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규모의 막걸리 양조장 방문기
막걸리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립니다. 술꾼들에게 이보다 더 환상적인 곳은 없겠죠. 가평군 조종면에 있는 <우리술>의 가평잣막걸리 제조공정을 둘러보았습니다. LA에 막걸리 양조장을 세우려는 친구들에게 설명하기 위해서였죠.
막걸리 양조장이야 한두 번 가본 것도 아니니 뭐 새로울 게 있겠습니까만, 이게 자만심이었다는 걸 알고는 바로 겸손해졌습니다. 그냥 좀 큰 양조장을 생각했는 데 그게 아니더군요.
인상적이었던 것은 쌀누룩을 직접 제조하는 공정이었습니다. 엄청난 양의 쌀을 증자하고 누룩균을 접종하고, 제성 하는 공정이 아래 보이는 원통처럼 생긴 기계를 이용해서 배치 공정으로 하더군요. 쌀누룩을 아직 대외판매는 하지 않는다니, 좀 아쉽게 생각되었습니다.
막걸리 공장이라는 게 밥을 찌고, 옮겨 담고, 누룩과 효모를 섞어주고, 온도를 맞추어주고, 어느 정도 발효되면 한 번 더 고두밥을 투입하고, 주기적으로 저어주는 게 공정의 대부분입니다. 필요에 따라 가열 살균공정이 추가되고, 완성된 술은 거름장치를 거쳐서 적정한 탁도와 점도를 가지게 조절합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효율적으로 자동화시키고 최대한 인력의 투입을 적게 하느냐가 관건이겠죠.
그렇지만 아직도 상당수의 공정은 사람의 힘으로 진행됩니다. 상당한 삽질을 수반합니다. 막걸리 공장을 가면 천정에 커다란 배기구가 있습니다. 밖에서 보면 저게 양조장이구나는 걸 바로 알 수 있는 시설입니다. 저는 그게 왜 필요한가 싶었는데 그게 전부 쌀을 찌고 식히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증기를 빼는 장치였더군요. 물론 짐작이야 하지만 냉각 트레이와 세트로 맞추어져 있는 걸 보니 바로 이해가 됐다는 말씀입니다.
막걸리 공정에서 중요한 품질관리 인자는 발효조의 온도/발효 속도, 이단담금할 때 투입되는 양, 누룩의 종류, 거름장치에서 어느 정도의 탁도와 점도를 가지게 만들 것인지 등이겠죠. 이게 잘 조절되면 원하는 도수의 술이 만들어집니다. 당연히 잡균을 잘 제어해야 향긋한 막걸리 특유의 산미도 만들어 낼 수 있겠죠.
이걸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중간중간에 품질분석이 필요합니다. 공장 옆에는 실험실이 따라 있기 마련이죠. 작은 양조장들은 이걸 대부분은 장인들의 경험으로 합니다. 계절에 따라 막걸리 맛이 조금씩 변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공정에서는 이러면 큰 일 나겠죠.
그렇다고 제가 막걸리를 만들어 본 적은 없습니다. 공부해본 적도 없고요. 아는 것도 없으면서 말은 많죠. 모든 게 이론이죠. 발효공정이라는 게 대부분은 비슷합니다. 발효 공정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그게 막걸리이던 맥주이던 크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몇 주 실습하면서 배우면 집에서도 자신만의 막걸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진짜 실력은 이런 외형적인 게 아니라 자신만의 맛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 인가, 또 자신의 맛을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같이 느끼게 만들 것인가입니다. 결국 이건 스토리텔링의 영역입니다. 송명섭 명인의 막걸리는 기존의 막걸리가 감미료를 넣어서 식용감을 좋게 하는 데 반해 드라이하게 만들어서 마니아 층을 만들었고, 지평막걸리는 오히려 적절한 감미와 탄산미를 추가해서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맛을 만들어서 성공을 했죠.
그럼 맛은 어떨까요? 막걸리 마셔보신 분들은 이 정도 설명이면 어떤 맛이겠거니 상상할 수 있습니다. 깔끔하고 상큼합니다. 제가 마셔본 막걸리 중 (같은 도수 그룹에서는) 최고 수준의 맛입니다. (제 입맛에 그랬다는 말이니....) 공장을 둘러보기 전에 한잔을 먼저 했는데, 제가 상상한 그 이상이었습니다. 사실 전 막걸리에 뭘 섞은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쌀 그 자체의 맛이 느껴지는 게 좋습니다. 잣 막걸리라 해서 어떤 맛이 느껴지지 않을까 했습니다만, 그게 이런 훌륭한 막걸리를 약간 더 고소하게 시즈닝 하는 정도였습니다. 탁도는 낮아 깔끔하고, 약간의 산미와 감미, 특유의 향이 느껴졌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막걸리 한잔이면 그런 기분 좋은 여행도 없죠. 제가 술 관련 일에 관심을 가진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고, 또 즐겁게 살았죠. 뭐든 아는 만큼 느낄 수 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