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사실 경기 못 봤습니다. 그때 일정이 있어서 밖에 나와있는 바람에 경기를 보지는 못했는데요. 그 이후에 논란이 되어있길래 그 상황 영상은 살펴봤습니다.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NC 투수 이재학이 삼성 타자 이재현을 상대로 던진 2구가 ABS에 의해 스트라이크로 판정되었고
그때 김지찬은 도루를 시도했고
심판은 ABS의 스트라이크 콜을 제대로 듣지 못해 볼로 판정 후 경기를 진행했고
NC 코칭스태프들은 이재학이 이재현 상대 5구를 던진 뒤에야 ABS에서 스트라이크로 판정했다는 사실을 파악했고
강인권 감독이 항의했으나 3구의 투구 이전에 항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번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자세한 상황 설명은 빠져있습니다만 핵심만 보면 이렇습니다. 사실 이것만 보면 오심이 기분나쁘지만 그렇다고 이미 진행된 경기의 일부를 없던 걸로 만들수도 없으니 큰 문제는 없어보입니다. ABS의 콜을 제대로 듣지 못한(혹은 듣지 않은) 심판진들에게 징계는 당연히 주어지겠지만 이 정도로 큰 논란이 될 일은 아닐지도 모르죠.
그런데 SBS Sports 중계화면에는 이 정도로 절대 넘어갈 수 없는 발언이 잡혔습니다.
음성은 분명히 볼로 인식했다고 들으세요. 무조건 볼이야.
우리가 빠져나가려면 그것 밖에는...
이게 무슨 말입니까. 심판의 입에서 나올 말입니까. 중계진이 이 대화를 잡지 못했다면 이런 중대한 문제가 세상에 밝혀지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 발언의 문제점은 간단합니다. 본인들의 실수를 ABS 시스템 오류인 것 처럼 덮으려 했다는 겁니다. 이 대화는 실제로 볼이라고 들어서 볼로 판정했다는 뉘앙스가 전혀 아닙니다. 본인들의 잘못을 감추려는 행동이죠. 현재 알려진 바로는 추평호 3루심이 오심과 관련해 말을 꺼내려다 문승훈 주심이 그 말을 잘랐다는데 그게 맞다면 그나마라도 있던 옹호 가능성마저 주심이 날려버린 셈이 됩니다.
ABS 판정이 도달하는 시간도 문제입니다. 심판에게는 바로바로 콜이 들리지만 그 판정 결과는 중계화면을 직접 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습니다. ABS 판정을 보라고 구단에게 지급한 태블릿에 판정이 전달되는 시간동안 투구가 진행된다면 오심이 나왔다고 해도 정정 가능성이 없어지는 겁니다. 다음 플레이가 진행되고 나서 이전 플레이를 번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잘 알지만 그렇다면 최소한 그 플레이와 판정에 문제가 없었는지에 대한 판단은 다음 플레이가 이루어지기 이전에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개정될 필요는 있어보입니다.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합니다. 2구의 판정결과가 5구 투구 이후에나 전달된다면 심각한 시간 지연이고 그 전에 전달은 되었는데 단순히 NC의 코칭스태프가 늦게 파악했다면 시스템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NC의 코칭스태프가 안일한 대처를 한 거고 파악을 빨리 했으나 그걸 바로 해결하지 않고 본인이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기다렸다가 항의를 한 거라면 징계감이죠. 하지만 이건 저희 입장에서는 알 수 없습니다. 확실한 건 어필이 옳았냐와 별개로 강인권 감독이 어필하지 않았다면 이런 심각한 문제가 알려지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거죠.
그 외에 여러가지 시스템적 문제가 보입니다. 중계화면에는 바로 뜨는 투구 결과를 왜 경기장에 있는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걸까요. 투구의 결과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심판과 경기장까지 와서 중계를 틀어놓고 있는 사람들 뿐입니다. 그 외의 사람들은 심판의 제스처를 기다릴 수밖에 없죠. 직관을 와서까지 중계화면을 보는 이유가 있네요. 전광판에 띄우면 안 되는 걸까요? 왜 이런 문제가 나와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경기로 삼성이 이겼습니다. 2연패 후 1승이라 삼성 팬인 저는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찝찝합니다. 경기 결과가 5:12라는 상당히 큰 점수차였기에 그게 정심이 나왔다고 한들 NC가 이겼겠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승패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행위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거죠. 해결하고 가야 합니다. 다음 피해자는 삼성이 될 수도 있고 다른 구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