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현 Aug 24. 2024

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의 단점

너무나 힘들었던 입시 제도

  ‘데구르르뎅뎅 사건’이 있었다. 스무 살에 대학을 다닐 때 교수님과 첫 대면식이 있던 날이었다. 닭한마리집에서의 정겨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교수님이 술을 따르며 공부는 어렵지 않은지 물어봤다. 그때 나는 얼마 취하지도 않았지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나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트리거가 딱 눌려버린 것이었다. 키워드는 ‘예술고’였다.

  “나는 사실 일문학과에 가고 싶었어요.”

  그 말을 하는 신입생은 내가 유일했다. 저를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하는 옆 테이블의 담소에 좀 더 귀를 기울였으면 좋았을 것을. 그냥 남들처럼 가슴 아픈 일에는 함구하면 좋았을 것을. 나는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저질러버렸다.

 

  대학에 원서를 넣을 때,

  나는 좋은 대학을 가겠다는 목표가 없었다.


 그저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시스템 구조상 인정받지 못했다는 열등의식이 자라나자, 고등학교 선생님 몰래 준비한 일본어 공부 카드를 꺼내 들었다. 대학에 원서를 넣을 무렵, 나는 일본의 지방 대학으로 유학에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유학비가 없어 여의치않았다. 고등학교 선생님은 내가 한국에 있다면 지원할 수 있는 좋은 대학교들을 나열했다. 나는 죽어도 문예창작과는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내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 잠시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설득이 되지 않자, 한 글자도 쓰지 못하겠다고 눈물을 쏟았다. 고등학교 선생님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우리 엄마를 불렀다. 그러자 상황은 빠르게 일단락되었다. 나는 불안했다. 

  누구에게 말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가 대학에 와서 했던 고민은 내가 과연 여기에 있을 자격이 되는 가였다. 나보다 공부도 잘하고 나보다 더 멋진 생각을 하고 나보다 더 긍정적인 학생들이 자신의 노력에 축하주를 건넸다. 나도 그러면 됐다. 매일 밤 잠도 못 자고 실기 시험에만 매달린 나의 노력은 그렇게 보상받으면 됐다.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충족되지 않는 수 많은 언어들과 상상과 집합체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술을 끝까지 마신 나는 그날 데굴데굴 굴러 기숙사에 도착했다. 그날부로 대면식은 폐지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질문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 발표를 들은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되려 내가 사죄를 해야 하나, 하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직장인이 되어서 보니 정말 그때 마음 먹은대로 사죄를 했더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이후로도 나는 대학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 한 교수님은

  수업 시간에 나에게 자퇴를 권했다.


  교수님은 내가 쓴 작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는 부분을 짚어내면서 내가 ‘절대, 결단코’와 같은 말을 쓸 배짱이 없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그건 너무 단언하는 말이 아닌가요? 생각이라는 게 바뀔 수도 있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내가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죠. 학생한테는 내가 진지하게 자퇴를 권합니다.”

  그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 수업 하나만을 두고 권한 말이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평소 행실이 나빴었나, 하고 반성을 해 보았다. 언젠가 그렇게 말해야겠다고 결심하신 이유를 물어보는 날이 오면 좋겠다.


  때로는 작가가 된다는 것이 글이 아니라

  자신을 평가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작가가 될 수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너무 열등의식에 사로잡혔던 내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나는 대학교 입시를 치르던 당시, 실기 시험에서 다른 학교 면접 때는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다 적고 나왔다. 고등학교 선생님과 모의 면접에서 준비했던 질문들을 대학 교수님들이 하나도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상 우울해 보이는 나에게 무언갈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거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치열한 입시 경쟁 사이에서 운이 좋지 않았던 많은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 스스로에 대한 자각과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데구르르뎅뎅 사건이 있었다. 뒷걸음치다 결국 직장인이 된 사건이었다.

이전 03화 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의 장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