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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탕국 Feb 06. 2021

오늘도 불티나게 팔리는 역겨움

<핫 걸 원티드>



지난 2018년, 세계 최대 포르노 사이트 폰허브가 발표한 전년도 이용자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하루 평균 접속자는 8100만 명이다. 매달 포르노 사이트에 접속하는 사람들의 수는 넷플릭스, 아마존, 트위터 접속자 수를 합친 것보다 많다. 전 세계 포르노 산업 시장 규모는 이미 2014년 우리나라 돈으로 100조를 돌파했다.


포르노 산업의 급격한 성장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1. 인터넷의 발달 2. 연령 제한 축소. 1번은 이해가 가는데 2번은 무슨 소리냐고? 19세 이상 인증 절차나 ‘클린00’ 같은 이름의 다양한 시스템을 통해 청소년에게 유해할 수 있는 콘텐츠를 차단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사실 1번이 2번의 몸집까지 키웠다. 과거 잡지와 빨간 비디오로 성행하던 시절만 해도 어른인 척하며 청계천 상가를 뒤지거나 집안 어딘가에서 ‘어른의 물건’을 발견해야 접할 수 있었다면, 이젠 SNS나 무료 사이트로 포르노를 제공하기도 하니 가만히 앉아서 포르노를 배달받아볼 수 있을 정도로 경계가 옅어지고 무의미해졌다. 그 때문일까. 30여 년 간 포르노 산업을 연구한 게일 다인스 교수는 “최근 의학계에 따르면 포르노를 처음 접하는 나이는 8세~10세”라고 전한다. 기존 통계에 이 연구를 더해 생각해 보면, 전체 생애주기에서 포르노를 시작해 끝내는 구간을 색칠했을 때 ‘컬러풀’한 사람도 그만큼 많아졌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 산업이 이른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너도나도 뛰어들어 포화 상태라는 것. 자연스러운 수순은 경쟁도 차고 넘치고 더 거세진다는 것. 당연히 더 자극적인 게 잘 나가겠지? 그렇다면 그 자극적이라는 건 어느 정도일까? 과연 ‘배우가 연기를 하는’ 영상물이라는, ‘누구나 호기심 많은 시기를 거친다’는 이유로 어린아이들도 ‘즐기게 된’ 포르노를 지금처럼 방관해도 괜찮은 걸까?



[핫 걸 원티드. Hot girls wanted. 2015]


포르노 시장은 어리고 무지한 여성을 환영한다


마이애미에 위치한 한 주택. 이제 막 포르노 산업에 뛰어든 아마추어 배우 다섯 명과 에이전트 라일리가 함께 거주하는 곳이다. 라일리는 신인 포르노 배우를 기용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일이 꽤 어렵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잠시, 그는 구인 공고만 올리면 하루에도 여러 통씩 자신의 노출 사진을 첨부한 메일이 도착한다고 말한다. 경력이 없거나 적은 아마추어를 구하다 보니 주로 나이는 19세~20세. 비행기 티켓과 당장 지낼 숙소가 있기 때문에 경제적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문제없다. 집세는 내야 하지만 그것도 괜찮다. 포르노 배우로 활동만 시작하면 돈은 쉽게 벌 수 있다고 한다.

혹시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올 법한 감금된 채 성매매를 해야 하는 여성들을 생각했다면 한시름 놓으셔라. 이 여성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알고 ‘이력서를 넣어 지원’한 후 발탁돼 이곳에 왔다. 스타가 되고 싶어서,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독립하고 싶어서... 이유야 어찌 됐든 그들은 일단 당장은 잘 나가는 포르노 배우를 꿈꾸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불특정 다수에게 벗은 몸을 내보이고 실제 성관계까지 해야 하는 ‘난이도 있는’ 일에 왜 시장은 아마추어를 대거 포용하는 것일까? 포르노 산업은 일반적인 영화 산업과 달리 경력자를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감상자가 나이가 어리고 배우 티가 나지 않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타일을 선호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처음 이 시장에 뛰어든 아마추어 배우는 일주일에 적게는 3개, 많게는 8개의 비디오를 찍는다. 그들이 열심히 일한 대가는 영상 클릭 수와 SNS 팔로워 수에 반영되고, 그 수치는 즉각적인 돈과 인기로 환산된다. 하지만 아마추어가 늘 차고 넘치는 시장에서 변함없이 돈과 인기를 유지하기란 너무 어렵다. 신인 배우가 환영받는 시기는 고작 3개월. 늘 새로운 것을 원하는 감상자를 만족시키려면 배우가 교체되거나 내용이 색달라져야 한다.


여배우의 역할은 순진한 소녀, 남배우의 역할은 집에 혼자 있는 소녀에게 접근하는 아빠 친구 / 이미지 출처: imdb


착취가 되어버린 노동, 학대가 되어버린 섹스


다큐 초반에 막 합숙소에 도착했던 소녀들은 어느덧 ‘새롭지 않은 상품’이 되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더 자극적인 세계에 발을 들인다.

촬영 현장에서 감독은 “남배우가 다가와 여배우의 몸을 거칠게 만지는데, 여배우가 어떤 대답을 하려고 하지만 듣지 말고 덮치라고” 요구한다. 대답이 나올 때 끊는 것이 핵심인지 그 점을 여러 번 반복한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배우는 “마치 변태가 된 것 같은데?”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는다. 남성이 맡은 역할은 ‘친구의 딸이 혼자 집에 있는 것을 알고 그 집에 들어와 딸을 건드리는’ 남자다. 이게 실제 상황이라면 ‘하핫. 변태 같은데?’가 아니라 ‘반박 불가 성범죄’다. 마치 현장에서 급히 만들어진 듯한 허술한 시나리오와 설정에도 여배우는 그대로 순응한다. 이 세계에 발을 들인 이상 ‘퇴물’이 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 사실 이 정도는 ‘그나마 괜찮은’ 수준이다.

‘편하게 많은 돈을 번다’거나 ‘섹스도 즐기고 돈도 번다’는 구인 공고의 달콤한 말들은 사라진 지 오래. 소녀들의 몸값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상상 초월할 요구를 듣는 게 일상이 된다. 잠깐 ‘오럴 섹스’하는 장면만 촬영해달라고 했는데 현장에 가니 ‘강제로 당하는’ 내용이지를 않나, 흉물스러울 정도의 커다란 남성 성기 모형을 몸에 넣는 연습을 하라며 그 내용을 촬영하면 돈을 더 주겠다고도 한다. 소녀들은 어느새 ‘성관계’가 아니라 ‘성학대’를 연기한다.


다큐는 포르노 시장에 갓 뛰어든 어린 여성들이 어떤 일을 겪는지, 그래서 그들이 계속 이 세계에 있을지 말지 고민하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너무 많이 촬영을 해 몸에 이상이 오고, 다채로운 성학대 장면을 촬영하며 수치심을 느끼는 건 예삿일이다. 그렇다고 애초에 기대한 돈은 잘 벌리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처음엔 반짝 벌 지 몰라도 집세에 생활비를 내고 나면 어느새 남은 돈은 몇백 달러에 불과하다. 이 일을 계속해도 괜찮은 건지 고민하는 사이에도 촬영은 계속되고 영상은 하나씩 늘어난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불편함은 당연하고 때론 역겹기까지 한데, 그 정도가 심할수록 시장 가치는 높은 현실이 더 불편하고 역겹다.


다큐의 주인공으로 출연한 소녀들은 결국 포르노 배우를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다. 하지만 숙소는 금세 새로운 소녀들로 가득 찬다. 에이전트인 라일리는 말한다. “매일 많은 여성들이 18세가 되고 그들은 포르노를 찍고 싶어 해요. 그래서 저는 절대 망하지 않아요.”

포르노 산업에서 아마추어 여배우는 부족할 날이 없다 / 이미지 출처: imdb


포르노는  이상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우리가 흔히 포르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떠올려보자. 공공연하게 이야기하진 않지만 누구나 은밀하게 즐기는 것. 현실에서 벌어지면 안 되는 성적 판타지를 최대한 현실처럼 연기하는 것. 성장 과정에서 호기심으로 접할 수도 있는 것.


하지만 우리는 이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 포르노가 찍어내는 환상은 더 이상 영상 속에 머물지 않고 현실로 튀어나와 범죄로 실현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성착취 동영상을 제작, 유포, 판매한 N번방 사건으로 충격에 휩싸였고 심지어 미성년자인 피해자와 가해자도 존재했다. 미성년자 딱지를 갓 뗀 아마추어 배우들이 원치 않는데도 불구하고 감독의 요구대로 성범죄와 성학대를 연기하는 지금의 포르노 산업이 N번방과 동일 선상에 놓여있지 않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화면 속 폭력성과 가학성이 감상자의 성관념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포르노 연구자 게일 다인스 교수는 한국의 N번방 사건에 대해 “하드코어 포르노에 지루해진 이들이 심각한 수준의 폭력물에 눈을 돌린 건 필연적인 결과”였다고 말한다.


그래서 포르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거야?


그래서 포르노가 사라져야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지금 양산되는 포르노’와 ‘그런 영상이 잘 팔리는 시장’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애초에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함이 목적인 포르노가 어째서 끝도 없이 폭력적이고 반인륜적이기까지 해야 하는지, 그래서 만족을 얻는 것은 누구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도 불티나게 팔리는 이 영상들이 한쪽의 쾌락만 극대화하는 건 아닌지, 그래서 결과적으로 더 많은 가해를 재생산하는 건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섹스란 양쪽이 합의 하에 이루어져야 하고 모두가 만족했을 때 좋은 것이라 배웠는데, 그렇다면 그걸 연기하는 포르노도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게 아닐까.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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