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배양이 뭐예요?
한 기사에서 "약배양(葯培養, anther culture)"이란 용어가 등장했다. 통일벼를 활용한 새로운 품종이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 품종 등록이 됐다는 정책브리핑 기사였다(6).
" 농촌진흥청은 현지에 적응할 수 있는 다수성 벼 1,100 계통을 선발한 뒤 아프리카 19개 나라에 알맞은 품종을 연구했다. 약배양 기술을 이용해 10년 이상 걸리던 새 품종 개발 기간을 5년까지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었다."
친절하게 "약배양(葯培養, anther culture)란 식물체의 화분이 들어 있는 약을 재료로 배양하는 것으로, 약배양의 목적은 반수체나 반수체배를 생산하여 육종연한을 단축시키거나 유용한 열성 유전자를 지닌 식물체의 획득에 데 있음"이라고 주석이 붙어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농업을 전공한 필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단 정상적으로 벼(rice)는 어떻게 수정하는 지를 알아야 하고, 그다음에 약배양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정리해봤다.
그럼 먼저 약(꽃밥, anther)이 무엇인지 한번 알아보자. 벼는 다른 꽃과 마찬가지로 암술(pistill)이 있고, 꽃가루가 있는 수술이 있다. 이 꽃실이라 불리는 수술대(filament)의 끝에는 꽃가루가 들어있는 꽃밥(anther)이 있다. 벼의 개화, 즉 꽃이 피는 것은 암술을 감싸고 있는 인피(lodicule)가 부풀어 오르면서 바깥 껍질(glume)을 밀어내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때 꽃밥이 껍질 밖으로 삐져나온다.
이 꽃가루가 떨어지거나 바람에 날려서 암술머리에 붙어서 수분(polination)이 이루어진다. 벼는 특이하게도 바깥껍질이 열리기 직전에 꽃밥이 터져 꽃가루가 자기 암술머리에 쏟아져 수분이 된다. 이를 자가수분이라 한다. 자가수분 중에서도 하나의 꽃 안에서 수정이 일어나는 것을 ‘자화수분(Self Pollination)’이라고 한다. 벼는 이과정이 2시간 정도에서 모두 완료된다. 자세한 이야기는 전문가의 글을 참고하자(1). 역시 쉽지는 않다.
그럼 약배양에서 언급한 약(葯)은 무엇일까? 그냥 꽃밥의 다른 말, 즉, 꽃가루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쓰는 용어들이 많이 어려운 게 많은 데 많은 단어들이 한자 또는 일본어(한자)에서 온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영어 단어를 병기하는 게 더 이해가 쉽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anther라는 단어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자~ 그럼, 약(葯)이 꽃가루라는 것은 이해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꽃가루는 반수체 유전자(n)를 가지고 있다. 이게 반수체(haploid) 유전자(n)를 가진 암술과 결합하면서 2배체인 수정란(2n)이 된다. 벼의 경우는 자가수분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암술이나 수술의 유전자가 동일하다.
그런데 벼를 육종 하기 위해서는 교배육종이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서로 다른 품종의 벼에서 꽃가루를 가져와서 암술에 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작업을 하다 보면 서로 꽃가루가 교차로 수정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품종이 선발되더라도 동일한 품종으로 순수하게 분리될 때까지 세대 배양을 반복하게 된다. 이과정을 품종을 고정한다라고 말한다. 즉, 벼 품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교배를 통해서 새로운 품종을 선발하고 이를 6~8세대 동안 재배를 반복하여 품종을 고정함으써 완성된다. 이 과정이 대체로 10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여러 노력들이 행해졌다.
한 가지 방법은 1년에 여러 번 재배해서 품종고정 기간을 단축하는 좀 직접적인 접근법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후에서는 한 번밖에 재배할 수 없다. 획기적인 방법? 그냥 여러 번 재배할 수 있는 나라로 보내서 한번 더 재배하는 것이다. 통일벼는 필리핀에서 재배하면서 이 기간을 단축했다. 요즘도 이런 식으로 연구기간을 단축하기도 하지만, 좀 더 획기적인 방법이 도입되기도 한다.
그게 바로 약배양(葯培養, anther culture), 즉 꽃가루배양 방법이다. 이 약배양법을 사용할 경우 순수분리, 즉 품종고정에 6-8년이 걸리던 기간을 1-2년 만에 완료할 수 있다. 서로 다른 품종을 교배시켜 새로운 품종, 즉 F1을 만들고, 이를 약배양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을 도입할 경우 10년까지 걸리던 품종개발 기간이 4-5년까지 줄어든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약배양 기술이 도입되었고,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화성벼"라는 품종은 이 약배양법을 사용하여 4년 만에 개발되어 최단기간 벼 품종개발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3).
약배양은 꽃가루만을 사용하여 2배체의 완전한 종자를 만드는 기술이다. 자세한 기술적인 사항은 참고문헌 3,4를 참고하기 바란다. 과학자들은 글을 어렵게 쓰는 경향이 있는데, 그냥 약간 이른 시기에 꽃가루(haploid)를 채취해서 배지에서 놓고 온도나 약품을 처리하여 2배체의 완전한 식물로 만든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과학기술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최근에는 벼 씨앗을 사용해서 새로운 벼 품종의 복제가 가능하게 됐다는 연구논문도 발표되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특정 유전자를 제거하여 감수분열 없이 종자 생산이 가능하다는 연구였다. 네이처지에 발표가 될 만큼 획기적인 기술로 평가된다(5). 이 기사 역시 제대로 이해하고 섰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래저래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는게 만만치 않다.
그럼 위의 정책브리핑 기사를 보면 어느 정도의 느낌이 들까? 우리나라 품종을 아프리카에서 새롭게 리뉴얼하고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듯 하다. 그간 집적된 기술을 활용하여 실력 발휘 좀 하고 있다고나 할까. 아프리카에서 늘어나는 쌀 수요를 충족하는 데 우리의 기술이 잘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은 아래에 정리하였습니다. 링크를 따라가면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
(1) 벼의 수분에 대하여. 농촌진흥청
(2) Blossoms of rice, they bloom tranquilly in midsummer.
(3) 꽃가루 배양기술을 이용한 육종연한 단축(약배양기술). 농촌진흥청
(4) 배추 - 육종-약배양 기술. 농촌진흥청
(5) 꽃가루 만으로 벼 '복제' 가능해진다...우수 품종 보존하고 수확량 증가할까. 중앙일보(2018.12.13)
(6) 통일벼 활용 새 품종, 아프리카에 첫 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