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역시 태도의 문제인 것 같다.

by 점빵 뿅원장

<사진은 정승제 선생님의 유튜브에서 캡처했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삭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지난 금요일 오후에 갑자기 파노라마 엑스레이가 고장이 났다. 오전까지 잘 사용하던 것이었는데, 오후에 환자분의 파노라마와 CT 촬영을 하려고 하니 갑자기 연결이 안 되는 것이었다. 몇 번 전원을 내렸다가 켜보고, 컴퓨터 부팅도 다시 해봤지만 여전히 연결이 안 된다. 담당 직원분한테 전화를 해보니 프로그램상의 문제인지 확인하기 위해 원격으로 엑스레이 컴퓨터에 접속해서 문제를 확인해 보았다. 결국 프로그램상이 아닌 장비의 문제가 의심된다며 내방해서 확인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문제는 고장 난 시간이 금요일 저녁이고 토요일에 진료가 있었으며, A/S는 토요일에 휴무라는 것이었다. 이게 멈추면 당장 내일 내원하는 환자들의 가장 기본 검사인 파노라마 엑스레이를 촬영할 수 없다. 이제는 어지간한 문제는 다 그러려니 하는 상황인지라 마음속으로는 '며칠 불편하겠군. 부분적으로 보는 치근단 엑스레이로는 한계가 있을 텐데 어쩌지.'라는 생각 정도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담당 직원분이 "괜찮으시면 제가 지금이라도 가겠습니다. 그런데 치과가 끝난 저녁 일곱 시 정도 되어서 도착할 것 같은데 어떠실까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고쳐지기만 한다면야 끝나고 기다리는 게 문제겠는가. 직원들을 퇴근시키고 내가 남아서 기다리기로 했다.


여섯 시 오십 분 즈음에 담당 직원분이 오셨고, 장비를 뜯어서 한참 동안 둘러보더니 고장 난 부분을 확인했다. 직원분은 본인도 정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원장님, 이게 흔하게 고장 나는 부분이 아닌데 고장이 난 것 같습니다. 저희가 재고로 부품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어서 최대한 빨리 본사에 연락을 해서 부품을 받아 고쳐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진료하셔야 되니까 우선 임시로라도 돌아가게 만들어 보겠습니다. 새로 구입하신 지 일 년 밖에 안되었는데 죄송합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고는 다시 엑스레이실로 들어가서 한참 동안 수리를 시도해 보고, 장비 테스트를 하는 것이었다. 한 시간 남짓 지나서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어떻게든 내일 사용하실 수 있게 하려고 했는데 안될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사실 나는 이미 마음을 내려놓고 있었고, 다음 날은 치근단 방사선 사진으로 최대한 버텨볼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별 생각을 안 하고 있었는데, 직원분이 너무 미안해해서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래서 "대리님이 고장 낸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미안해하세요. 기계가 쓰다 보면 고장 날 수 있는 건데요. 그래도 파노라마랑 CT가 안되면 너무 불편하니까 수리는 최대한 빨리 부탁드릴게요. 늦게까지 고생하셨는데 빨리 가세요. 괜찮아요."라고 말하고 음료수와 간식을 조금 챙겨서 보내드렸다. AS 직원 분이 가시면서까지 거듭 사과를 해서 오히려 내가 몸 둘 바를 모르고 미안할 따름이었다.


집에 오니 아내가 장비는 잘 고쳤는지 묻는다.

나 : "아니, 안에 장비를 구동하는 벨트가 끊어졌는데, 그게 흔히 나타나는 고장은 아니어서 부속받아서 고치려면 며칠 걸릴 거 같아. 어쩌겠어."

아내 : "그런데 당신 표정이 그렇게 죽을 것 같은 표정은 아니네? 나는 엑스레이 못 고치면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표정으로 올까 봐 걱정했는데."

나 : "AS 기사님이 고쳐보려고 애를 썼는데 안 됐어. 그리고 너무 미안해하니까 내가 뭐라고 할 말이 없더라고. 기억하지? 나 예전에 이 회사 거 다시는 안 사겠다고 했었는데, 이 분 때문에 그냥 이 회사 걸로 바꾼 거. 오늘도 너무 애써서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되더라고."


예전에 개원할 때 샀었던 체어와 엑스레이가 고장이 너무 잦아서 문제가 많았었고, 이것 때문에 장비 업체와 다투기도 많이 다퉜다. 오는 AS 기사분들마다 고치지 못하거나 대충 해놓고 가서 반복적으로 다시 문제가 생기곤 했었다. 게다가 AS기사분도 너무 자주 바뀌었고, 어쩌다 새로 오는 분들은 '날씨가 추워져서 그래요', '체어를 잘 못 쓰는 것 같아요.'와 같은 황당한 핑계를 대는 경우도 많았다. 결국에는 그 회사에 있다가 퇴사했던 베테랑 직원분들을 불러와서 고치곤 하는 경우들도 있었다. 완벽한 뽑기 실패였다고 생각했고, 다시는 그 회사 제품을 사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작년 초부터 파노라마 엑스레이가 오락가락할 때에도 이제 고장이 나면 다른 회사 걸로 알아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하지만 작년 여름, 결국 이 회사 엑스레이를 다시 사게 된 것은 당시에 계속 수리를 하러 오던 이 직원분이 어떤 문제가 생겨도 해결해 주려 애썼고, 오래된 장비인 만큼 최대한 비용이 들지 않게, 그리고 진료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해결해 주려는 노력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새 장비를 계약하러 담당 영업 본부장님이 오셨을 때 "아시겠지만 저는 이 회사 제품에 크게 데어서 안 사려고 했어요. 수 천만 원짜리 장비를 사는 건데 이번에는 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싶어서요. 요즘에 다른 회사에서 나오는 거는 싼 것도 많고요. 그런데도 계약하는 건 다른 조건이 괜찮은 것도 있지만 지금 수리하러 오시는 OO대리님 때문이라는 거 꼭 알아주세요. 그분한테 칭찬 좀 많이 해주세요"라고 얘기했었다. 그리고 OO대리님에게도 "저 이 장비, 대리님 때문에 사는 거예요. 다른 분이 저희 AS 봐주셨으면 계약 안 했을 거예요."라고 얘기했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치과 AS 담당 기사님은 우리 치과에서 생긴 문제에 더 많이 애를 쓰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나와 병원 식구들은 예전의 다른 기사님들이었으면 한 번쯤 뭐라고 했을만한 상황에서도 꼭 한 번 더 참게 된다. 수리가 끝나고 나면 직원들도 꼭 빼놓지 않고 시원한 음료수나 간식을 챙겨서 손에 쥐어드린다. 부디 이 분이 오래오래 이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우리 치과를 맡아주시길 바라면서 말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자주 보이는 정승제 수학 선생님의 릴스 중에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태도의 문제'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있다. 동일한 상황에서도 각자가 보여 주는 본인의 태도가 결국에는 상대방의 태도나 반응, 그 결과를 바꾸게 된다는 말을 들으면서 크게 공감했었다. 우리 AS 담당 대리님의 모습을 보며 그 말을 다시 한번 생각 해본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태도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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