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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May 06. 2021

가장 보통의 육아

[다운 천사 꿈별 맞이]


엉망이 된 첫째 육아

"내려놔!"

첫째를 키우면서 수도 없이 들은 말이다. 남편도 없이 독박 육아를 하느라 힘들다면서 왜 그렇게 유난이냐고, 원칙대로 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편하게 육아하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지금의 나였다면 상종을 하기 싫을 정도로 첫째를 키울 때의 나는 유난스러웠다. 신념을 갖고 육아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나는 '내 육아 방식만 옳고 다른 건 다 틀려!'라는 오만함의 결정체였다. 그래서 내려놓으라는 말이 곧이 들리지 않았다. 지금 잘하고 있는데 왜 그만하라는 거지? 이게 맞는데? 반감만 들었다.

미디어를 보여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눈부시고 시끄럽고 정신 사나운 마트, 쇼핑몰에도 데려가지 않았다. 플라스틱 장난감을 벌레 보듯 했다. 누가 조잡한 장난감을 아이에게 선물하면 불같이 화를 냈다. 어떻게 하면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지 않게 할까 궁리하며 산책 코스를 짰다. 매일 국립공원으로, 숲 체험장으로 아이를 데리고 다녔다. 어린이집을 골라서 보내느라 이사까지 했고, 하원 후에도 간식을 싸 들고 숲 체험장으로 가서 저녁까지 아이를 놀렸다. TV 보고 시판 간식 군것질하는 아이들을 아예 못 만나게 차단했다. 다행히 주변에 나와 비슷한 육아관을 가진 엄마들이 있어서 고래는 그 친구들과 어울렸다.

돌이켜 보면 육아 동지들 사이에서도 나는 불편한 존재였을 것이다. 식이 알레르기가 있는 고래 때문에 건강한 먹을거리에 유독 집착했고, 채식을 하기에 함께 갈 수 있는 식당도 마땅치 않았으니. 영상물도, 장난감도 차단하고 키즈 카페도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가지 않았고 교구나 조기 교육, 문화센터에도 다 부정적이었으므로, 그중에 무언가를 하고 있는 엄마들은 날 피했다.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장난감을 같이 갖고 노는 것까지 막지는 않았지만, 아이가 플라스틱 장난감이나 반짝이고 소리 나는 놀잇감을 갖고 놀 때 내 표정이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속으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사람을 상대하기가 편안했을 리 없을 텐데, 그래도 독박 육아한다고 초대해서 밥도 해주고 시간 보내준 육아 동지들에게 새삼 고맙다.

둘째 엄마들은 대부분 여유가 넘쳤다.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걱정하고 고민하는 나와 달리 대범했다. 아이에게 줘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에 대해서도 나보다 기준이 느슨했다. 영상 하나 본다고 애 잘못되지 않는다고, 플라스틱 장난감 좀 갖고 논다고 애 망치지 않는다고 너그럽게 아이들을 대했다. 난 그런 것들이 아이에게 미칠 나쁜 영향에 대해 신경이 쓰였지만 여유로운 그 엄마들의 태도는 부러웠다. 육아하면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니 대단해 보였다. 둘을 낳아 보고 알았다. 그들은 여유가 넘쳐서 그렇게 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다 챙기고 막을 수가 없어서 포기했다는 것을. 그리고 막상 포기해 보니 애가 잘못되는 게 아니라는 걸 배웠기에 안심했을 것을. 무엇보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둘째에게 모유 수유를 하고, 첫째 밥을 정성스레 차리면서 매일 숲으로 나들이를 갈 체력이 되면 참 좋았겠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아침에 고래 도시락을 싸서 어린이집에 등원시킨 후 꿈별이 병원으로 달려가서 진료를 보고 검사를 받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눈물을 쏟고, 오후에 고래가 하원하면 다시 둘을 돌보면서 저녁을 차려 먹이고 씻기고 수유하고 재우고.... 그게 일상이었다. 고래를 세 살까지 가정 보육하면서 산으로 들로 다니며 자연 식물식으로 열심히 차려 먹인 것도, 어린이집을 다닌 후에도 하원하고 나면 오후에 공원에서 신나게 몸 놀이를 하고 집에 와서 얼른 씻기고 밥 지어 먹이고 일찍 재우던 것도 이제 더는 할 수 없는 육아 방식이었다.

고래가 하원할 때 유아차에 꿈별이를 태우고 나가서 단지 내 놀이터에서 놀게 하는 게 오후에 고래에게 허락하는 유일한 놀이 시간이었다. 그나마도 꿈별이가 배고프다고 울거나 용변을 보면 바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날이 덥거나 춥거나 비가 오면 놀이터조차 들리지 않고 바로 집으로 왔다. 꿈별이 기저귀를 갈고 모유 수유를 하고 트림을 시키고 재우다 보면 고래는 방치될 때가 많아졌다. 미안함에 자꾸 장난감을 사주게 되었다. 꿈별이 임신 후기에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아지면서 불안해하는 고래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처음으로 쇼핑몰에 데려가 장난감을 사줬다. 둘 육아를 하면서 고래의 장난감은 점점 늘어만 갔다. 엄마의 빈자리를 장난감으로 메꿀 수 있다는 듯 자꾸만 사서 안겼다.

자연에서 놀게 하는 자연주의 육아, 장난감 없는 육아, 미디어 노출 없는 육아, 발도르프 육아... 그간의 육아 방식을 전부 내려놓아야 했다. 그건 아이와 엄마가 건강하고 다른 데 신경 쓸 필요 없이 자유로울 때나 가능한 육아 방식이었다. 매일 병원에 다니느라 에너지가 다 방전된 나는 더 이상 고래에게 습식 수채화 판을 펼쳐주거나 숲 놀이를 하러 다녀줄 수가 없었다.

둘째가 9개월 되었을 때 남편이 또다시 해외 발령을 받았다. 혼자 둘을 키우면서 매일 꿈별이 치료실을 다니던 어느 날, 내가 배탈이 났다. 죽을 끓일 기력은 없고 집 앞 죽집에 사러 나가야겠는데 아이 둘을 챙겨서 나가기가 힘들었다. 다섯 살 고래를 컴퓨터 앞으로 데려가 처음으로 뽀로로를 틀어줬다. 둘째는 가만히 누워만 있을 시절이라 범퍼 침대 안에 눕혀 놓고 죽을 사러 나갔다. 그 후로는 종종 저녁에 꿈별이 수유하고 재우러 들어갈 때 고래에게 뽀로로 영상을 틀어주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재미있는 곳에 데려가던 아빠가 없어서 고래는 심심하다고 엉엉 울었다. 처음으로 쇼핑몰 문화센터에 가입했다. 발레복을 사주며 키즈 발레 강좌에 들여보내기도 하고, 미술, 음악, 유아 체육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데리고 다녔다. 아이에게 필요 이상의 자극을 준다고 문화센터 프로그램에 손을 젓던 나였지만, 지금은 잠깐이라도 고래가 즐거울 수 있다면 그게 뭐든 가리지 않고 시켜줬다. 그게 아이에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내가 뭐라도 해줬다고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서가 더 컸다.

아이 둘을 혼자 키우려니 밥을 공들여 차려주는 것도 힘들어졌다. 비건 피자를 시켜주거나, 비건 반찬을 배달시킨 뒤 밥만 겨우 해서 상을 차렸다. 쌀가스나 대체육 같은 인스턴트 비건 식품을 주는 날이 많아졌다. 아침은 시리얼에 두유를 말아 대충 때웠다. 고래 하나만 키울 때는 매끼 새 밥을 지어 먹였지만, 둘째를 낳은 후 다시 전기밥솥을 샀다. 식기세척기도 렌털했다. 살림에 소질이 없지만 나름 정성을 다했었는데, 이제는 그냥 죽지 않을 만큼만 했다. 그날 입을 옷만 겨우 빨았고, 둘째 천기저귀도 여름 지난 후엔 벽장에 넣어 버렸다. 고래가 알레르기마저 없었다면 최소한의 요리조차 안 했을 것이다. 어린이집 식단 중 고래가 못 먹는 반찬을 대신해서 도시락을 싸기 위해 마지못해 요리를 했지만 정말 대충 했다. 모든 살림을 대충대충 허겁지겁해도 하루가 모자랐다. 아이 둘을 챙기는 것만으로 수유 때 외에는 엉덩이 붙일 시간도 없을 만큼 바빴다. 다들 어떻게 둘을 키우는 걸까 궁금할 지경으로 정신이 없었다. 다들 이렇게 힘들고 바쁜 걸까. 둘 육아라는 건 원래 이런 건가.

평소에는 고래 저녁밥을 차려주고 꿈별이 이유식을 먹이고 수유를 한 뒤 내 밥을 먹고, 꿈별이가 안 울고 잘 놀면 설거지를 하고 씻겼다. 꿈별이를 8시 전에 재우고 나면 타이머를 맞춘 뒤 고래랑 15분 동안 빡세게 놀아줬다. 그런 다음 남은 뒷정리를 하고 고래를 씻기고 동화를 읽어주고 같이 잠이 들었다. 그러나 검사가 힘들었거나, 치료가 힘들었거나, 감기에 걸렸거나, 이유 없이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면 꿈별이는 엄마 껌딱지가 되어 칭얼댔고, 고래는 하염없이 혼자 놀면서 기다렸다. 그러다 너무 서러운 날엔 기다리기 힘들다고, 외롭고 슬프다고 소리치며 울었다. 고래가 울면, 잠에 취해있던 꿈별이도 깜짝 놀라서 따라 울었고, 그럼 망연자실해진 내가 같이 울었다. 셋이 부둥켜안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그 와중에 나는 고래가 동생이나 엄마 탓을 할까 두려웠다. 그래서 아빠가 없어서 그런 거라고 설명했다. 지금 고래가 외롭고 슬픈 건 아빠가 중동으로 일하러 가서 그런 거라고 탓을 돌렸다. 고래가 엄마나 동생을 원망하지 않길 바랐다. 비겁했다.


가장 보통의 육아

꿈별이는 8개월부터 재활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여러 합병증 때문에 외래 진료와 검사 때문에 바쁘기도 했고, 대학병원 재활치료실 대기가 워낙 길기도 했다. 일찍부터 비싼 사설 센터에 데리고 다니는 엄마들도 많지만 난 그럴 기력도, 재력도 없었다. 첫째를 잘 키웠기에 꿈별이도 집에서 잘 돌봐주면 잘 클 거라고 자만하기도 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들이 다 근무기력증을 가지고 있다고, 목을 늦게 가눈다고 해도, 내 아이가 꼭 그대로 늦으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꿈별이는 19년생 다운증후군 친구들 중에서도 유독 느렸다. 영유아 검진에서 지역 복지관 주치의를 하며 발달장애인을 많이 진료해본 의사조차 다운증후군 중에서도 더 힘이 없는 편이라고 하자 그제야 덜컥 겁이 났다.

꿈별이를 낳은 대학병원과 집에서 더 가까운 대학병원, 두 곳에서 재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재활의학과 의사도, 치료사도, 모두들 꿈별이가 유독 발달이 느리고 근육에 힘이 없다고 했다. 환자를 한두 명 본 게 아닌 전문가들이 단정적으로 말하니 앞이 깜깜했다. 다운증후군은 발달장애의 개인차가 크다. 꿈별이 친구 중에는 돌이 지나서 걷기 시작해서 비장애 아이들과 함께 문화센터나 어린이집 생활도 똑같이 하는 아이들도 있다. 나도 내심 꿈별이가 그러길 기대했던 것 같다. 느린 애들 중에서도 유독 느리다는 게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모든 게 다 내 탓 같았다. 내가 너무 아이를 방치했구나, 내 몸 힘들다고 애 치료를 서두르지 않았던 걸 후회했다. 의료진들은 자신들의 말의 무게를 잘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엄마가 운동을 더 시키셔야 된다고, 엄마가 자세를 안 잡아줬다고, 너무도 쉽게 나를 나무랐다. 안 그래도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자책하는 데 쓰고 있는데 병원에 갈 때마다 죄책감이 더 커졌다.

꿈별이는 사시가 있어서 물건이 눈앞에 가까이 오는 걸 힘들어했다. 나와 눈도 잘 마주치지 못했고, 수유를 할 때나 한쪽 눈으로 겨우 눈 맞춤을 하면서 웃는 게 다였다. 그런데 재활치료를 받으면서 소리 나고 불이 번쩍이는 플라스틱 장난감을 앞에 놓고 동작을 유도하자 자지러지게 울었다. 치료사들은 아이가 너무 예민하다고 자극에 무뎌지게 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난감을 앞으로 치료실에서 매번 만나야 하는데 그때마다 이렇게 기겁하고 울면 치료가 진행이 안 된다고 했다. 그날 치료실에서 나와 엉엉 울면서 육아용품점으로 운전해 갔다. 소리 나는 플라스틱 장난감을 한 아름 사서 집으로 왔다. 그토록 싫어하던, 내 아이 손에 절대 쥐여주고 싶지 않았던 플라스틱 장난감을 꿈별이의 장애 때문에 사야 하다니 억울하고 분했다. 아이의 장애라는 건 내 나름의 육아관을 지키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구나, 절망했다.

고래를 키울 때 기를 쓰고 차단했던 '국민' 육아템들, 장난감들을 꿈별이를 위해 다시 사 모았다. 국민 아기 체육관, 국민 문짝 같은 것들은 고래 때 물려받은 그대로 다른 친구들에게 넘겼는데 하나씩 중고 거래 앱에 알람을 설정해 놓고 사들였다. 집에 점점 국민 육아템, 국민 장난감이 쌓여갔다. 고래에게 신경을 못 써준다고 고래 장난감을 사고, 꿈별이가 치료실에서 만날 장난감들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꿈별이 장난감을 샀다. 알록달록 플라스틱 장난감이 난무하는 보통의 애 있는 집이 되었다. 살림은 못해도 아기 용품이 미니멀한 게 나름 자랑거리였는데 미니멀 육아, 미니멀 라이프도 끝이 났다.

육아 5년 차에 나는 마침내 보통의 육아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장난감이 가득한 집에서 고래는 그동안 못 본 영상물을 차근차근 도장 깨기 하듯 정주행해 나갔다. 뽀로로에 이어 타요를 거쳐 슈퍼윙스를 지나 옥토넛과 고고다이노, 그리고 번개맨까지 굵직한 인기작들은 한 번씩 다 좋아했다. 꿈별이는 엄마랑 누나가 밥 먹을 동안 국민 모빌을 보거나 국민 아기체육관에서 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누워 있었다. 밥은 정성스레 차리는 게 아니라 때우는 끼니가 되었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까지 문화센터, 쇼핑몰, 키즈카페 뻔질나게 유아차에 꿈별이 태워서 다니며 고래를 놀렸다. 가만히 유아차에 누워 있다가도 엄마와 누나가 외식을 할 때면 울고 보채는 꿈별이 앞에 스마트폰으로 뽀로로 영상을 틀어줬다.

보통의 육아를 해 보니 큰일 나지 않았다. 그런 자극들이 아이들에게 크나큰 해를 끼치지도 않았다. 나는 조금 더 편해졌고 숨통이 트였다. 남편 없이 비장애인 첫째와 장애를 가진 둘째를 혼자 키우면서 매일 병원에 다니는 일상은 그냥 생존하기 급급할 만큼 힘겨웠다. 신념, 가치, 다 좋지만 생존보다 우선하는 게 있을까. 엄마가 에너지가 없는 사이 아이가 장난감 갖고 놀면서 즐거울 수 있다면, 뽀로로 영상 보면서 웃을 수 있다면 그게 그렇게 나쁠까. 엄마가 아파서 골골대는 중에 배달 음식으로 아이가 배 채울 수 있으면, 맛있다고 만족할 수 있으면 그게 그렇게 잘못일까. 나는 그제야 남의 육아를 함부로 판단해선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

나와 아이가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칠 때, 유기농 자연식으로 밥을 해먹고 국립공원에서 숲 육아를 하고, 미디어와 장난감 없는 자연주의 육아를 하는 사이, 누군가는 병원 침대 밖을 벗어난 적이 없는 아이에게 동영상을 틀어주면서 아픔을 잊게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배달 음식이나 라면으로 겨우 아이 끼니를 챙기며 생존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운이 좋았던 걸 잘난 걸로 착각했던 것이다. 참으로 오만하고 교만했다. 보통 사람들의 육아를 재단하고 평가할 자격이 대체 누구에게 있을까. 제아무리 유명한 육아 전문가도 장애아와 비장애아를 독박 육아해본 적은 없을 것이다. 누구도 내 육아에 손가락질할 수 없는 것처럼, 나 역시 남의 육아를, 타인의 삶의 방식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 완벽히 옳은 육아 방식이란 없다. 학대가 아닌 이상 세상에 완벽히 나쁜 육아 방식도 없다. 저마다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 중요한 건 나와 아이들이 함께 사는 거지, 어떤 이상을 실현하는 게 아니다.

꿈별이를 낳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나는 비로소 겸손을 배웠다. 미니멀 육아를 버리는 동시에 오만함도 비웠다. 발도르프 육아를, 자연주의 육아를 포기하면서 교만도 내려놓았다. 난 좋은 엄마 되기를 멈췄다. 그냥 엄마만 하기로 했다. 동영상 앞에 방치하더라도, 배달 음식으로 배 채우더라도, 가끔 감정 조절 못하고 소리 지르며 미친년 되더라도, 보통조차 못 되는 육아를 하더라도, 애들이랑 같이 살기로 했다. 살아남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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