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코타운 May 24. 2022

필리핀의 쌀 산업은 정말 무너졌을까?


필리핀은 세계 최대 쌀 수입국입니다. 1970년대 짧은 기간 동안 국내 쌀 수요를 넘어설 만큼 쌀 생산이 늘어났지만 1980년대 초 쌀 생산량이 잠시 급감한 이후부터 쌀 수입국으로 전락했습니다. 그 이후 계속 쌀을 수입했습니다. 1980년대 초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관심이 많았지만 그에 관한 자료는 찾지를 못했습니다. 아마도 기상재해가 크게 작용했겠죠.



농업의 실패 사례, 필리핀


농업계 선배들은 필리핀이 쌀 산업을 등한시하면서 붕괴했다고 말합니다. 언론 기사에도 종종 인용됩니다. 우리나라에서 필리핀은 쌀 산업을 지켜야 하는 논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건 얼마나 사실에 부합할까요?


아마도 여기에는 1970년대 말 쌀이 남아돌자 쌀 기반시설에 대한 투자를 줄였고, 그래서 쌀농사가 급격하게 붕괴했다는 시나리오가 가능하겠죠. 그렇지만 그에 대한 자료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가끔 급격한 쌀 생산 감소가 발생했던 시기가 있습니다. 1971-1973, 1981-1983, 1997-1998년입니다(그래프를 보고 추정이라 연도는 약간 차이 있음). 그렇지만 쌀 생산량은 꾸준히 늘었습니다.

필리핀의 쌀 생산량 및 소비량 변화, 1961-2013(단위: 천 톤)(1)


필리핀의 쌀 수입이 늘어난 것도 결국 인구 증가가 가장 큰 원인으로 추정됩니다. 1960년대 2600만이던 인구가 2020년에는 1억 1천만 명으로 늘었습니다. 쌀 수요도 늘었지만, 당연히 쌀 생산량도 꾸준히 늘었습니다. 최근의 평균 연간 쌀 생산량은 1,860만 톤으로 우리나라의 5배가 넘습니다. 인구는 우리나라 대비 2배가 좀 더 되니 굉장히 많은 것이죠. 그리고 생산성도 나쁘지 않습니다. 헥타르당 4톤 정도로 동남아 국가들 중에는 베트남(5.7톤/ha) 다음입니다. 관개 비율은 60% 정도입니다(베트남 90%). 이 수치를 보면 필리핀이 농업 투자에 적극적이었다고 말하긴 어렵겠죠(3).


가끔 급격한 쌀 생산량 감소가 있기는 했지만 필리핀의 쌀 생산량은 꾸준히 늘었습니다. 국민 1인당 쌀 생산량은 우리나라의 1.6배입니다. 필리핀의 쌀 산업이 무너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필리핀이 쌀을 수입해야만 하는 이유는 첫째는 인구증가, 둘째는 우리나라처럼 육류나 수입 밀의 소비량이 적기 때문이겠죠. 이건 국민소득의 문제로 보는 게 더 타당할 것입니다.



필리핀, 쌀을 관세화 하다.


필리핀은 쌀 가격 안정을 위해 쌀 수입 권한을 정부기관인 국립식품협회(NFA)에만 줍니다. 제한된 양만을 수입하도록 했습니다. 당연히 필리핀의 쌀 가격은 국제 시세보다는 높게 형성됩니다. 이렇게 수십 년 동안 계속되어 왔었죠. 그런데 최근 필리핀의 쌀 산업 정책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쌀을 관세화했습니다.


링크한 기사는 2019년 2월 필리핀의 쌀 관세화 법(RTL)이 통과된 후 필리핀 농업과 국민 생활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시아재단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니 이 기사의 시각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대개 무슨 논쟁이 있었을지는 추론할 수 있습니다.


필리핀 국민들은 대개 12~25%의 수입을 곡물을 구매하는 데 사용합니다. 엄청난 지출로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은 쌀값으로 지출되는 돈이겠죠. 그렇다 보니 가난한 사람들에게 쌀값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논리가 부딪힙니다. 하나는 국내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쌀 수입을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 다른 하나는 쌀 수입량을 늘려서 국민들의 생활비 부담을 낮추어야 한다는 주장이었죠.


쌀 가격 통제 시스템을 자유화하고 경쟁을 도입한다는 건 엄청난 도전일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엄청난 반대가 있었겠죠. 두테르트 대통령은 관세화와 쌀 시장 가격 자유화를 도입합니다. 국립식품협회(NFA)에서 독점하던 쌀 수입을 35% 관세로 대체해버린 것이죠. 당연히 쌀 수입량이 늘어나면서 수입 쌀 가격은 낮아지고, 국내 농가에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걸 보완하기 위해 쌀 경쟁력 강화 기금(RCEF)을 만들었습니다. 쌀 관세로부터 충당이 되었는데, 연간 PHP 100억 페소(2400억 원)가 배정됩니다. 기계화, 종자, 신용지원, 기술교육, 기술개발 등에 지원됩니다. 필리핀 농부들은 잘 대응하고 있을까요?



농업정책변화, 그 이후


이 정책이 단기적인 부작용은 있었지만 수백만 명의 필리핀 사람들이 더 낮은 값에 쌀을 살 수 있도록 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었고, 필리핀 쌀 생산업은 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도약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수십 년 간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생산성 향상, 농장 수확량 증가, 비용 절감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죠. 


필리핀의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현재까지는 그리 비관적이지는 않습니다. RTL이 통과된 후 필리핀은 세계 최대 쌀 수입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필리핀 국내의 쌀 가격을 낮출 수 있었습니다. 자국내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데도 효과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농촌, 농가의 소득이겠죠. 결국 생산성을 높여서 베트남 쌀과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단기적인 타격을 받겠지만 곧 회복할 것이다라는 기대는 현재까지는 어느 정도 맞아 들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필리핀을 농업에 대한 투자를 등한시해서 실패한 케이스로 알고 있습니다. 2008년 글로벌 식량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쌀을 수입한다고 큰 난리를 치루기도 했습니다. 정권이 존망의 위기로까지 몰렸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 필리핀이 주식 산업에 자유시장 경쟁을 도입해 성공한 사례로 발돋움 할 수 있을까요? 아무튼 계속 지켜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농업을 등한시해서 쌀 수입국으로 전락했다고 단순화하기에는 어렵지 않을까요? 우리는 필리핀보다 얼마나 더 잘 하고 있을까요?


그밖에 고려할 사항


필리핀의 농업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Masagana 99 프로그램부터 들여다 봐야합니다. 1970년대 우리나라의 녹색혁명과 비슷한 쌀 증산 정책입니다. 그외 필리핀의 농업은 다른 개도국과 마찬가지로 지주와 소농의 문제도 겹쳐있고, 여기에 농업금융의 실패, 정치 부패 등 복잡한 사회문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식 들이닥치는 자연재해도 역할을 합니다. 기상재해와 경제위기에 회복탄력성이 떨어지는 것도 한 원인이겠죠. 장기적으로는 관개시설과 경지정리, 기계화, 기상재해에  대비한 보험제도 등에 얼마나 돈을 쓰냐가 관건으로 생각됩니다.



참고문헌


1) Why did the Philippine Government fail to Meet Domestic Consumption Needs?

2) Fighting the Good Fight: The Case of the Philippine Rice Sector

3) Philippines - Rice production in the five Southeast Asian countries, Vietnam, Thailand, Myanmar, Philippines, and Cambodia

4) Rice and Philippine Politics

5) Masagana 9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