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들의 유토피아, Uto’PAI’

꿈 같은 공간에서 내가 깨달은 것

by 양탕국


빠이로 가는 길은 치앙마이에서 시작된다. 그 길은 136km, 굽이굽이 돌아가야 하는 커브가 762개나 있는 결코 쉽지 않은 길. 멀미약 챙겨먹기가 필수 사항으로 여겨지고, 가는 길에 속을 게워내는 이들도 많은 그 험한 길을 달려 내가 보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빠이는 배낭여행자들이 떠나지 못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단순히 모이는 곳이 아니라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쉽사리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애칭은 이상적 공간인 유토피아를 본딴 ‘유토빠이Utopai’다.

실제로 다른 도시에서는 두달 가까이 여행하는 내가 여행자들 사이에서 장기 여행자로 통했지만, 이곳에 오니 가장 짧다. 디지털 노마드로 살고 있는 영국 청년 지지는 태국이 좋아 9개월간 치앙마이에 머무르고 있고 빠이에 온지는 보름인데 언제 돌아갈지 모르겠단다. 연봉 높은 IT업계를 떠나 아시아를 여행 중인 미국 청년도 2개월째 여행중이고 최소 3개월은 더 여행을 할 계획이란다. 각각 부탄과 이태리에서 온 국제 커플은 한달째 여행중이고 앞으로 미얀마를 거쳐 또 어딘가로 갈 계획인데 3개월은 채울 거란다. 이 외에도 수많은 여행자들이 제 몸 반절만한 배낭을 짊어지고 속속 빠이로 모여든다. 그리고 장기 여행 중 가장 장기로 머무는 마을이 바로 빠이가 되어버리는 현상을 겪곤 한다.


코끼리야, 이번 여행도 잘 부탁해!

빠이에서 선택한 숙소는 빠이 타운 중심부에 자리한 곳. 작은 마을이기는 하지만 골목골목 다니다보면 길치인 나에겐 야시장이 최고로 복작거리는 중심부가 나을 것 같았기 때문. 숲 속에 자리한 듯 오두막이 하나씩 독채로 자리한 이 숙소는 다시 빠이를 가더라도 선택할 것 같다. 내부 인테리어까지 내 맘에 쏙! 이름은 빠이 빌리지 인 이었던 것 같다. (불확실..)


빠이에서는 사흘을 보냈는데, 사흘 내내 폭우가 쏟아졌다. 그것도 보통의 여행자들에겐 가장 활동이 활발할 오후 2-4시경이 되면 무섭도록 비가 내리고, 밤이 되면 평온해지는 일이 반복됐다. 다른 여행지에선 문제가 될 일이어도 빠이에서는 노 프라블럼. 2시쯤 빠이 타운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너무 한적하고, 밤 10시쯤이 되면 도대체 이들은 낮엔 어딜 가있었던 걸까 싶게 사람이 많아진다. 그래서 이틀째부터는 나도 아침 먹고 휴식, 낮잠 후 카페에 나가 독서, 다시 휴식 후 바에 가서 놀다 새벽에 돌아오는 일정의, ‘빠이스타일’로 패턴을 변경했다.

매일 야시장이 서는 빠이
빠이에는 소소한 ‘빠이 전용 굿즈’를 파는 가게가 많다

저녁이 되면 야시장을 구경하며 배를 채우고, 슬렁슬렁 걷다 술 한 잔 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 제격. 첫날엔 블로그에 후기가 많은 에디블 재즈Edible jazz에 갔는데 이곳은 10시가 되면 라이브 음악이 끝난다. 그리고 굉장히 고즈넉해서 음악을 배경으로 도란도란 수다를 나누고 싶은 분들께 추천한다.

누워서 음악 듣던 에디블 재즈의 검은 고양이

허망함에 10시의 밤 거리를 걸었다. 술을 한 잔 더 할까, 라이브 음악을 들으면 참 좋을 텐데 하며 두리번거리는데 길가에서 청년 둘이 소극적으로 뭔가를 홍보한다. 가는 사람 붙잡지 않지만 눈 마주치는 사람에겐 홍보하는 이들의 호객 행위에 관심이 갔다.

“이 골목을 따라 죽 들어가면 라이브 음악을 연주하고 있어!” 라고 하길래 다른 곳 아는 데도 없으니 그대로 직진. 빠이타운 중심부 거리에서 어딘가 휑하니 야시장 부스 없이 뚫린 곳이 있으면 한 번 더 들여다보시길!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빠이에서 내가 가장 사랑한 공간인 The spirit 바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 눕듯이 앉았다가 어느땐 정말 누웠다가 하며 음악을 듣고 있자니 그야말로 지상 낙원. 그러다 난데 없이 비가 쏟아져 천장이 없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됐다. 천장은 두꺼운 비닐로 대강 막아놓은 형태였는데, 그래서 비가 쏟아지자 삼삼오오 그 비닐 아래로 모여들게 됐다. 그렇게 만난 이들이 미국과 레바논에서 혼자 여행을 온 청년들 (이들은 템플스테이에서 만난 후 치앙마이에서도 어울려 놀고 빠이에서도 만난 사이), 부탄과 이태리에서 온 커플이었다. 모두 최소 두 달의 장기여행자.


이들과 이야기하고 어울리다 벌어진 일을 통해 생각하게 된 것들.


1. 여행 방법에 옳고 그름은 없다.

미구기와 레바노니가 템플스테이를 통해 깨달은 것은 매우 달랐다. 미구기는 “배낭여행자라면 모름지기 사서 고생하는 것이 진짜 여행! 템플스테이를 통해 무소유를 배웠는데 여유있는 여행은 그와 맞지 않아!” st. 레바노니는 “좀 호화로우면 어때. 깨달음과 내 여행은 별개지.” st.

차마 커플에게 미주알 고주알 말할 순 없었던 것인지 자꾸 한 쪽이 술을 사러 가거나 화장실을 가거나 하며 자릴 비우면 나한테 와서 상대의 여행 스타일을 비웃는 녀석들. 휴. 그 상태로 치앙마이에서도 어울리고 빠이까지 같이 온 게 용하다.. 쩝.

나 역시 배낭여행자 (특히 명상이나 템플스테이를 통해 뭔가 배우고자 함)가 너무 여유롭게 여행하는 건 안 어울리지 않나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이들이 내게 이야기하는 것을 가만히 듣다 보니 “대체 여행에 옳고 그른게 어딨단 말인가” 싶었다. 옳고 그름이 있다면 <내가 만족하는 여행>이 옳은 것이고, <남의 여행법을 무시하는 것>이 그른 일일 터.


2. 친절함에도 인종차별은 있다.

레바노니는 일찍이 자리를 떴고, 이곳저곳 자리를 옮겨 가며 놀다가 이제 헤어지기로 하고 터덜터덜 걸어오는데 갑자기 비가 또 내린다. 미구기가 머무는 호스텔이 근처라고 해서 일단 그곳으로 향했다. 비가 멎기를 기다리며 1층 테라스에 머물다 술을 마시는 여행자들을 만났다.

“난 여기에 묵고 있어. 너희도?”

“아니, 비가 와서 잠시 들렀어.”

“그런데 너희는 어느 나라에서 왔어?”

“한국, 미국, 이탈리아, 부탄”

“아, 미안. 부.. 부 뭐라고?”

“부탄.”

“부탄? 그게 나라 이름이야? 내가 아시아를 잘 몰라서”

여기까지 오자 부탄 여행자의 남자친구인 이탈리아 남자가 “부탄은 인도랑 중국 사이에 있는 나라야.” 라며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오히려 부탄 사람이 가만히 있고 이탈리아 사람이 대신 설명해주는 일. 느낌상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었을 것 같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라면 ‘모르는게 당연하다’는 입장을 그 나라 사람 앞에서 드러내도 괜찮은 걸까. 그건 ‘무지하다’가 아닐까. 단순히 앎과 모름의 문제가 아닌, 모름에 대한 태도에서 말이다.

사실 여행을 하다보면 호객 행위를 위해 내게 ‘니하오’라거나 ‘곤니치와’라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나에게 친절하기 때문에 그건 인종차별적 행위가 아닌 것일까? 그들은 아메리카나 유럽,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생김새로 나라를 유추해 ‘헬로’가 아닌 ‘본 조르노’나 ‘봉주르’라고 인사하는가?

다른 여행자들과도 언제든 몇 번이든 이야기해보고 싶은 주제다.

빠이 새벽 하늘

빠이엔 아직도 제 몸 반절만한 배낭을 메고 무언가를 기대하며 몰려드는 여행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찾았거나, 찾기 위해 눌러앉은 여행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빠이는 사흘. 더 있을까 고민도 했지만 머묾에 만족스러움이, 떠남에 아쉬움이 있을 때 떠나기로 결정했다. 결코 길지 않은 사흘이었지만, 도착할 때만큼 마냥 좋기만 하진 않았던 공간.

이곳에서 나의 여행은 생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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