는 위계만으로 설명이 안 되는 ‘역할’이란 것이 있다. 각 아동은 나름의 역할을 맡게 되며 역할이 관계를 규정하기도 한다. 동일한 아동이 다른 놀이생태계에서 상이한 역할을 맡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어떤 놀이생태계에서 광대 또는 괴짜 역할을 맡은 아동이 다른 놀이생태계에서는 리더 역할을 맡기도 한다. 모델과 순응이라는 점에서 놀이생태계는 집단 내부에서 전수되거나 합의된 자율적·자발적 질서에 구성원이 순응하도록 작용하며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또래친구라는 내부 모델을 강요한다. 현대에 올수록 성인의 일방적 권력이 강요하는 집단 외부의 ‘엄마 친구 아들·딸’이라는 모델과 순응 압력은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이다. 이러한 순응압력은 긍정적인 강화를 이끌어 내기 어렵다.
어린이들의 놀이생태계는 인간 사회의 먼 원형의 모습을 어느 정도 간직한다. 리더가 존재하되 평등한 사회. 그러나 자아에 상처가 많은 아이들이 모이면 균형은 위태로워진다. 균형을 구하고 평화를 구하는 성향은 지위갈등을 억제한다. 반대로 집단내 지위에서 높은 페킹오더로 올라가려는 개개인의 욕구는 늘 전체적으로 균형과 평화에 연관된 타협의 기술에 의해 중재된다. 지위의 집단적 과시는 놀이생태계가 교란된 이후에 생겨난 현상이다. 또래집단 압력은 문화적 슈퍼에고로 기능한다. 이것이 좋다 나쁘다는 가치판단은 무의미하며 놀이생태계가 최적화되면 여러 모로 순기능을 되찾을 수 있다. 슈퍼에고는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 보는 일을 한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따르면 아버지가 그런 권능을 가지지만 가족을 넘어서는 영역에서 작동하는 문화적 슈퍼에고도 존재한다. 가정 내에서 부성적 원리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아동의 슈퍼에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것이 바람직한가 아닌가를 따지기 힘들다. 문제는 가정 내에서는 여성들이 부성적 원리을 담지하게 되고, 놀이생태계의 또래집단 내의 문화적 슈퍼에고의 작용이 사라진 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