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지 않고 살아보듯 쉬어가기

by 양탕국

캔디Kandy에서 하푸탈레Haputale로 가려면 기차를 타야한다. EBS 세계테마기행에서 본 그 기차. 내가 스리랑카를 여행하고 싶었던 이유인 그 기차 말이다.

6시간을 달려야 하는 꽤나 긴 여정. 기차엔 1등석과 2등석 예약 구간, 그리고 현장 발매 2등석이 있다. 고생하고 싶지 않다면 제발 미리 예약하라. 당신은 6시간을 내리 서서 가야할 수도 있다.



곡선 철로를 달릴 때의 풍경이 너무나 유명하기에, 기차가 휘어질 때마다 창밖으로 뻗은 손과 카메라가 꽤 많다. 훌륭한 풍경을 담고 싶다면 1) 자리를 미리 예약하라 2) 창가 자리를 사수하라 정도의 조언을 하고 싶다.


사실 게으른 여행자인 나는 기차 예약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입석으로 가게 될 수도 있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 기차를 탈 때도 모르고 예약석 구간에 올라탔었는데, 검표원이 일일이 확인하고 제자리로 쫓아낸다. 그리고 심지어 문을 잠가버리는데, 잠긴 문의 조그만 유리창을 통해 편히 자리에 앉아 가는 2등 예약석 승객들과, 저 멀리 스크린까지 설치된 1등석이 아련하게 보인다. 설국열차의 꼬리칸에 탄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두 시간을 사람들에 끼인 채로 서서 가다 보니 기진맥진. 그러던 중 이 아이들의 아버지가 자리를 양보해주셨다. 본인은 다른 가족들 자리에 같이 끼어 앉으셨다. 아이, 감사해라. 아이들도 너무 착하게(?) 아버지를 서둘러 내쫓으며 내게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다만 자리 양보의 대가는 단기 영어교육이었던 듯.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자꾸 ‘저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하라’는 눈치였고, 때문에 나는 유치원 선생님이라도 된 양 이런저런 이야기를 속절없이 떠들어야 했다. 다리의 평화와 맞바꾼 목의 평화. 하지만 아이들은 너무 귀여웠고 그건 값진 일이었다. 간식도 나누어먹고 어찌나 착한지 (먹이를 주면 착한 사람!). 아마 그 해 겨울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주러 굴뚝 타고 내려갔을 거야.

하푸탈레는 고산 도시다. 마을이라고 불러도 될 작은 도시 중심가는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있다. 그래서인지 보통 다른 도시는 차에서 내리면 후끈한데 여긴 선선했다.

중심가는 도보로 20분 정도면 다 둘러볼 만큼 작다. 여행자들이 주로 묵는 숙소도 모두 기차역 인근이다. 하지만 짐이 무겁고, 특히 캐리어를 갖고 있다면 숙소 초행길엔 툭툭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계단이 많고 길이 조금 울퉁불퉁하다. 나 또한 초행길인데다 이미 기차에서 넉다운 됐기 때문에 툭툭을 이용했는데 차비는 100루피 (우리나라 돈으로 1000원이 좀 안 됨). 금액만 봐도 마을이 작은 걸 알 수 있다.


도착 전날 예약한 숙소는 론리플래닛에서 ‘묵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설명한 Sri lak view holiday inn. 사실 숙소의 착오로 빈방이 없는데 예약이 되어 첫날은 이들 가족이 운영하는 다른 곳에서 묵었다. 실수한 대신 다음날 전망이 좋은 방을 주기로 약속했고

이런 뷰를 얻을 수가 있었다.

고층이고 발코니와 평상이 있는 방이다. 발코니가 있는 방 중에서도 평상이 있는 방은 몇 개 없었는데 굳이 이곳을 택한 건, 평상이 없으면 혼맥하기 불편하니까!

하루에 3만원 정도 하는 숙소였는데, 이거야말로 가성비 갑의 행복 아닌가. 다른 숙소 후기를 찾아봐도 그럭저럭한 것 같으니, 하푸탈레에서의 숙소는 여길 강추한다. 사흘을 묵었는데 3일 내리 사모사(스리랑카의 만두 같은 음식)와 스리랑카 맥주로 밤을 보냈다.

하푸탈레에서 방문할 만한 유일한 관광 스팟, 립톤싯. 우리가 흔히 마시는 립톤차를 만든 그 립톤 아저씨다. 그 아저씨가 여기 앉아서 차를 마셨다고 해서 이 장소는 립톤싯(Lipton seat)이다.

도시 중심가에서는 꽤 시간이 걸리고, 광활한 차밭을 하염없이 올라야 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갈때는 툭툭을 타고, 올때는 트래킹을 한다. 아침 8시 경에 립톤싯 근처의 차 박물관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고 하는데, 처음엔 나도 비용 절감을 위해 그 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도통 오지 않아 툭툭을 이용했다. 숙소에서 예약하면 2000루피라고 했는데, 직접 흥정하니 편도는 700루피, 왕복은 1000루피를 부른다.

이곳에 붙박이로 앉아 방문자들에게 옆자리를 내어주는 립톤 아저씨와 한 컷.

여기에선 드넓게 펼쳐진 차밭을 보며 차 한 잔과 간단한 다과를 즐길 수 있다는데, 마땅히 카페처럼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건 아니다. 너무 이른 아침인 데다가, 안개가 많이 껴 바람이 차서 차 마시기엔 부적합했다.

사실 이곳은 오후가 될수록 더 안개가 많이 끼는 경향이 있어서 아침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그래도 점심 직전 즈음 방문하면 볕도 꽤 들고, 차 한 잔 하기엔 좋을 것 같다.

다시 중심가로 복귀해선 설렁설렁 걷기. 하푸탈레의 매력은 바로 이게 진가다.

너무 작고 아담한 이 마을에 갈 만한 식당은 리사라 베이커리 한 곳 뿐이고 (이곳 사모사가 정말 유명하다. 따끈할 때 먹으면 꿀맛. 맥주 안주로도 짱맛), 술을 파는 주류 판매 전문점에 외국 맥주라곤 없이 온통 스리랑카 맥주 뿐.

립톤싯 방문자들 때문인지 작은 마을엔 외국인이 꽤 많지만, 철저히 현지인의 삶에 초점이 맞추어진 도시라는 느낌이다. (이후의 글에 언급하겠지만 스리랑카의 핫스팟으로 떠오른 엘라Ella는 매우 작은 곳인데도 온통 여행자 중심으로 마을이 돌아가기 때문에 무척 상반된 느낌)

여행을 하다 보면 종종 참 좋은 순간이, 나는 비록 여행자지만 여행자 같지 않은 기분을 느낄 때 아닌가. 에어비앤비의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문장이 우릴 설레게 만드는 것도 그 이유 아닌가. 하푸탈레는 딱 그런 곳이다.

다른 여행자들과 뒤섞이는 펍이나 바도 좋지만, 오롯이 홀로 즐기는 맥주야말로 날 여행자 같지 않게 만드는 것일 테지. 하푸탈레에서의 혼맥엔 언제나 스리랑카 맥주인 라이언 스트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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