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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Jul 29. 2021

공식적으로 장애인이 되다

[다운 천사 꿈별 맞이]


장애 등록, 공식적으로 장애인이 된 꿈별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는 두 돌이 지나면 장애 등록 신청을 할 수 있다. 태어나자마자 염색체 검사로 다운증후군 여부를 알 수 있고,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닌 영구 장애인데 왜 2년이나 기다려서 장애 등록을 할 수 있게 제도가 만들어져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경우 보통 지적 장애로 장애 판정을 받는다. 다운증후군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들 중에는 장애 등록을 미루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어차피 영구 장애인데 빨리 등록하고 조금이라도 지원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두 돌이 지난 후 다니던 병원 재활의학과 외래 진료가 있던 날 장애 판정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장애 판정을 받으려면 의사에게 외래 진료를 가서 검사 처방을 받아야 하고, 검사를 예약한 뒤 다시 병원을 찾아서 발달 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오면 다시 의사를 만나서 결과지를 받아서 지자체 주민 행정복지센터에 제출해야 한다. 한참 기다리면 결과가 나왔다고 주민센터에서 연락이 온다. 꿈별이의 장애 심사 결과가 나왔다고 연락을 받은 날은 오전, 오후 다 재활치료가 있는 날이었다. 오전 치료를 마치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점심을 먹고 바로 주민센터에 방문했더니 아이 사진을 가져오라고 해서 다시 집에 다녀왔고, 또 카드 종류를 골라야 해서 현장에서 받지 못하고 우편으로 올 거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장애인 차량 등록도 했다. 꿈별이는 아직 걷지 못하지만 지체 장애로 장애 판정을 받은 게 아니기 때문에 장애인 주차 구역에 주차를 할 수는 없다. 다만 공공 기관 주차장을 이용할 때 할인을 받을 수 있게 장애인 차량이라는 표지판을 받았다. 직원이 유성펜으로 슥슥 차량 번호를 써주는 걸 보고 화가 났다. 늘 차에 두고 다니면서 이용해야 하는 공식 증명인데 좀 예쁘고 깔끔하게 만들어 주면 안 되나? 왜 장애 등록을 하면 미적 감각도 포기해야 하지? 괜히 부아가 치밀었다. 


즐겨보는 웹툰 중에 <열무와 알타리>라는 장애아 가족 일상툰이 있는데, 장애 등록 에피소드에서 엄마가 많이 우는 장면을 보고 마음이 아팠지만, 장애 등록이 그렇게 슬픈 일일까 실감이 안 났다. 내 경우에는 배 속에 있을 때부터 꿈별이 장애를 알고 있었고, 이미 2년 동안 치료를 다니고 있으니 다 받아들였다고 자신했다. 장애가 있으니까 장애 등록하는 거지, 그게 뭐 대수냐고 쿨한 척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주민센터에서 복지 카드를 신청하고 장애인 차량 표지판을 받아오던 날에도 울지 않았다. 다른 세금 지원을 받으려면 따로 시청에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이 빠졌을 뿐이다.


며칠 후 등기 우편으로 꿈별이의 장애인 복지 카드가 발송되어 왔다. 봉투를 열어 꿈별이 이름과 사진을 확인한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다. 내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데, 성인이 되기도 전에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신분증이 생겼는데, 아무렇지 않을 엄마가 있을까. 뭘 위해서, 왜 그렇게 쿨한 척을 한 걸까. 나도 그냥 평범한 엄마였다. 내 새끼 얼굴과 이름이 박힌 복지카드를 보고도 담담할 수 있는 엄마는 없을 것 같다. 장애 등록이 대수냐고 했던 나조차 무너져서 울고 말았으니. 장애가 곧 불행인 건 아니지만, 장애아를 낳아서 인생 끝나는 건 아니지만, 아이를 임신하고 낳아 키우면서 내 아이에게 질병이나 장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엄마는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다. 장애가 있으니까 받아들일 뿐이지, 내가 바랐던 건 아니다. 복지 카드를 받으면 슬플 수밖에 없다. 장애 인식이 뛰어나서 의연하게 넘길 수 있기라도 한 듯 자신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이제 꿈별이는 공식적으로, 법적인 장애인이 되었다. 나는 빼도 박도할 수 없이 장애아의 엄마가 되었다. 원래 그랬지만 새삼 땅땅땅! 판사봉으로 내리치듯 확정을 받은 느낌이었다. 조금 숨이 막혔다.




고단한 장애 등록


장애 진단을 받기 위해 병원을 세 번 방문하고 주민센터를 두 번 방문했다. 장애 등록을 한다고 지원이 일사천리로 신청되는 것이 아니라 양육자가 각 항목에 대해 일일이 알아보고 직접 신청해야 하기에, 에너지가 없어서 아직 다 하지 못했다. 평소에도 치료 스케줄이 빡빡하기에 하나라도 더 진료나 검사가 추가되면 지칠 수밖에 없다. 주민센터로, 구청으로 몇 번씩 오가게 하고, 각자 알아서 지원 여부를 찾아보고 서류 갖춰서 다 따로 신청하게 제도를 만들어 놓아서, 안 그래도 돌봄과 치료로 바쁜 양육자들은 있는 복지 제도를 다 이용하지 못한다. 게다가 병원에서 장애 진단을 위해서 하는 발달 검사는 비급여인데 이십만 원 가까이 된다. 우리는 다니던 대학병원에서 진단을 받아서 비용이 많이 들지 않은 편인데 더 작은 병·의원에서 검사를 받으면 수십만 원을 내는 경우도 있다. 그 돈이 없어서 장애 등록을 못하고, 아무 지원을 못 받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먼저 돈을 들여서 검사를 하고, 복잡한 서류를 갖추고 여러 번 병원과 행정 시설을 오가야 비로소 장애 등록을 할 수 있다니, 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 제도를 만든 것 같다.


장애 등록을 하면 고속도로 통행료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데 장애인용 하이패스 단말기는 사비로 구입해야 하고, 매 운행마다 장애인 본인의 지문을 인식시켜야 작동한다고 해서 구매하지 않았다. 카시트 벨트 채우기도 힘든 두 돌 넘긴 아이와, 시간 맞춰 출발하기 바쁜 아침에 지문 인식을 하려고 씨름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세 번 복지관에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타는데 늦을 것 같은 날은 일반 하이패스를 이용하고,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톨게이트에 멈춰 서서 장애 당사자가 타고 있다는 걸 확인시키고, 복지 카드와 교통 카드를 내밀어 통행료를 결제한다. 하이패스 단말기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은 톨게이트마다 멈춰 서는 게 당연하지, 그게 뭐 큰 불편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빠르게 가기 위한 하이패스를 남들보다 좀 더 불편하게 이용하는 것, 혹은 톨게이트에 멈춰 서야 하는 것, 그런 아주 사소한 불편이 하루 종일 이어지는 게 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이 아닐까.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들끼리의 단체 채팅방에는 수시로 제도나 절차에 대한 질문들이 올라온다. 병원 이용이나 정부 지원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지자체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복지 규정을 읽어도 이해하기가 힘들다. 담당 공무원에게 문의를 해도 양육자보다 잘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오히려 양육자가 이런 규정이 있다고 알려줘야 할 때도 적지 않다. 세상이 편리해지고 빨라졌다는데 장애인과 그 가족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것 같다. 꿈별이 언어 치료를 위해 발달재활서비스 바우처를 신청할 때도 병원에서 발달 검사 서류를 받아서 주민센터를 방문했는데 대상자가 아니라고 하는 바람에 대상자가 맞다는 서류를 추가로 더 제출한 후에야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다운증후군이나 다른 발달 지연, 지체 장애로 인해 스스로 앉지 못하는 아이를 앉혀서 먹이거나 활동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의료기기 의자가 있는데 꿈별이에게 필요할 때는 장애 등록 전이었기에 수십만 원을 주고 중고로 구매해서 사용했다. 새 제품은 백만 원이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운증후군 아이 중에는 발목이 약해서 발목까지 감싸주는 하이탑 운동화를 신고 재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국내에선 작은 사이즈를 판매하지 않아서 전부 해외 사이트에서 직구로 구매해서 신기고 있다. 필수적인 도움은 두 돌 전에 더 절실한데 그때는 장애 등록을 하기 전이기에 아무 지원을 받지 못했다. 장애 당사자와 가족에게 정말 필요한 부분에 지원을 해주면 좋겠다. 내게는 가지도 않을 공공시설 주차장 할인보다 꿈별이 운동화 지원이 더 시급하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초보 장애아 엄마는 이런 것들을 바란다. 장애 여부를 확신하기 어려운 경우가 아니라 다운증후군처럼 태어날 때부터 염색체 검사로 알 수 있고 고쳐지지 않는 영구 장애의 경우, 다운증후군 확진과 동시에 장애 등록이 이뤄지면 좋겠다. 복지 서비스 지원 신청을 할 때마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새로 검사를 받고 서류를 또 지자체에 직접 제출해서 신청하는 게 아니라, 치료를 받고 있는 병원에서 발달 검사 결과를 바로 지자체에 전송해서 필요한 지원 신청이 자동으로 이뤄지면 좋겠다. 양육자가 장애 지원에 대해 일일이 알아보고, 우리 가정의 소득과 받을 수 있는 지원 기준을 일일이 비교한 뒤 기관에 방문해서 신청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민등록과 건강보험료와 장애 등급 등을 통합해서 내린 기준으로 치료비 지원, 세금이나 도시가스, 고속도로 통행료, 통신비 등의 할인이 자동으로 적용되면 좋겠다. 등급에 정해진 대로가 아니라 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정말 필요한 지원을 물어보고 제공해 주길 바란다. 한 마디로, 안 그래도 힘든 일이 많은 장애아 양육자가 조금이라도 편해지도록, 지원 방식과 내용이 바뀌길 바란다. 너무 큰 욕심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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