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꾸] 작은 꾸밈과 위로, 다이어리 꾸미기의 모든 것

행복 치사량 MAX

by 세현



햇살이 살짝 스며든 오후, 나는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았다. 다이어리 한쪽을 펼쳐놓고, 작은 손길로 예쁜 마스킹테이프를 잘랐다. 그리고 빈티지한 스티커를 골랐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채워가는 재미에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이 시간은, 마치 스스로에게 보내는 작은 위로 같았다.


회사 계약이 곧 끝날 예정이었고, 그 사실은 생각보다 더 조용히 나를 흔들고 있었다. 불안과 공허가 하루에도 몇 번씩 스쳐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조용히 다이어리를 펼쳤다. 익숙한 그림 하나를 붙였다.

마치 “괜찮아, 지금 이 순간도 네 일부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혼자만 보지 않기로 했다. 작고 사소한 슬픔이 가볍게 녹아내리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책을 오려 붙였다. 응원하는 작가의 그림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났다.


이제는 작은 스튜디오를 차려놓고 영상을 찍는 수준에 올랐다. 적당한 빛과 명암을 다루는 섬세한 작업이었다. 그런 나를 곁에서 바라보는 엄마는 늘 불만이 많았다.


“문구점 차릴 거니? 그 한 장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종이와 스티커가 필요한 거니? 그게 돈이 되니? “


쏘아붙이는 엄마의 말에 나는 종종 위축되곤 했다. 다 불태워버릴 거라는 엄마와의 갈등이 있었지만 점점 디자이너 수준으로 발전하는 내 실력을 보니 이제는 포기할 수 없는 취미가 되었다.


오늘은 내가 사랑하는 다이어리를 함께 살펴보며

다이어리 꾸미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1. A6 6공 다이어리





내 첫 번째 다이어리는 커다란 A6 6 공이었다.


여백이 거의 없이 덕지덕지 붙이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했다.

뭔가 색감이 이상한 것 같으면 스티커를 더 붙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인생 첫 다꾸는 이거였다.


스티커를 사면 붙일 곳이 없어서 안 사던 날들이 나에게도 수없이 있었다.


그러다 홍대의 한 플리마켓에 들려 응원하던 작가를 실제로 마주하는 순간.

4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의 그 순간이 내 인생을 뒤집어놓은 결정적인 순간이었다는 것을 안다.


“그 작가가 예술을 할 수 있게 보탬이 되고 싶다”


그 마음에서 자라나 작가들을 홍보할 목적으로 인스타를 시작한 것이 시초였다.


첫 포스팅의 좋아요는 22개. 나름 선빵했다.



2. 미니 3공


처음으로 다꾸를 시작하는 계정이 그렇듯

나는 화면에 꽉 차는 느낌으로 사진을 올렸다.

팔로워들은 나를 정말 아껴주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협찬이 되지 않는다는 것.


나는 내 다꾸 실력이 꽤 괜찮다는 것을 알았지만

문구 작가에게 간택당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사진을 잘 찍고 싶다는 열망으로 인해

예쁜 러그를 샀다.


예쁜 러그 위에 올려두고 미니 3공 다이어리를 꾸몄다




문구 작가들에게 팔로워를 받게 된 첫 시도였다.


그러나 이 3공은 채 다 꾸며보지도 못하고

엄마의 격렬한 반대에 못 이겨 버려지고 말았다.


다이어리는 최대한 크고 무거워야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3. 미니 와이드 6공



나의 6공 사랑은 계속된다.


스티커를 많이 붙여도 부풀지 않기 때문에

6공을 너무 사랑했다.




문구 작가들의 관심을 받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제는 옆에 오브제를 두고 찍었다.


영상도 찍기 시작했다.

이맘때 즈음에 다이어리 영상이 유튜브 알고리즘을 장악하면서였다.


대학 선배에게

요즘 유튜버 다 하잖아?라는 소리를 듣고

콘텐츠를 기획하던 중이었다.


유튜브 구독자는 일 년 동안 50명을 넘기지 못했다…




사진을 잘 찍고 싶고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인스타 게시글을 썼다 지웠다 했다.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색감이 나오지 않았다.



4. 패스트포트



그러다 노트를 선물 받게 되었다.


총 두 권을 인친님으로부터 받았는데

이때 색다른 느낌에 눈을 떴다.


오브제를 펼쳐놓고 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려가며 급하게 사진을 찍었다.

오브제를 어디에서 사야 할지 몰라서

시세의 3배를 주고 유칼립투스를 샀다…




5. 협찬받은 일기용 노트





그러다 내 인생을 또 한 번 뒤집어 놓은 사건이 발생했다.


나는 파란색 양모 위에서 영상을 찍곤 했는데

특유의 포근한 느낌이 좋아서였다.


그러다 드디어 협찬을 받았다.


그런데 두근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영상을 게시하고

이틀 동안 작가님에게 반응이 오지 않았다.


나는 좌절했다… 내 영상이 퀄리티가 좋지 않구나

그렇게 생각한 나는 진심으로 고민했다





그러다가 이 구도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꽤 만족스러운 공주풍의 피드가 만들어졌다.



6. 드디어 받은 정식 협찬





오랜 고민 끝에 드디어 협찬을 받게 되었다.


사실 경쟁률은 그리 높지 않았으나

사장님의 모토는


“잘하지 않아도 즐기면서, 매일매일 올릴 수 있는 사람”


을 찾으셨다고 했다.

4개월 동안 나는 열과 성을 다해서

정말 최선을 다해서 물품 활용 사진을 찍었고


이때부터 슬슬 반응이 왔다

인스타 팔로워는 1200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7. 수제 다이어리




이때 나는 정말 많이 발전했다.


지금의 영상 기본 토대가 되는 피드를 만들 수 있었다.

나름 내가 싫증 내지 않고 만족스러운 오브제를 배치할 수 있었다.

내 자랑이었다.


협찬이 물밀듯이 밀려오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내가 꿈꾸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걸 평생 업으로 삼아도 좋겠다 싶었다.

디자인 공부를 하고 싶었고

내가 협찬을 받게 되자 엄마의 반대도 꺾였다.






8. 지금은 다이어리를 더 샀다






지금은 새로운 계정을 파서 영상과 사진을 분리하고 있다.


지금 이 여러 디자인의 다이어리는 내돈내산이다.



다이어리 꾸미기를 하면


쇼핑을 하다가 기분 좋고

결과물이 나와서 기분 좋고

자존감이 올라간다.


나는 옷을 일절 사지 않는 대신에

다꾸용품을 샀다.


칠천 원을 주고 작은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행복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포토샵으로 먼지를 지웠다.


점점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꾸는 이제 내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 새벽,

나는 또다시 다꾸 쇼핑을 했고

방 안은 어질러졌다.


최소한만을 남기고 당근에 팔았다.

비싸게 팔아서는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었다.


다꾸의 단점은 내가 꾸밀수록 가치가 떨어지고

오로지 자기만족이라는 것에 있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주말에는 그림을 사러 갔다.


이 얘기를 회사 사람들에게 했더니


“미쳤네 미쳤어”


라는 소리를 들었다.




가끔 서글픔이 몰려오기도 했다.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는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취미가

나를 붙들어주고 있다는 느낌을 강렬히 받았다.









나도 할 수 있다.

충분히 나아지고 있다.


그와 동시에

사고 싶은 건 다 사는 어른이 되었다.


사고 싶은 것은 오로지 스티커뿐이었다.


이런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내가 꿈꾸던 내가 되어가는 과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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