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jtbc의 싱어게인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화제이다. 항상 그렇지만 새로운 천재들의 경연을 보는 건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누가 이번 라운드를 통과할지를 예측하면서 나의 시각이 화려한 경력의 심사위원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 우쭐해한다.
63호는 우승을 할까? 30호의 파격도 식상해지는 날이 오겠지? 29호가 뿜어내는 진정성은 록의 불모지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비록 떨어졌지만 마음속의 수많은 우승자들. 저런 실력자들 마저도 노래를 부를 곳을 찾지 못한다는 게 한편으로는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이런 경연 프로그램이 롱런하기는 어렵다. 인재풀(pool)이 무한정 있기도 어렵거니와 시즌이 반복될수록 신선도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어제 한 스타트업 대표와 긴 이야길 나누었다. 이야기가 끝날 때쯤 이런 질문을 했다. "요즘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입니까?"라고. 여러 창업자들을 만났지만 그 대답은 대개 비슷하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는 게 가장 시급합니다.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창업자들은 인재난을 한탄한다. 창업자들이 구하는 인재는 도대체 어디 있는 것일까? 정말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도 필요할까. 그런데 이런 모순은 스타업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시대를 거슬러 이어져 온 난제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디 인재가 가요계에서만 숨어 있다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등장한다고 할 근거는 없으니.
世有伯樂, 然後有千里馬(세유백락, 연후유천리마). 세상에 백락이 있은 연후에야 천리마가 있다.
당나라의 시인 한유는 세상에 인재가 없는 게 아니라 인재를 보는 눈이 없다고 일갈했다. 한탄은 세상을 향할게 아니라 자신을 향해야 한다고.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기 전부터 29호는 십 수년 동안 노래를 불렀다. 30호는 대학가요제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59호는 걸그룹 시절부터 실력과 매력이 차고 넘쳤다.
오늘날 가수 이문세를 있게 한건 이영훈이라는 작곡가였다. 이문세는 무명이었던 이영훈에게 기회를 주었고, 그 결합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천리를 달릴 수 있는 말도 알아주는 이가 없으면 수레나 끌 수밖에 없다. 이건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시인 한유가 살던 시대에도 천리마는 많았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딱히 이런 우아한 스토리가 통하진 않는다. 기업마다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은 치열하고 천리마들은 범부의 수레를 끄는 것에 딱히 불만도 없다. 천리를 달릴 수 있어도 굳이 천리를 달리려 하지 않는다. 동기를 불어 넣을 수 있는 리더십도 필요하다. 예로부터 천리마는 먹는 양도 큰 법이다.
스타트업 붐과 풍성한 지원제도는 모든 천리마들을 창업자로 만들었는지, 리더십과 열정은 넘쳐나지만 모험이 충만한 팔로우십은 메말라 가는 논의 미꾸라지 마냥 희귀해져만 가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줄 수 있어야 천리마를 구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정도의 파격을 택할 여력이 있으면 이미 스타트업 단계는 넘어서야 가능하다는 것이 이 인재난의 딜레마이다.
그러니 백락이나 천리마를 들먹인들 뻘소리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자신의 무능을 드러내는 것일 뿐!오디션 프로그램을 열 수 있기 전까지는 구하고 또 구하는 수밖에. 그러다 이런 생각에 미친다. 나의 비루함은 백락이 사라져 버린 세상 탓일까! 범부의 마차도 끌기 힘든 나의 무능함이 문제일까! 따지고 보면 천리마가 마차를 잘 끌긴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 오늘도 백락을 기다린다.
* 여기에서 언급된 시는 당송팔대가 중에 한 사람이었다는 당나라 시인 한유의 잡설에 있는 '세유백락연후유천리마(世有伯樂然後有千里馬)'란 시구 중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