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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Mar 26. 2017

새벽잠을 설치게 만드는 게 있다는 건...


토요일 이렇게 일찍 일어난 적이 과연 있었던가. 이른 아침, 수학여행을 앞둔 고등학생처럼 설레었다. 일기예보에서는 비 얘기도 들렸다. 물안개의 흐릿함 속에 포스를 뿜어내는 피체를 상상했다.


인생에서 짬짜면은 없다.


아직 이른 새벽이었다. 더 이상 잠은 오지 않았다. 토요일, 이렇게 일찍 일찍 깬 적이 있었던가? 그렇지만 어디로 갈지 아직도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떠날지 말지,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후천성선택장애. 점심시간에 내가 뭘 먹어야 할지도 고르기 힘든지 꽤 오래되었다. 이 일로 정신과 진료가 필요하다고 생각지는 않았지만 사소한 선택마저도 피곤하게 느껴졌다. 그 선택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그게 비록 매일 먹는 점심 메뉴일지라도.


장비를 챙겼다. 토요일 새벽, 길이 붐비지 않아 좋았다. 운전을 하면서 여유롭게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렇게 가슴 설레게 길을 떠난 게 얼마만이지? 워런 버핏은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가슴 설레는 일을 하고 있느냐를 물었다. 내게 오늘은 최소한 그런 날이다.


삽교방조제에서 바라본 풍경


어느 한 곳을 선택해야만 했다. 바다로 갈까, 아니면 저수지로 갈까? 안갯속에 흐릿하게 보이는 서해대교를 떠올렸다. 서해바다로 길을 잡았다. 짬짜면처럼 이것저것 다 맛본다고 그 결과가 달라지지도 않는다. 음식 맛은 메뉴보다는 그날의 컨디션과 식당의 수준이 더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간척지 사이를 흐르는 수로에는 보트낚시꾼들, 대낚시 꾼들이 보인다.


물안개와 미세먼지는 같지 않다.


자동차가 저수지 옆을 지날 때마다 저수지 위의 좌대와 그곳에 드리워진 꾼들의 낚싯대가 눈에 들어왔다. 사실 낚시를 하기 전까진 주변에 낚시점이 얼마나 많은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낚시를 시작한 후 길을 갈 때마다 낚시점만 보였다. "세상에나! 이렇게나 낚시가게가 많았나!!" 놀라울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낚시를 그만둔 요즘도 저수지만 보면 좌대가 있는지, 어디에 낚시꾼들이 자리 잡을지 금방 파악이 되었다. 이렇게 빠르게 달리는 차 안에서도 그게 눈에 들어왔다. 내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꽃은 꽃이 아니고 있어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눈길을 주고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낚시가게는 특히나 더 그랬다.


썰물시간, 모래톱이 드러났다.


바람이 거의 없이 하늘은 잔잔했다. 드론을 날리기엔 나쁘지 않았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시계가 나빠 사진이 제대로 찍힐지 그게 걱정이었다. 드론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핸드폰으로 전해지는 풍경은 나쁘지 않았다. 잘 하면 좋은 작품을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도 들었다.


그렇지만 컴퓨터 모니터에서 다시 본 사진은 좌절스러웠다. 하이라이트와 다이나믹레인지가 무너진 게 히스토그램에 그대로 나타났다. 안개와는 달리 미세먼지에 가려진 풍경은 라이트룸에서 선명도를 높여도 나아지지 않았다. 부족한 광량 때문에 높은 ISO로 찍힌 사진은 노이즈가 자글자글했다. 노이즈를 죽이면 선명도가 무너지고, 선명도를 살리자면 노이즈 때문에 느낌이 죽었다.



아직은 부족한 드론카메라


새벽의 부푼 기대와는 달리 사진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직 드론카메라가 익숙지가 않아서일 게다. 아니면 드론카메라는 맑은 날만 잘 찍히는 정도의 수준인지도 모른다. 카메라 성능 때문에 DJI 팬텀 4 프로로 기변 했지만, 여전히 DSLR 수준에 도달하기엔 멀어 보였다.


사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카메라 자체보다는 미세먼지의 영향 때문으로 생각되었다. 미세먼지로 인한 뿌연공기는 물안개와는 많이 달랐다. 더군다나 높은 고도에서 사진을 찍는 드론카메라는 그 영향을 더 크게 받았다. 기대만큼 실망이 컸다. 같은 흐림이지만 전혀 다른 흐림이었다.


미세먼지에 가린 서해대교, 낭만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DSLR로 찍으면 좀 더 풍경을 살릴 수는 있다.


집으로 가는 길, 기어이 낚시터에 들렀다. 낚시를 마친 이른 아침, 자욱한 물안개의 추억 때문이었다. 이른 새벽에 바라보는 물안개와 낚시대가 너무 좋았다. 그 풍경을 담으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었다. 이미 해가 중천에 다가가고 있었다. 이동저수지를 둘러싼 길 군데군데 루어꾼들의 차가 주차된 게 보였다. 붕어꾼들을 철수시키기 위해 보트도 좌대 사이를 주지런히 오갔다. 한때 저 좌대 속에 나도 항상 머무르던 때가 떠올랐다. 내가 낚은 것은 뭐였고, 그들은 또 밤새 무엇을 낚았을까?


겨울 동안 움츠렸던 붕어들이 깨어나자 낚시꾼들도 깨어났다. 늦게 당도한 드론꾼에게 물안개는 보이지 않고, 나의 미래처럼 희뿌연 하늘만 기다리고있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은 기대할 수 없었다. 멋있는 사진을 찍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오늘의 기록에 만족해야만 한다. 어느 날 그 사진들을 이어 붙이면 아련한 추억의 활동사진이 될 것이다. "사진은 시간을 미분하는 장치"이고, 미분된 것은 적분될 수도 있다.


이동저수지의 좌대들


다시 뜨거운 인생을 꿈꾸며...


일요일 아침, 조조영화를 보러 가는 가족들을 태우고 영화관으로 가고 있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커피를 마셨다. 아내는 커피가 뜨거우니 조심하라고 했다. 그리곤 물었다.

 "벌써 커피가 식었어.?"

텀블러에 담긴 커피를 한모듬 들고 나서 이야기했다.

"아니. 커피는 뜨거워. 내 인생이 식었지."


게임기, 오디오, 낚시, 카메라, 이제 다시 드론에 열정을 쏟고 있는 남편을 보는 아내의 차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뭐 어떠랴. 아직 마음 쓸 곳이 남아 있는 게 어디인가. 서울대 황농문 교수는 <몰입>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함으로써 행복을 추구하지 말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좋아함으로써 행복을 추구하라"라고 말한다. 황교수의 말이 옳다고는 느껴지지만, 아직까지 가슴에 더 와닿는 것은 스티브 잡스의 말이다.



하늘에서 본 이동저수지의 아주 작은 일부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농업용 저수지 중 하나이다.


그는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이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후 지난 33년 동안 매일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 묻곧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을 할 것인가? 아니요!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제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왜냐구요?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죽음'에 직면하면 모두 떨어져 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 남기 때문입니다.


드론은 내게 다시금 새벽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최소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게 하는 뭔가가 있다는 것, 아직은 인생이 살만하다는 뜻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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