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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티 Jul 21. 2020

시골 아파트에 사는 즐거움

지금 해빙(having)으로 살아가기


25살 젊디 젊었던 시절, '귀농학교'에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자란 어린 시절의 감성이 제 가슴에 녹아있었고, 스무 살 우연히 만난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이 제 머리를 맴돌았고, 첫 발령지 경기도 어느 도시의 회색 건물이 제 발걸음을 재촉했지요.


50여 명의 귀농학교 동기들 중 저는 두 번째로 어린 사람이었습니다. (저보다 어린 스무 살 초반의 여성분도 있었답니다!) 중년 이상의 나이 지긋하신 분들 앞에서 자기소개 겸 귀농학교에 온 목적에 대해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나이 들면 시골 가서 자연과 함께 살아야지 하잖아요.

시골 가서 생태적으로 사는 걸 행복이라고 여긴다면 저는 그 행복을 유예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지금부터 행복하고 싶어서 여기에 왔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저를 소개하자 부모님 연배의 동기분들이 손뼉을 치며 공감해 주셨어요.


이후 시골로 내려갔고 농사를 배웠고 생태교육을 했고 발도르프 학교에 갔고 아름다운 시골 언저리에서 두 아이 낳아 자연스럽게 키우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 행복하려고요.




"정말 쾌적하다. 집 진짜 좋다"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말입니다. 계속 듣고 있던 남편이 그렇게 좋냐고 묻습니다. "응 정말 좋아" 대답합니다.


오랫동안 주택에 살다가 최근에 숲세권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생애 처음 내 집 마련이었지요. 필로티 저층이라 아이들이 마음껏 뛸 수 있고 창밖으로는 열대우림 같은 숲이 펼쳐져 있으며, 윗집은 조용해서 사람이 살고 있나 할 정도입니다. 개울 옆 습기로 끈적끈적했던 주택에서 살다 오니 곰팡이 피지 않는 뽀송뽀송한 집이 진심으로 좋습니다. 애완 벌레였던 돈벌레도 여기 와선 한 마리 발견한 게 다입니다. 도저히 친해질 수 없었던 지네는 더 이상 출몰하지 않습니다.


좁은 부엌에서 어째 어째 살림 살았는데, 아파트의 넓은 싱크대는 음식 할 맛이 나게 합니다. 남편과 둘이 요리해도 널찍하니 부딪히지 않습니다. 빌트인으로 있었던 식기세척기를 사용하고 나서는 삼신 가전 중 하나라는 '식세기'를 뒤늦게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놀이터가 잘 되어 있는 곳이라 우리 아이들은 여기 이사 오고 한 달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거짓말 아님 주의) 밖에 나갑니다. 또래 친구 없이 단독 독채로 떨어져 있었던 주택에 비해 친구랑 놀기도 좋고 산책하기도 참 편합니다.


아파트 근처 초록 산책길


사실, 왜  아쉬운 게 없을까요? 귀농까지 감행했던 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는데 아무리 숲세권 아파트라도 내 마당 내 텃밭 있는 주택을 더 선호하겠지요. 맞벌이하며 아이들 키우기에 지금 아파트 환경이 더 좋기에, 또 땅을 사서 제 스타일의 집을 짓기 위한 징검다리의 시기이기에, 지금 상황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여보는 겁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주파수를 맞추고 재미있을 거리, 감사할 거리, 행복할 거리를 찾으면 분명히 찾게 되더라고요. 그게 행복의 한 가지 방법인 거 같아요.




7년 전, 거실 창으로 논이 펼쳐져 있던 '논 뷰' 넓은 아파트에서 살았던 기억이 문득 떠오릅니다.

첫째가 뱃속에 있을 때였는데 40평 가까운 아파트를 저렴한 전세금으로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감사함이 별로 없었습니다.

불안함과 불편함과 부끄러움이 가득했습니다.


지금이야 저금리의 서민 대상 대출은 잘 활용하면 된다는 경제공부로부터 주어진 탄탄한 마음이 있는데, 그때는 융자 있는 집에 대출 끼고 전세를 산다는 것이 스스로 용납이 안 되었습니다. 빚지고 사는 건 무조건 나쁜 거라는 사고 속에 갇혀있었지요. 모래 위에 지은 집 같았고 언제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어요.


방이 세 개나 되고 거실과 부엌은 이렇게 넓은데 남편과 나, 아기까지 세 식구만 산다는 것이 에너지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 혼자 부끄러웠습니다. 생태주의 패러다임 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임을 많이 열었습니다. 공유 거실의 개념이었지요. 첫째가 돌도 안 되었을 때였는데 한살림 모임, 동종요법 모임, 발도르프 모임 등등 저희 집을 많이 내놓았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소통하고 나누는 자리여서 좋긴 했는데, 공유함으로 에너지 절약에 일조하자는 강박적인 마음으로 지지도 않은 빚을 혼자 갚아나가며 내면 깊은 곳에서는 삐걱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생기더라고요. 2년을 계약해놓고, 1년 만에 어느 작은 집으로 옮겨버렸습니다.




지금 집도 대출이 많습니다. 온전한 내 집이 되기 위해선 몇 년을 열심히 모으며 갚아야 합니다. (소득 수준에 적합한 적정규모의 대출입니다^^) 이미 내 집이고 당당하게 누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쾌적하고 깨끗한 환경 속에서 사랑하는 아이들과 남편과 편리하게 살 수 있기에 감사합니다. 그래서 "쾌적하고 좋다'라는 추임새가 절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다들 양평 같은 청정지역에 와서 살고 싶어 하고, 한강이 보이는 집에 살고 싶어 하잖아요. 저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숲이 보이고, 10분만 걸으면 한강의 상류 남한강입니다. 어찌 됐건 지금 살고 있는 건 사실이잖아요.^^


7년 전 비슷한 조건의 아파트에 살면서 불편했던 마음과 지금의 이 충만한 느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이미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며 누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것!


최근에 읽은 책 '더 해빙(The having)'에서 말하는 마인드와 닿아있는 것 같아요. '좋다, 특별하다'라고 말하면 진짜 좋아지고 특별해지는 것처럼, 그냥 지금 여기서부터 행복하자는 마음으로 살아가 봅니다.


일단 기분부터 좋아지고, 이 긍정의 에너지가 저를 어디로 데리다 줄지 설레며 흘러가 봅니다.


계란후라이꽃(개망초)으로 긍정의 초록 기운 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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