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낳으면 아버지는 뒤뜰에 오동나무를 심었다."
이런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어봤을 겁니다. 오동나무가 자라면 시집가는 딸에게 작은 궤짝이라도 하나 맞추어 주기 위해서였다죠. 오동나무 장롱을 본 적이 없는 저는 그 말이 잘 실감 나지 않았습니다. 그 나무를 들어보기 전까진 말이죠. 묵직한 손맛을 기대하면 든 나무 조각이 마치 깃털처럼 가볍습니다. 그런데 재질은 비교적 단단합니다. 또 수분을 잘 먹지도 않죠. 가구 소재로는 최고로 쳐주는 이유입니다.
전혀 의도치 않게 나무 이야길 올렸지만, 제가 나무에 대해 아는 건 1도 없습니다. 단지 좋아할 뿐이죠. 그리고 오늘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그 나무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떻게 사는 게 좋은 걸가, 라는 좀 답이 없는 질문입니다. 살면서 가끔은 던져봐야 하는 질문이기도 하고요.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고요.
우연히 선배의 공방에 들렀습니다. 시에서 운영하는 생태체험관에 자리를 잡고 있는 환상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제게 그렇게 보였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나무로 예술 작품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 자체가 없는 듯했습니다.
"이거 혹시 팔아요?"
이런 속물 같은 질문에,
"팔지는 않고 사람들하고 같이 만들어".
아니 팔지도 않을 나무를 왜 깎을까! 이런 의문이 지나갑니다. 그래도 여러 공간에 전시되어 있다는 자랑까지 마다하지는 않습니다. 톱밥 가루가 묻은 작업복 위로 뿌듯해하는 표정이 비칩니다.
교육생들이 만들었을 법한 수많은 조각들이 선반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주부들 교육에는 도마가 인기이고, 현실적이고 실용적이죠. 애들은 새나 동물을 만드는 걸 좋아합니다. 토요일에도 선배는 교육생을 위한 목재를 깎고 있었습니다. 제가 가서 그 흐름을 좀 끊었죠. 제가 어느 정도의 민폐는 예의(?)라 생각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사실 뭐가 옳은지는 저도 잘 모르겠고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개구리나 새 한두 마리만 깎아도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가겠구나!" 다른 잡념 없이 충분히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낚시터에서 찌불 하나만 바라보면서 밤을 새울 때 경험했던 그 평온함이 느껴질 것 같았습니다.
누구나 가끔은 이런 삶을 꿈꿉니다. 취미를 업으로 하는 것 말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나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죠. 붙잡고 있는 걸 놓아야 하는데..... 뭘 붙잡고 있는지도 모르는 게 그냥 우리네 삶이기도 합니다. 그냥 부러움만 안고 또 돌아왔습니다. 주말 동안 해야 할 일들이 제 뒷목을 붙잡았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