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아이에게 해주는 말
워킹맘의 아침은 바쁘다. 몇 년 전까지 새벽기상 멤버십을 운영했던 이력이 있지만 최근의 나는 하루 8시간은 푹 자려고 한다. 스스로를 계발하고 남의 성장을 돕는 라이프 코치의 사명감으로 살았던 시즌을 잘 마무리하고 요즘은 '심플'을 최상의 화두로 잡고, 내 몸, 내 마음을 돌보고 더 나아가 우리 가정이라는 꽃밭을 성실히 가꾸는 것까지만 하려고 한다. '워킹'맘이다 보니 직장 생활하며 충분히 사회공헌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나의 직장은 느리게 자라는 아이들을 만나는 교실이다 보니 자동으로 사명감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서두가 길었다. 최대한 단순하게 삶을 세팅했지만, 그래도 워킹맘의 아침은 바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남편의 커피 내리는 소리로 시작하는 아침. 나도 슬그머니 일어나 그날의 아침밥상을 차린다. 메뉴는 간단하다. 빵과 토스트, 찐 옥수수, 낫또덮밥, 계란치즈간장밥, 떡과 우유 등. 제철 과일 하나쯤 깎아서 같이 놓는다. 간단한 메뉴지만 15분 정도는 걸린다. 밥상을 다 차리면 그 소리에 깨어난 아이들과 둘러앉아 아침식사를 한다. 어른들은 모닝커피 한 잔, 아이들은 그날의 메뉴를 맛있게 먹는다.
밥을 먹으며 짧은 대화시간을 가진다. 아침 날씨를 살펴보고 밤새 꾼 꿈 이야기도 하고, 오늘 챙겨야 할 준비물도 말하고 하루 동안 있을 일정들도 미리 나눈다. 맞벌이가정이다 보니 스스로 자신의 하교 후 스케줄을 알고 있어야 한다. 시골 작은 학교에는 스쿨버스가 있는데, 마지막 시간대인 2호차를 타고야 읍내까지 나와야 아이들의 운동 클럽을 갈 수 있다. 어느 날은 발레, 어느 날은 수영, 어느 날은 복싱. 두 아이가 하고 있는 운동 종목이다. 읍내에서 일마친 엄마와 만나서 차로 이동해야 하니 시간을 잘 지켜야 한다. 스쿨버스를 타야 하는 날이 있고 어느 날은 타지 않아도 된다.
"오늘은 피아노 선생님이 방문하시는 날이야. 첫째는 학교 방과 후 수업 마치고 4시에 바로 집에 와서 선생님 문 열어드려야 해. 둘째는 학교에서 놀다가 4시 50분까지는 집에 와야 그다음 레슨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이미 알고 있을 것 같지만 초등학생은 당일 이야기해두지 않으면 곧잘 잊어버린다. 모닝 브리핑 후 아이들의 확답을 듣고서야 식사자리는 마무리된다. 좀 더 빠르게 출발해야 하는 남편은 이미 출근을 했고, 나는 식탁을 치우고 출근준비를 한다. 아이들은 자기 먹은 그릇과 수저를 설거지하고 자신의 이부자리를 갠다. 일사천리, 역할이 딱딱 나누어진다. 맞벌이 가정 아이들은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한다. 바쁘다 바빠.
내가 먼저 씻었고, 아이들이 순서대로 씻는다. 내가 화장하는 동안 아이들은 옷 입고 가방 메고 텀블러에 물을 넣고 가방을 멘다. 작년 말에 학교 앞 작은 집으로 이사 왔기에 등교시간은 도보 1분? 2분? 천천히 가도 되련만 학교에 일찍 가는 것이 뿌듯한지 아이들은 집에서 일찍 나서는 편이다.
"엄마 다녀올게요"
급한 손길로 팩트를 두드리다 아이들의 소리를 들었다.
"그래 그래"
건성으로 이야기하다가... '아차차! 놓치지 말아야지!' 얼른 현관으로 달려갔다.
아침에 나서기 전에 아이들에게 꼭 해주는 말이 있기에...
"사랑해.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고 이따 만나자"
"그리고 너는 이미 있는 모습 그대로 충분해."
세상을 살아가며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그 안에는 '불안'이 도사리고 있었다. 뭔가 더 잘해야만, 뭔가 채워야만 불안이 사라지고 내 존재가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열심히 달려왔다. '열심' 자체는 나쁘진 않다. 하지만 열심의 목적이 내 안의 비어있는 부분을 채우기 위한 거라면 허증에 시달린다. 왜냐면 시작부터 자신을 부족한 존재로 설정했기 때문에. 차츰 마음이 무너지고 무리해서 달리던 몸마저 적색 경고등을 켜곤 했다.
'나는 이미 충분합니다'라고 말하면 어디선가 초록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일단 마음이 채워진다. 이미 충분하구나, 이미 충만하구나, 나는 그런 존재구나! 시작부터 든든했다. 새로운 경험들로 가득한 낯선 세상을 살아갈 용기가 생겨났다. 나이 들어 깨달은 마음의 법칙이었다. 학창 시절, 누군가 나에게 그런 말들을 해줬더라면 참 좋았겠다 싶었다. 그래서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이미 충분하니까 오늘 하루 그저 편안하게 세상 경험하고 오렴. 오늘도 충만하게 세상 구경하다가 만나자."
내 품에 폭 안긴 아이의 따뜻한 감촉을 느끼며 아침인사를 나눴다. 문득 저 말은 아이에게 해주는 말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구나 자각했다. 아이라는 사랑의 존재를 통해 내 안의 충만함이 꽃피어올랐다. 힘들어도 그 이상을 채워주는 육아의 기쁨을 느낀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