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가든과 키친가든을 위한 안내
도시에만 살다 보면 우리가 먹는 농산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모른다. 흙과 멀리 떨어지면서 농업에 대한 애정도 희미해졌다. 대부분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는 이런 경향이 더 강하다. 자연과 거리가 멀어지면서 정서나 건강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미세먼지 때문에 밖에 나가는 것도 두렵워 집안에 머물고 있을 때는 환기시키는 것도 꺼림칙하다. 그럴 땐 집안에서 채소를 키워보면 어떨까? 도시 텃밭을 이용하는 것도 좋겠지만, 집안에 텃밭을 옮겨 놓는 것도 좋다. 가끔씩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집안에서 상추와 치커리 등 여러 채소를 바로 수확해서 먹을 수도 있다.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은가. 내가 나만의 방법으로 키운 특제 채소를 함께 나눈다는 것, 상상만으로도 신나지 않을까.
그런데 이것만 아니다. 집안에 식물을 키우면 수분을 공급하여 실내공기를 건조하지 않게 한다. 집안에서 발생하는 여러 화학물질을 필터링하는 역할도 한다. 식물뿐만 아니라 재배상자의 토양과 유기물이 화학물질을 잡아두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흙을 북돋아 주는 경험은 어떨까. 아마 이렇게 묻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가능해?
가능하다. 기술은 우리가 꿈꾸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농업이라고 그러지 못할 이유가 뭘까. 이런 목적에 딱 맞는 '텃밭재배상자'가 있다.
텃밭재배상자, 농촌진흥청에서 만든 가정용 채소 재배장치이다. LED 광원이 붙어 있어서 베란다에 내다 놓아 햇볕을 쪼일 필요도 없고, 흙을 항상 촉촉하게 적셔주는 심지도 달려 있어서 물 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작물재배를 위한 많은 지식이 필요하지도 않다. 작물별로 적당한 토양과 퇴비, 종자까지 모두 쉽게 구할 수 있다. 진정 필요한 것은 여유로운 마음이다.
텃밭채소재배상자는 온라인마켓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재배에 필요한 배합토와 양분 역할을 하는 퇴비도 마찬가지이다. 그냥 적당히 버무려 부드럽게 섞어주면 된다. 베란다에서 태양광을 쪼이게 해도 좋겠지만, 그게 여의치 않을 때는 LED 광원이 부착된 재배상자를 이용하면 된다. LED 빛만으로도 채소는 충분히 잘 자란다. 좀 더 관심이 있다면 스마트하게 재배상자를 바꾸어 보는 것도 좋다. 엔씽(n.thing)과 같이 스마트팜 장치를 만드는 기업에서 나온센서와 앱을 이용해서 재배상자를 모니터링하는 것도 가능하다. 집안에서 스마트팜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 신나지 아니한가.
이런 장치는 집안에 두는 것도 좋겠지만, 학교나 유치원에 두는 것도 좋다. 학생들에게 우리가 먹는 식물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보는 것도 좋은 교육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의 정서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일일 게다. 도시에서 느끼는 농촌, 그게 비록 좀 차이가 있을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농장을 도시로 옮기는 것을 넘어서 식물을 적극적으로 우리 생활로 끌어들이면 어떨까? 채소 재배 장치는 물을 줄 필요가 없고, 태양광이 필요가 없다. 저렴한 비용으로 식물을 키우는 데 장소의 제약이 완전히 사라졌다. 어디에든 어떤 형태로든 설치될 수 있다는 말이다. 심지어는 지하 공간에도.
LED에서 나오는 은은한 빛은 조명장치로도 손색이 없다. 물생활(*수족관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다)을 하는 사람들은 수족관을 바라보면 모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한다. 식물을 키우는 것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실제로 많은 사례에서 식물을 키우는 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높여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텃밭재배상자, 꼭 삼겹살과 취미로 한정해서 그 역할을 제한할 필요는 없을 것 이다. 산업디자이너들이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재배상자는 어디에서든 놓일 수 있다. 서재에서 서가의 중심에 위치할 수도 있고, 가전제품 매장에서도 인테리어로 들어갈 TV와 함께 나란히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외국에서는 이미 부엌 인테리어에 재배상자가 쓰이고 있다. 이름하여 키친가든(kirchen garden).
영화 '레옹'에서 레옹은 거쳐를 옮길 때마다 항상 한 포기의 화분을 함께 옮긴다. 아니 이삿짐이라고는 화분밖에 없는 듯했다. 볕이 잘 드는 창가에 화분을 올려놓음으로써 새로운 집에 대한 신고식을 마친다. 레옹이나 마틸다에게 그 식물은 어찌 보면 "마지막 잎새"였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월-E'에서는 한 포기의 어린 식물이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식물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기억이 될 수 있다. 그 식물을 매개로 새로운 상상력을 펼쳐보는 것은 어떨까.
집안에서 식물을 키우다가 번번이 죽여버려서 포기한 사람들이라면 다시 한번 시도해보자. 이번에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게 단순한 취미로 끝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더 큰 상상력의 나래를 펼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