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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Apr 11. 2019

아인슈타인의 블랙홀

그는 블랙홀을 믿지 못했다.

2019년 4월 10일, 전 세계에서는 EHT(the Event Horizon Telescope )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에 흥분했습니다.  그 사진에는 최초라는 타이들이 붙습니다. 이 정도의 최초면 흥분할만합니다. 그러면서 한 위대한 과학자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입니다. 


과학자들이 처음으로 블랙홀의 사진을 찍었다.  Credit: EHT collaboration


이번에 찍은 사진은 지구에서 5500만 광년 거리에 있는 처녀자리(Sagittarius A*)에 속한 초거대질량 블랙홀 ‘M87’입니다. 실제 사진이 촬영된 것은 2017년이었지만, 이번에 관련된 6편의 논문이 발표되면서 함께 공개된 것입니다.  


천문학자들은 가끔 이런 이벤트를 연출하는 걸 즐겨하는 것 같습니다. 외진 곳에서 수십 년 동안 별만 쳐다보던 사람들이 세상과 만나는 데 이 정도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것쯤이야 이해할만합니다. 



우리는 블랙홀을 본 것일까?


수많은 기사에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 최초로 사진으로 증명됐다고 소개합니다. 사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은 이미 여러 번 증명됐습니다. 이번에는 사진이라는 게 다른 점이죠. 그런데 어떻게 사진을 찍는 게 가능했을까요?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인데 말입니다.


사진은 밝은 피사체를 찍는 도구입니다. 암흑을 찍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생각합니다. "만약 블랙홀이 밝게 빛나는 가스로 이뤄진 원반 형태의 지역에 잠겨 있다면, 블랙홀이 그림자와 같은 어두운 지역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입니다(1). 


사건 지평선에서 가스층이 만들어 내는 빛이 블랙홀의 강한 중력에 의해 휘어져 어두운 그림자가 만들어질 것이고, 그 그림자를 통해 M87 블랙홀의 존재를 증명하고 따라서 질량도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세계 8개의 천문대가 함께 참가해 특정 파장의 전파를 관측하고 그걸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이미지로 만들어 냅니다. 그게 우리가 보고 있는 최초의 블랙홀 사진입니다.


그럼 그 그림자가 블랙홀일까요? 


그건 또 아닙니다. 블랙홀은 특이점(singularity)이라는 한 점으로 수렴하기 때문이죠. 그럼 이번에 찍은 사진은 뭘까요?


처녀자리에서 가스가 압축되어 플라스마 형태로 밝게 빛나는 부분을 전파망원경으로 찍었고, 블랙홀이라 불리는 부분은 밝게 빛나는 가스성운의 그림자입니다. 우리는 블랙홀을 본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블랙홀을 볼 수는 없습니다. 단지 일반상대성 이론이 설명하는 것처럼 빛조차 휘어져 어둡게 보이는 지역을 본 것뿐이죠. 태양의 65억 배에 달하는 질량(M87)이 만들어 내는 어마어마한 중력의 위력을 본 것입니다. 


빛은 드러내지 않지만 중력은 존재하는 특이한 천체를 한 장의 사진으로 증명했습니다. 사건 지평선 너머는 우리에게 여전히 암흑으로 남아 있습니다.


OUR EYES ARE NOT DESIGNED TO SEE, BUT TO PERCEIVE(2)



아인슈타인은 블랙홀을 예견했을까?


그럼 아인슈타인은 블랙홀을 예상했을까요? 이 부분은 좀 애매합니다. 1915년에 발표한 일반상대성 이론으로부터 블랙홀의 존재를 유추할 수 있지만, 이 위대한 과학자는 실제 우주에서 블랙홀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지는 않았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블랙홀 개념을 수학이 만들어낸 가공의 산물(artifact)로 생각했습니다.


1920년대 프랑스의 물리학자들과의 서신 교환에서 무언가가 영원히 붕괴하여 무한한 밀도를 가지게 되고, 심지어 빛마저도 갇혀버린다는 개념을 아인슈타인은 터무니없다 일축합니다. 


사실 블랙홀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에 등장합니다. 일반상대성 이론이 증명될 때마다 아인슈타인이 호출되는 데 정작 본인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저도 궁금하긴 합니다.


어쨌든 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을 호출하길 좋아합니다. 그를 호출하면 그와 같은 반열에 올라설 수 있다는 마음 때문이라 생각하실진 모르지만, 그 보단 대중의 주목을 끌고 예산을 확보하기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게 제 추측입니다.



아인슈타인 가라사대....


사실 아인슈타인은 어지간한 과학이벤트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수많은 명언에도 등장하기도 합니다. 사실은 대부분은 그가 한 말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아인슈타인 가라사대로 "....." 시작되는 말들은 모두가 경청해야만 하는 격언이 됩니다. 그런데 그 수가 너무 많아서 어떤 상황에서도 아인슈타인을 호출할 수 있습니다. 일반상대성 이론처럼 말입니다. 


아인슈타인의 명언을 소개하는 이미지(예시)


앞으로도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이름을 자주 볼 것입니다. 사실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게 뭐가 있을까요!! 따지고 보면 그의 생각이 그리 중요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고 싶은 걸 볼뿐이겠죠. 이건 예전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겁니다.


어쨌든 블랙홀을 찍은 ETH 팀에게 진심어린 축하를 보냅니다. Good job!!


(1) 블랙홀, 찾았다!...“아인슈타인 이론, 사진으로 첫 증명”

(2) Seeing is Believing, or Do We See What We Believe?

* 표제사진은 https://www.extremetech.com/extreme/289101-we-might-see-the-first-ever-photo-of-a-black-hole-this-week 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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