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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Mar 17. 2021

세계 다운증후군의 날 3월 21일을 기억해 주세요

에세이레터<조각보> 34호 중.


(오늘은 특별히 <조각보> 34호에 실린 제 글을 그대로 옮깁니다. 그만큼 많은 분들이 보아주셨으면 해서입니다.)



                                                                                                                                글_울림

                                                                          사진,영상_Wouldn’t Change A Thing Youtube




매년 3월 21일을 앞두고 신박한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옵니다. 널리 알려진 팝송에 맞춰 다운증후군을 가진 사람과 그 가족들이 수어와 립싱크로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고 개성을 맘껏 드러내는 영상이에요. 처음 시작은 2018년 3월에 인터넷에 퍼진 ‘50명의 엄마, 50명의 아이, 1개의 과잉 염색체(50 Mums, 50 Kids, 1 Extra Chromosome)’라는 제목의 영상이었어요. 영화 <트와일라잇> 수록곡인 ‘A Thousand Years(천 년)’에 맞춰 닮은 듯 다른 엄마와 아이들이 각자의 차에서 카메라를 향해 손과 입으로 노랫말을 전합니다. “그대여, 두려워하지 말아요. 난 당신을 천 년 동안 사랑해왔어요. 그리고 천 년을 더 사랑할 거예요."라며 엄마와 아이가 노래합니다. 염색체를 남들보다 하나 더 갖고 태어난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들과 그 엄마, 50쌍이 영상에 등장해요. 다운증후군 특유의 생김새를 가진 아이들이지만 엄마를 똑닮은 부분도 눈에 들어옵니다. 뱀파이어 사랑 이야기의 주제가였던 이 노래를 엄마와 아이가 함께 부르자 예상치 못한 감동 포인트가 생겨 버렸어요. 엄마와 아이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60~70년이라는 걸 우린 모두 알고 있지만 천 년을 사랑해왔다고, 천 년을 더 사랑하겠다고 엄마가 아이에게, 아이가 엄마에게 말할 때, 우린 그 말을 믿게 되죠. 영상은 전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하게 퍼져 나갔어요. 영상에 참여한 가족들은 아예 비영리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이름은 ‘Wouldn’t Change A Thing(WCAT).’ 제멋대로 번역해 보자면 ‘내 아이는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지만 신이 소원을 들어준다고 해도 내 아이에 대해 1도 바꾸지 않겠어!’라는 의미의 ‘아무것도 바꾸지 않겠어'라는 단체입니다.


                                                 <50 Mums | 50 Kids | 1 Extra Chromosome> 




이 영상이 3월 중순에 퍼진 이유는 3월 21일이 ‘세계 다운증후군의 날'이기 때문이에요. 다운증후군은 21번 염색체가 3개인 유전성 질환입니다. 보통 염색체는 두 개씩 쌍을 이루는데 하나가 더 있다 보니 ‘과잉(엑스트라) 염색체’라고 부릅니다. 외국에서는 월보다 날짜를 먼저 쓰잖아요. 21/3 이런 순서로 쓰니까 21번 염색체가 3개라는 의미로 3월 21일을 세계 다운증후군의 날로 정했다고 해요. 그래서 매년 3월 21일이 되면 세계 여러 곳에서 다운증후군 인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이 벌어집니다.


이 영상은 좁은 차 안에서 엄마와 아이가 함께 수어로 노래를 한다는 점에서 특별했는데 이런 콘셉트는 영국의 ‘Singing Hands UK(노래하는 손)’라는 단체에서 먼저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단체는 청각장애나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에게 수어를 더 쉽게 알려주기 위해 인기 있는 노래의 가사에 맞춰 수어를 알려주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있는데 거기서 착안했다고 WCAT 영상 아래 설명에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네요. 다운증후군 중에는 청각 장애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정밀 청력 검사를 어릴 때부터 받습니다. 청력에 이상이 없더라도 대부분 언어 치료를 받아야 해요. 지적장애로 언어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아서요. WCAT 영상에 등장하는 수어는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간소하게 표현할 수 있게 고안된 ‘마카톤(Makaton)'이라는 수어라고 합니다. 외국의 다운증후군 자료를 찾다 보면 마카톤을 구사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어요. 대부분의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들이 발화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손으로 간단한 사인을 표현하면 말을 잘 하기 전에도 가족과 더 풍부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회가 되면 배우고 싶습니다.


이후 WCAT는 매년 3월 중순이 되면 캠페인 영상을 유튜브 채널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제 둘째인 꿈별이가 배 속에 있을 때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개봉하면서 세계적으로 퀸 열풍이 다시 불었는데요, 그 여파인지 꿈별이가 태어난 2019년에는 퀸의 ‘Don’t Stop Me Now(날 멈추지 마)’에 맞춰 아이부터 청년까지 50명의 다운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는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당시 저는 큰 수술을 치르고 겨우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에서 퇴원해서 집에 온 꿈별이에게 모유를 먹이기 위해 씨름을 하고 있었어요. 한겨울에 NICU 면회를 매일 가고, 퇴원 후에도 그 꼬물이를 안고 이틀이 멀다 하고 각종 검사를 받으러 종합병원을 다니느라 당연히 산후조리는 폭망했지요. 호기롭게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를 낳아서 키우겠다고 큰소리쳤는데 막상 감당하기 버거울 만큼 많은 합병증을 가지고 태어난 꿈별이를 보며 안쓰럽고 힘들고, 슬프고 슬프고 슬펐어요. 그때 먼저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를 낳아 키우던 선배맘들이 새내기 ‘천사맘(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들을 다운 천사라고 흔히 불러서 우리끼리는 엄마를 이렇게 부릅니다.)’들을 위해 단톡방을 만들어서 병원이나 치료실, 정부 지원 정보 등을 알려주며 힘내라고 응원해 줬어요. 이 영상도 선배맘이 단톡방에 공유해 줘서 보게 되었습니다.


                                     <Don't Stop Me Now - World Down Syndrome Day>



살아만 달라고 기도하다가 살아서 퇴원하자, 이제는 제발 아프지 않고 컸으면 좋겠다며 울고만 있던 저는 이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퀸 노래에 맞춰 립싱크를 하고 춤을 추는 다운 천사들은 너무 건강하고 유쾌해 보였기 때문이에요. 화장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농구를 하고 암벽 타기를 하고 드럼을 치고 기타 연주를 하고 술을 마시고 당구를 치고 운동을 하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뛰어놀고 프러포즈를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와 다를 게 하나 없는 사람들이라는 걸 글이 아닌, 몸으로 보게 되었어요. 지금은 작고 약하고 아픈 데가 많은 아이지만 이 아이의 미래가 저렇게 다양한 모습일 수 있다니, 저에게는 어떤 응원의 말보다 큰 힘이 되었어요. 누구도 그들을 막을 수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내 무지와 편견으로 꿈별이의 가능성을 미리부터 제한하지 말아야겠다고 이 영상을 본 날 다짐했습니다.


                                 <Wouldn't Change A Thing WDSD2020 Campaign>



작년 3월에는 브루노 마스의 ‘Just The Way You Are(당신 있는 그대로)’에 맞춰 다양한 다운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업로드되었어요. 2020년의 캠페인 주제였던 “What Do You See?(당신은 무엇을 보시나요?)”라는 질문과 함께 영상이 시작됩니다. 사랑스러운 아기들, 해맑은 아이들, 당당한 청년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다가 후렴구가 되자 옆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가 “I see(나는 봅니다)”로 시작하는 문장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사람의) 이름'이 보여요”, “나는 탐험가가 보여요”, “나는 친절과 공감이 보여요”, “나는 내 딸이 보여요”, “나는 학생이 보여요”, “나는 내 여자친구가 보여요”, “나는 내 남자친구가 보여요”, “나는 자립이 보여요”, “나는 행복이 보여요.” 다운증후군이라는 장애, 진단보다 그 사람을 보라는 의미의 캠페인이었어요. 이 노래는 워낙 히트곡이라 여기저기서 많이 듣고 따라 부르기도 했는데 의미를 새겨본 적은 없었어요. 노랫말 중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당신의 얼굴을 바라볼 때 아무것도 바꿀 게 없어요. 당신 있는 그대로 이미 놀랍도록 멋지거든요.” 이 단체의 이름과 잘 어울리는 가사였어요. 영상에 등장하는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끄덕이게 됩니다. 바꿀 건 아무것도 없다고, 그들은 있는 그대로 충분하다고요.


어제인 15일에 드디어 기다리던 2021 WCAT 캠페인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다시 첫 번째 영상처럼 차 안에서 입과 손으로 노래하는 콘셉트로 돌아갔습니다. 달라진 건 엄마가 아니라 형제, 자매, 남매와 함께 한다는 점이에요. 시스터 슬레지의 ‘We Are Family(우리는 가족이에요)’에 맞춰 다운증후군을 가진 사람과 동기간인 ‘Sibling’들이 함께 노래하고 웃고 껴안고 떠듭니다. 아마도 코로나 때문에 차 안에서 가족이 노래하는 콘셉트가 촬영하기에 가장 안전했을 것 같아요. 첫 번째 영상과 이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더 반갑기도 합니다.


                                       <We Are Family - 50 Siblings - WDSD21>


자녀 중에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가 있으면 다른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물어오는 사람이 많은가 봐요. 저와 가족들도 둘째 꿈별이의 장애를 알고 첫째인 고래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꿈별이가 자립을 못하면 고래에게 너무 과한 짐을 지우게 되는 건 아닐까, 고래가 동생을 싫어하거나 원망하면 어떡하지, 걱정을 했습니다. 고래는 일곱 살, 꿈별이는 세 살인데 아직 고래는 다운증후군이 뭔지 잘 몰라요. 다운증후군을 가진 동생을 맞이하는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을 읽어준 적은 있지만 자세히 설명해 준 적은 없어요. 그냥 꿈별이는 좀 느리고, 병원을 자주 가야 하는 아이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꿈별이의 장애가 고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모르겠어요. 동생 치료 때문에 바쁘고 지친 엄마 때문에 전보다 손길이 줄어서 섭섭할 법도 한데, 고래는 오히려 제가 아주 사소한 일로 꿈별이를 칭찬하면 “내가 더 잘하잖아!”라며 느리디느린 동생에게 질투를 하는 흔하디흔한 누나일 뿐입니다. 이 영상에 나오는 모습도 다르지 않아요. 간지럽히고, 장난치고, 뽀뽀하고, 어색해하기도 하고, 또 함께 웃는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형제, 자매, 남매의 모습입니다.    


백 마디 글보다 한 편의 영상의 힘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직접 WCAT의 영상을 보면서 감동을 함께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억해 주세요. 다운증후군을 가진 사람이 여러분의 곁에 살고 있습니다. 3월 21일은 세계 다운증후군의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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