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읽고
어째서 아름다운 순간이 끝나면 그 아름다움을 모조리 덮어버리는 슬픔이 찾아오는지.
불 꺼진 방에서 소설낭독을 듣고 있으면, 눈으로 읽을 때보다 더 깊은 곳까지 떠내려가는 느낌이 들때가 있다. 일반적 독서에서는 시야에 온통 똑같은 흰 바탕위에 검은 글자뿐이어서, 무언가를 떠올리고 싶을 때는 잠시 책에서 눈을 떼어야만 하지 않나. 눈을 감고서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 몽롱한 정신으로 듣는 이야기가 더 시각적이고 더 관능적이며 더 환상적이다. 읽는 속도를 조절할 수 없이, 그저 읽어주는 대로만 듣는 통에 심상은 아주 느리게 완성된다. 또한 그런 방식의 독서는 수면에 아주 효과적이어서 굳이 몸에 좋지 않는 수면제를 찾을 필요도 없다. 머리의 피로, 눈과 허리의 신음, 내일에 대한 걱정, 어제에 대한 후회가 몰려오는 밤에 듣기 좋다.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팟캐스트에서 김영하씨는 언제나 마리오가 꾀병을 부리는 장면에서 소설을 읽기 시작한다. 마리오는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타야하지만, 그는 감기 핑계를 대고 오전 내내 이불 속을 뒹군다. 그러나 가계를 위해서는 일을 해야 했고 그는 우연히 우체국에서 일자리를 얻는다. 바로 파블로 네루다만을 위한 우편배달부. 네루다의 편지를 배달하면서 그는 네루다와 친해진다. 마침 그는 베아트리스라는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아니 어느 것이 먼저인지 모르겠다. 사랑을 시작한 소년이 용감하게 네루다에게 다가간 것인지, 아니면 사랑에 빠진 소년을 보고 어른의 동정심으로 네루다가 소년에게 다가간 것인지(내 기억은 중요하지 않다). 아무튼 네루다에게서 시의 메타포(은유적 말하기)를 배워 소년은 소녀의 마음을 얻어낸다. 그러나 소녀의 어머니(과부)는 마리오를 메타포와 함께 끔찍하게도 싫어하는데, 이는 그녀가 특별히 유물론자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를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 회의론자, 현실주의자이기도 한데, 여하간 그녀는 말만 앞세운 책임감 없는 남자들의 사탕발림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는 것이다. 목소리는 항상 과부의 시니컬한 대사로 이야기를 끝낸다.
닭대가리 같으니! 지금은 네 미소가 한 마리 나비겠지. 하지만 내일은 네 젖통이 어루만지고 싶은 두 마리 비둘기가 될 거고. 네 젖꼭지는 물오른 머루 두 알, 혀는 신들의 포근한 양탄자, 엉덩짝은 범선 돛, 그리고 지금 네 사타구니 사이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는 고것은 사내들의 그 잘난 쇠몽둥이를 달구는 흑옥 화로가 될걸! 퍼질러 잠이나 자!
낭독 파일은 여기까지였다. 나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항상 저 시작과 끝을 반복했다. 책을 읽어주는 목소리는 마리오의 멍청한 모습에서 시작해서 네루다의 능글맞은 대사를 지나 과부의 호통으로 이야기를 끝내곤 했다. 마리오는 언제나 순수하고 멍청했고, 네루다는 지치고 살가웠으며, 과부는 윽박지를 뿐이었다. 마리오가 내뱉은 베아트리스가 외웠던 메타포, 이를 테면 웃음이 한 떨기 장미라고 영글어 터진 창이고 부서지는 물이라는 둥, 미소가 나비처럼 번진다는 둥, 하는 그런 대사들은 아주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 꼬박꼬박 씹듯이 머릿속에서 반복되었다. 은빛 바다라는 둥, 순식간에 부서지는 파도라는 둥, 하는 메타포가 곧 지구 반대편 남반구의 섬마을을 그려내었다. 그리고 그 검은 해안에 하릴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메타포 따위나 고민하고 있는 삐쩍 마른 소년이 앉아있다. 먹고 사는 것 이외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 어부들이 분주한 작은 어촌, 그 한 구석 온갖 정치적 풍파를 피해서 자리 잡은 시인의 저택, 바닷길 따라 그 사이를 왕복하는 우편배달부의 자전거. 내게는 그 평온한 어촌이 이슬라 네그라, 그 자체로 완결된 우편배달부의 세상이었다.
얼마 전 우연히 도서관에 가서 이 책을 발견했다. 처음으로 이 책을 '눈으로' 읽게 되었을 때 나는 두 가지에 놀랐다. 첫째, 내가 잠 못 이루는 밤 반복했던 이슬라 네그라의 세상이 사실 50페이지 뿐이라는 점. 이 책의 이야기가 166페이지이므로 그 부분은 3분의 1도 안되는 부분이었다. 둘째, 내가 처음이라고 여겼던 마리오 히메네스의 게으른 일상은 사실 처음이 아니었다. 그 부분은 15페이지부터 시작하고 그 이전에 13페이지 분량에 해당하는 서문이 있었다. 이 책은 액자식 구성이었던 것이다. 소설 속 어느 작가가 마리오의 이야기를 듣고 쓴 것이다. 그리고 그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
미지의 독자 여러분도 깨닫게 되겠지만 이 이야기는 열광적으로 시작해서 침울한 나락으로 떨어지며 끝을 맺는다...
나는 그동안 귀로 들었던 부분이 책에서 가장 감상적이고 아름다운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마리오의 순수함은 베아트리스를 감동시키고 열락에 젖은 두 남녀는 결국 결혼하게 된다. 네루다는 칠레 아옌데 정부의 일원이 되어 프랑스 특사가 되어 파리로 떠난다. 마리오는 과부의 주점에서 일하게 되고 결국 아들을 낳는다. 그리고 이 순간이 이슬라 네그라의 평화와 사랑의 정점이다.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아옌데 정권이 무너지면서, 네루다의 세상은 몰락한다. 정치적 격변의 여파가 이 작은 어촌 마을을 휩쓴다. 이야기의 진짜 끝은 다음과 같다. 네루다는 죽고, 군인들이 마리오를 데려간다. 그 뒤로 마리오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처음의 서문으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책이 늦어진 데에는 감상적인 성격의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나는 베아트리스 곤살레스가 산티아고 법정에 왔을 때 여러 번 점심을 같이 했다. 그녀는 자신을 위해 (얼마가 걸리든, 얼마나 많은 허구가 가미되든 간에) 마리오의 이야기를 써주기를 원했다. (p 14)
작가가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는 베아트리스였다. 그녀가 이 이야기를 쓰기 원했기 때문에. 생사불명인 마리오를 기억하고자하는 베아트리스의 소망에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시작되었다. 그 소망을 둘러싼 감정은 곧 그리움이고 슬픔이고 사랑이었다. 베아트리스의 사랑과 슬픔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거슬러 올라야 한다. 마리오를 잡아간 군부의 쿠데타, 네루다와 마리오의 관계, 그녀를 위해서 바다 속에서 탄생한 메타포, 그리고 그 끝에 시의 힘을 빌어서 그녀에게 사랑을 표했던 순수한 소년이 있다. 마리오 히메네스, 그 게으르고 순박했던 소년의 열정이 이 서사의 출발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책을 읽어주었던 목소리는 아주 적절한 시작점을 찾은 셈이다.
이 이야기를 쓴 소설 속 작가는 굳이 처음에 등장해 이 이야기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 예고한다. 그 선언대로 이 이야기는 결말에 가서 비극이 된다. 현실 역사로 이어지는 이 비극은 내가 오랫동안 들어왔던 이슬라 네그라와 너무 다르다. 나는 지금도 잠 못 이루는 밤에 머릿속에 그리던 이슬라 네그라를 그리워하고 있다. 이야기의 결말을 알아버린 지금은 다시 돌이켜 상상할 수 없는 그 세계를 말이다. 검은 바위와 맑은 하늘이 남색 바다에서 합쳐지는 작은 섬, 갈매기 소리와 자전거가 삐걱이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마을 전체로 퍼지는 그 작은 섬을 배경으로 하는 소박한 일상. 마리오와 베아트리스가 그들의 아이를 안고서 어머니(과부)의 잔소리를 견디며 사는 그런 소박한 일상이 가끔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사라져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마리오와 그를 기다리며 지치고 늙어버린 베아트리스, 극우파들의 난동으로 무너진 저택의 잔해 가운데 스러진 네루다의 주검 역시도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