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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Aug 04. 2021

글을 마치며

[다운 천사 꿈별 맞이]


다운증후군을 가진 꿈별이를 낳고 바삐 병원을 오가고 정신없이 재활치료를 다니며, 조금씩 짬을 내어 글을 썼습니다. 격월간 교육잡지 <민들레>에 연재를 하기도 했고, 블로그에 일기처럼 끼적이기도 했고, 브런치와 EBS가 공동 주관한 공모전에 당선되어, 지난 연말 출간된 당선 작품집 <너의 목소리를 그릴 수 있다면>이라는 책에 제 글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올해 초, 새해를 맞이하며 꿈별이가 더 크기 전에, 제가 다 잊어버리기 전에, 임신 때부터 아이의 장애를 알고 출산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아무도 의뢰하지 않았고,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지만 블로그와 브런치에 꿈별이 이야기를 연재하겠다고 저 혼자 결정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편씩 쓸 계획이었는데, 중간에 우울의 늪에 빠져 두 달 정도 쉬기도 했고, 공백을 만회하려는 듯 한 주에 두 편씩 쓰기도 했습니다. 

이로써 지금 시점에서 제가 꿈별이 맞이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삶은 계속되니 초보 장애아 엄마의 분투기는 앞으로도 매일, 매 순간 계속되겠지만 한 매듭을 지은 것 같아 후련합니다. 배 속에서 <쇼미더머니> 랩 배틀에 맞춰 태동을 하던 꿈별이는 이제 뽀로로 노래가 나오면 손을 흔들고 허리를 둠칫 두둠칫 튕기는 세 살 아이가 되었습니다. 

꿈별이는 30개월이지만 아직 혼자 서지 못합니다. 서너 달 전 장애 진단을 받기 위해 발달 평가를 했을 때, 10개월의 발달을 보인다고 했는데 아직 11개월 발달로 넘어가진 않은 것 같아요. 그만큼 느립니다. 보통의 세 살과 다른 아이를 키우는 건 여러모로 어렵습니다. 흔한 '돌끝맘'이라는 말에도 공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돌이 지나면 이제 걷고 말하기 시작하고 이유식에서 밥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육아가 한결 수월해지고 다른 국면이 열리지만, 꿈별이는 아직 돌 아기의 발달을 보이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둘 이상이면 저희들끼리 놀아서 더 수월하다는 말에도 동의가 안 됩니다. 동생이 의사소통이 되기 시작했을 때나 첫째와 놀이가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낳아 놓으면 알아서 다 커", "애 크는 거 금방이야", "천천히 크면 좋겠다"처럼 일상적인 말에 저는 상처를 받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생사를 오가는 수술을 받았고, 사흘이 멀다 하고 종합병원을 다녔으며, 답답해서 속이 터질 정도로 느리게 크는 아이를 키우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꿈별이가 어떻게 크고 있는지 쓰고 싶었습니다. 이런 아이도 있다고 알리고 싶었습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를 키우며 매일 울고 웃는 엄마가 있다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매일 치료실을 다니느라 바쁘고, 지치고, 피곤한 와중에도 더디게 글을 써온 이유입니다. 

배 속의 아이가 내가 꿈꾸던 아이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말도 하고 싶었습니다. 아이를 임신한 후 모든 엄마는 아이가 건강하길 바랍니다. 내 아이가 질병이나 장애를 갖고 태어나길 바라는 엄마는 없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장애, 혹은 선천성 질병을 가진 아이를 낳습니다. 요즘은 산전 검사 기술이 발달해서 염색체 이상이나 질병을 미리 진단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술에 100%는 없기 때문에 기형아를 완전히 걸러낼 수는 없습니다. 그런 기술이 있다 한들, 그게 과연 옳을까요? 장애를 가진 아이를 태어나지 못하게 하는 세상, 질병을 가진 아이는 세상 빛을 보지 못하게 하는 세상은 과연 좋은 세상일까요? 저는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첫째 고래를 키울 때 저는 좋은 엄마가 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 노력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육아서를 읽고, 육아 강의를 듣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저만의 기준을 세운 뒤 그 잣대로 저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육아까지 판단하고 평가했습니다. 어떻게 이유식을 사먹일 수가 있어? 어떻게 아이한테 동영상을 보여줄 수가 있어? 어떻게 일회용 기저귀를 하루 종일 채울 수가 있어? 어떻게 상업적인 키즈카페에 데려갈 수가 있어? 어떻게 아이에게 조잡한 소리가 나는 장난감을 사줄 수가 있어? 등이 제가 고래를 키울 때 했던 말들입니다. 그 말들은 훗날 장애를 가진 둘째를 낳은 후 둘 육아에 지쳐서 하나씩 육아 원칙을 어기게 된 저를 공격했습니다. 처음에는 육아 원칙을 깨는 게 속상하고 억울했지만, 어느 순간 훨씬 자유로워졌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함부로 타인의 육아를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저 응원의 마음을 보낼 뿐입니다. 

제가 고래를 키울 때 그랬듯, 세상과 단절된 채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육아에 대해 너무 높은 기준을 세우지 않길 바랍니다. 그 기준들은 스스로를 더 고립시킬 것이고, 자신을 오래 괴롭힐지도 몰라요. 좋은 엄마가 되지 않아도 괜찮아요. 엄마인 것만으로 이미 충분합니다. 우리 좀 느슨하게 살아요. 

꿈별이를 낳기 전까지, 저는 제가 글 쓰는 사람이 될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고, 아이 병원 뒷바라지하느라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도 없게 되자, 자연스레 쓰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 글은 쉽고, 감정적이며, 전문적이지 않습니다. 좋은 글을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한다는데, 매일 아이 재활치료실에 다니는 애 둘 엄마는 그럴 시간이 없거든요. 그런데 저는 훌륭한 글이 아니어도 제 글이 좋아요. 꿈별이 이야기는 저만 쓸 수 있는 글이니까요. 꿈별이가 다른 모든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한 명의 고유하고 존귀한 아이라면, 제 이야기도 그런 가치를 갖고 있다고 믿습니다. 많은 분들이 꿈별이 맞이 이야기를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이런 아이도 있구나, 이런 가족도 있구나, 이런 삶도 있구나,라고 잠시 생각하셨다면 만족입니다. 

다운 천사 꿈별 맞이 '나는 장애아의 엄마가 되기로 했다'를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대단치 않은, 그렇지만 저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계속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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